눈 색에 의아함을 가진 건 당신뿐만이 아닌 듯 백지혜는 손가락으로 당신의 눈꺼풀을 강제로 엽니다.
백지혜?:이상하네요, 당신의 눈은 왜 검은색 입니까?
오광철:그러게. 이상하지. 너 가짜야. (부엌에서 숟가락 하나를 꺼내 수프를 휘적인다. 그리고 흰색 눈을 집에 입안에 넣고 깨물어 삼켰다.) 아까 봤는데 가짜는 본체를 먹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운대. 그럼 난 형을 지키기 위해 네게서 이 음식을 뺏는 게 맞는 거 같아. (이어 그릇째 들고 붉은 수프를 마신다. 다 먹은 접시는 그대로 백지혜의 머리를 향해 던지며 수프가 묻은 입가를 반대 손으로 닦아낸다.)
입 안에서 눈알이 툭, 터지는 감각이 불쾌합니다.
익힌 생선의 알 같기도 한 식감입니다.
맛은 비리고, 퍽퍽하지만요.
백지혜?:(머리에 날아온 접시를 그대로 맞고, 짧은 단말마와 함께 몸을 웅크린다. 상황파악에 약 2분 정도를 소요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잠깐... 뭔가 이상해요. 당신... ... ... (적당히 상황을 알아챘는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아직 파이를 굽고 있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오광철:이상한 건 너겠지. 난 원래 이랬어. (파이를 굽는 중이라고 했나? 뒤로 물러나는 상대를 밀어낸 뒤 오븐 앞으로 가 오븐 창문에 딱 붙어 안을 바라본다. 한참을 오븐이 작동되는 걸 바라보다가.) ... 당분간 케이크 못 먹을 거 같아.
오광철:(오븐이 뜨겁긴 한데 이 안이 더 뜨거울 테니 괜찮아. 아예 오븐 앞 바닥에 편히 앉아서 내부를 지켜본다.) 왜? 싸우면 이기지 못할 거 같아? 운 좋은 줄 알아. 네가 형이랑 똑같이 생기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봐주지 않았을 테니까.
백지혜?:(한참 더 머뭇대다 입을 연다.) 저에게도 당신과 함께 한 기억이 있으니까요. 이 집에서 밥을 먹고, 함께 자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던 기억이... (저 음식들을 먹으면 비로소 진짜 내 기억이 됐을 것들이. 사랑이란 감정은 모르겠으나 저 사람과 함께한 날들의 기쁨, 친밀감, 앞으로 함께 하면 좋겠다는 바람은 진짜의 것과 다름 없다. 그렇기에 안타까운 감정이 드는 거겠지.) ...요리가 다 되려면 좀 멀었습니다. 앉아서 기다리세요.
오광철:형과 나의 기억인데 왜 멋대로 가져갔어? 사기에 이어 살인, 절도까지 저질렀으니 오늘 식사가 끝나면 경찰과 데이트 진하게 해야겠다. 그렇지? (일어나지 않은 채 계속 오븐 내부를 바라본다.) 내가 있을 곳은 형 옆이니까 됐어. 부르지 마.
... 그보다, 나도 그때 사건 현장에 같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딘가엔 가짜 나도 있는 거야?
백지혜?:일단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저 예의상 하는 말에 불과했지만. 경찰이라... 나는 진짜가 되지도 못 하고 감옥에 가게 되는 건가? 애초에 경찰이 이런 사건을 진지하게 수사할 수 있을까. 도플갱어라는, 나라는 비과학적인 사건을.) 이 몸의 신분으로 재판에 서게 된다면, 원래의 저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 되겠습니다.
오광철:죄송한 건 내가 아니라 형에게 말해야지. 말한 것처럼 그 몸과 신분으로 재판에 서는 건 형에게 해서 안 되는 일이잖아. (잠시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친다. 어색한 붉은 눈을.) 재판에서 만족할 만큼의 형량을 받지 않으면 내 손으로 널 처리할 거야.
멍청이. (다시 오븐으로 고개 돌린다. 눈 확인도 안 하고 가짜를 가져다가 요리한 모양이지? 실수만 없었어도 둘은 여기 앉아 맛있게 우리를 먹었겠지. 나도 형을 잃지 않을 수 있고, 가짜들도 우리의 모습과 기억으로 살아갔을 테니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였을 텐데... 헛웃음을 흘리며 오븐 표면에 이마를 댄다. 이마가 뜨겁다 못해 아파오는데도 그 위에 머리를 꾹 누르며 다짐하듯 중얼거린다.)
... 먹어줄게. 넌 오늘 한 입도 먹을 생각하지 마. 내가 네 몫까지 전부 처리할 테니까.
백지혜?:(순간 몸을 떼어내고 이마를 확인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종종 그들이 했던 행위의 기억 탓인지, 자신의 고유한 성격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살해하려던 계획을 세웠던 주제에 걱정하는 꼴은 비웃기겠지... 제 왼팔을 꾹 누르다 조금씩 걸음을 옮겨 오븐 옆에 선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그를 먹는 게 싫으신 거라면, 요리는 전부 폐기할게요.
그 후에 저를 경찰에 넘기시든... 처리하시든, 뜻대로 하세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꼭 드셔야겠다면... 식탁에 앉아주세요. 오븐 앞에선 식사할 수 없습니다.
오광철:폐기되는 쪽이 더 싫어. 정말 아무런 의미 없이 죽은 거 같고. (오븐에서 소리가 나면 그제야 이마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붉어진 이마를 매만지며 식탁으로 가 앉는다. 열이 오른 탓인가. 가벼운 두통감에 미간을 찌푸린다.)
형을 어떻게 죽였어? 죽을 때 아파했어? 유언은? 그리고... (눈 수프, 가슴살 샐러드, 장기 장조림, 미트파이와 블러드 드링크. 메뉴 목록을 다시 짚어본다. 쓰이지 않은 재료가 있잖아.) 뼈는?
백지혜?:저도 모릅니다. 그날, 그러니까... 당신의 도플갱어와 약속했던 날 저는 늦게 도착했으니까요. 현장에 남아있던 건 두 구의 시체... 우리의 시체 뿐이었습니다. (식탁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와인병을 가져온다. 잔 하나를 꺼내 오광철의 앞에 놓는다.) 저는 그저 요리한 것 뿐입니다. (눈을 감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두 시체 모두 상처가 많았지만, 특히 자신... 그러니까 원래의 자신의 몸엔 자상이 더 많았다. 반대로 오광철의 시체는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다. 아마 아팠겠지. 유언까지 추리할 정도로 실력이 좋지 않아 그대로 입을 다문다.)
뼈는 못 먹는 부위이니 따로 모아뒀습니다.
부엌 작은 다용도실 구석에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가르킵니다.
오광철:그럼 도플갱어가 왜 생기는 건지는? 누가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건지는? (와인 잔을 치우고 병을 통으로 들어 목으로 흘려보낸다. 빈 병은 시선이 닿는 곳에 올려놓고 병에 달린 라벨을 살핀다.)
그거 알아?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봉투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간다. 봉투 입구를 벌린 뒤 안에서 두개골을 꺼낸다. 둘 중 무엇이 지혜일까. 잠시 고민하다 두 개의 뼈 위에 입 맞춘 뒤 들고 자리로 돌아온다.) 인육이 몇 칼로리일지 계산한 사람이 있어. 성인 남성의 뼈가 총... (얼마나 됐었더라. 대충 25,000?) 아무튼 칼로리를 계산했다는 건 먹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 저거로도 만들어. 골수를 뽑아 음료로 만들던, 뼈를 고아 육수를 내던, 갈아서 가니쉬로 쓰던. 아무튼 해내.
백지혜?:...모릅니다. 저는, 저희는 어느순간 존재해 완전한 인간이 되길 욕망하며 살아갑니다. 그것만이 삶의 목적이에요. 온전한 감정과 도플갱어였던 기억을 잊는다면, 저희는 진짜와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쭉 들이켜 마시는 모습을 바라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는 걸음걸이도, 봉투에서 두개골을 꺼내는 손길도, 그 위에 입 맞추는 모습도 전부 바라본다. 이어진 말엔 시선을 피한다.) 꼭... 그러셔야겠다면.
찐득하고 진한 혈향이 목에서 넘실거립니다.
라벨은 뗐는지 지워진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백지혜... 는, 봉투에서 뼈를 추려내 도마 위로 올립니다.
분쇄하기로 결정했는지 믹서기 돌리는 소리가 요란히 울려퍼집니다.
마저 식사를 이어갑시다.
당신의 앞엔 김이 피어오르는 미트파이 한 조각이 내어집니다.
오광철:(목적이 있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존재하게 되는 거라면 우리는 그냥 운이 나빴던 것이구나. 식탁 위에 두 개의 두개골을 장식하듯 올려놓은 뒤 음식을 기다린다. 속에서 올라오는 혈향에 안 그래도 두통으로 어지러웠던 시야가 핑 돈다. 배불러. 토할 거 같아.) ...미트파이는 어느 부위로 만들었어?
백지혜?:(큰 칼과 블렌더를 사용해 갈고 분해한 뼈를 접시에 차곡히 담아 식탁 위로 올린다. 곱게 갈아내진 못 했는지 굵은 재질이 눈에 띈다.) 두 사람의 뇌와 기타 근육을 사용했습니다. 천천히 드세요. 광철...
철아. (완벽히 두 사람이 된다면 언젠가 부르겠거니 했던 이름. 이젠 그럴 수 없으니, 한 번 만이라도... 그저 그게 아쉬웠기 때문에 불러본다. 동시에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오광철:(뇌. 확실히 메인 메뉴로 적합한 부위 선정이다. 보통 기억은 뇌랑 심장에 저장된다고 하니까. 분쇄된 뼈를 파이 위에 잔뜩 뿌리고 포크와 나이프로 파이를 크게 썰어 입에 넣는다. 불쾌할 정도로 배가 부르지만 계속해 입안에 파이를 구겨 넣는다. 음식을 삼킬 때마다 올라오는 구토감에 입을 막고 진정시키길 반복하다 파이를 반 정도 남긴 채 식기를 내려놓았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그건 형에게만 허락된 이름이니까. (천천히 먹으란 말엔 대답도 안 하다가 애칭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제야 눈길을 준다.) 심장은. 무슨 메뉴에 들어있어. (자신이 할 말만 한 채 입을 다문다. 기억이 저장된다고 하는 두 부위의 절반. 1인분 분량만 먹자. 나머진 내일 일어나서. 상하기까진 시간이 있을 거야.)
백지혜?:(남은 파이 절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름을 부르지 말라는 말에 '아.' 하고 짧게 탄식하며 고개를 든다. 덕분에 정면으로 마주한 시선에 또 한참을 굳어 있는다. ) 심장은... (천천히 입을 떼며 빈 와인 병을 가르킨다.) 이미 드셨습니다. 심장의 피를 빼내어 와인으로 담고, 남은 근육과 결막은 샐러드에 활용했어요.
...입가심으로 드시면 딱일 겁니다.
오광철:(따라 빈 와인병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다행이네... (자신 있게 심장의 위치를 물었지만 사실 이 이상 먹을 자신이 없었기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집에 들어온 이후 가장 편해 보이는 미소를 짓는다.)
응. 샐러드 줘. 남은 건 내일 먹을 거니까 냉장고에 넣어주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이는 음식을 더 먹기 위해 소화시키는 행동이기도 했고, 계속 식탁에 앉아 가짜의 행동을 지켜보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행동이기도 했다.)
거실은 주방을 따라 이어지는 큰 핏자국을 제외하곤 평소와 같습니다.
당신과 백지혜가 함께 있던 소파,
마주 앉아 바라보던 간이 테이블,
큰 티비가 그 기억들을 상기시킵니다.
백지혜?:(샐러드를 접시에 일정량 담고 테이블 위로 올린다. 마저 먹지 않고 자릴 뜨자 의아함에 고갤 기울인다. 내가 그 사이 음식을 몰래 먹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자신에 대한 신뢰는 없을텐데... 당연히 갈등했다. 안 보는 사이에 먹을 수 있다면 좋은 게 아닐까 하고. 반 남은 파이와 샐러드, 수프와 절임에 시선을 떼지 못 한 것도 내내 앓아왔던 허기 탓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먹고 백지혜가 된다면, 괴로운 표정을 짓는 건 오광철 뿐만이 아니게 되겠지. 그의 말대로 남은 음식들을 랩핑해 냉장고에 넣는다.) 저를 경찰에 넘기기 전까지는 다 드시는 걸 권장리겠습니다.
(결국 샐러드와 포크를 들고 거실로 향한다.) ...자, 마저 드세요.
오광철:(거실을 돌아다니려던 목적을 잃고 가만히 서서 거실에 놓인 살림들을 바라본다. 소파에 누워있으면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된다며 와서 일으켜 세워줄 거 같고, 테이블 위엔 같이 적던 라임 노트가 있을 거 같고, 그러다 시간이 되면 같이 티비 앞에 앉아 아무거나 방송을 틀어놓고 웃었겠지. 울고 싶단 생각을 꾹 누르고 샐러드 그릇과 포크를 받아 소파에 앉는다.) 경찰을 부르기에 가장 적당한 타이밍이 언제일까. 서둘러야겠네... (포크를 움직이는 손길이 느리다. 그러다 문득, 무언갈 찾는 듯 거실을 살핀다.) 케로베로스는?
백지혜?:(소파 앞에 서서 가만히 그 모습을 내려다본다.) 글쎄요... (나를 경찰에 넘기는 일에 적절한 조언을 구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그가 빨리 식사를 끝마쳐야 편안해 질 수 있음은 확신했기에.) 영장이 발부되기 전일까요. (빙긋 웃곤 안반 문을 바라본다.) 제가 이 집에 들어온 후 부터 나오지 않았습니다. 안심하세요.
오광철:(고기랑 피 같은 것만 먹다가 그래도 풀이 들어가니 속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다 먹은 뒤 빈 샐러드 그릇은 다시 백지혜?의 머리를 향해 던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경찰 인맥도 사귀어둘걸. (이라는 말과 함께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간다. 케로베로스를 들어 꽉 껴안고 침대 위에 엎어진다.) 아빠랑 이사 갈래? 형 버리고 나랑만 가자. (밖에 있는 가짜 보고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