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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법개론

 

 

 

 

 
 
 
백지혜:제가 한 번 독립해 보겠습니다
 
 
 
 
 
 
Date 2024.10.30
 
 
 
 
백지혜:... (어째서일까. 오늘은 눈이 평소보다 더 일찍 떠졌다. 주말이면 알람은 커녕 휴대폰을 꺼두기까지 하고 죽은듯 누워만 있었는데... 아, 어젯밤 커텐 치는 걸 깜빡했었구나. 느릿한 사고에 눈을 강렬히 내리쬐는 햇빛을 그제야 눈치챈다. 손등으로 두 눈을 눌러 가리기만 하고 몸을 뒤척이길 한참, 결국 일어나 커텐을 닫는다.)
 
하... (화창하고 평화로운 길거리를 봐도 나오는 건 한숨 뿐.)
 
 
백지혜: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오광철:음... 우리 집이 원래 이렇게 삭막했던가.
 
 
백지혜:
SAN Roll
기준치: 40/20/8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과, 광철... (오광철? 아무런 준비 없이 하게 된 재회는 꽤 당황스러웠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다시 한 번 그를 만난다면 좀 더 많은 말을 해주고 싶다고, 조금 더 함께 있고 싶다고 그렇게나 생각해 왔는데. 하지만 그가 죽은 건 누구보다 자신이 더 알았기에 혼자 품어온 자학같은 소망에 불과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죽기 전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는 것도 자신 뿐이니까. 그런데 마치 산 사람이라는 것 마냥 들어오는 모습이라니... 결국 미쳐서 환상을 보는 걸까? 그대로 굳어 눈만 깜박이다, 점차 표정이 일그러져 간다. 꿈에서 만나기도 힘들어 잠도 줄였더니 환상으로 나타날 줄은...!)
 
 
오광철:응. 나야.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가며 창을 가리던 커튼을 걷는다. 집 안을 크게 한 바퀴 돌다가 옆에 다가와 앉는다.) 형 지금 표정 이상해. 나 다시 갈까? (환상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손을 겹친다. 오랜만에 보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나 봐.)
 
 
백지혜:(그가 움직이는 동선 그대로 눈만 따라간다. 다시 한 번 들이친 햇빛에 두 눈을 찡그리며 감았다 떠낸다. 이 눈을 뜨면 신기루마냥 사라져 있을 줄 알았는데... 오광철은 사라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제 손을 잡아오기까지 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허, 헉. (멍청한 소리를 내며 놀라 뒤로 발을 빼면서도 잡은 손을 놓게 두지 않았다.) 어떻게...?
 
...정말, 광철입니까? 살아... 있었어요?
 
 
오광철:(멍청한 소리에 웃는 소리를 낸다. 맞잡은 손을 더듬으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 죽었어. 죽은 거 맞아. 그때 그 마을에서 형을 보낸 뒤 바로 죽었어. 자살했어. (잡지 않은 손으로 아무 흔적도 없는 목을 툭 건드린다. 그리고 안경을 올리듯 아무것도 없는 미간 위에 손을 올렸다 멋쩍은 듯 내린다.)
 
형. 할로윈 데이의 전설을 알아? 할로윈은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하루래. 오늘이 딱 그런 셈이지.
 
 
백지혜:(맞닿은 손의 감촉이나 온도, 그가 내뱉는 말과 행동 모두 살아있을 적과 다름 없다. 낯설게 변해버린 건 자신 뿐이라는 것 처럼, 이 자리에서 나 혼자만 붕 떠버린 기분이다. 이어 들려온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자살이라뇨. 어째서...! ...그곳에서라도, 남은 삶을... 살 줄 알았는데. 그런 데 왜... (다시 만나서 이런 대화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날 이후, 불에 탄 시신이 발견 된 이후... 뭔가 놓친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게 최선이었을거라 생각해왔다. 내 판단, 선택이 서로에게 가장 좋았을 것이라고. 무언가 말하려 입을 벙긋대다 그대로 다물어 버린다. 대신 한참 그를 시선에 담다가, 또 다시 물음했다.)
 
할로윈? (벌써 10월이던가...) 단, 하루만이요?
 
 
오광철:(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는데. 자살했다는 말은 하지 말걸 하는 후회가 떠오른다. 잠깐의 침묵 후 죄를 고하듯 고저 없이 말을 이어간다.) 형도 잘 보냈으니 그런 곳에서 의미 없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남은 삶 동안 소티스랑 바람이라도 나면 어떡해. (마지막 문장은 가벼운 어조로. 진짜 바람날 리가 없다는 거 형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나름대로의 분위기 환기용 조크였다.)
 
응. 오늘 단 하루. 그리고 난 오늘 집을 어지럽힐 거야.
 
 
오광철:어디부터 할까?
 
 
백지혜:(휑한 집과 생기 넘치는 그가 대조되는 기이한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벗어둔 옷을 주워들어... 얼굴에 대본다. 이것도 진짜... 옷? 정말 환각이 아닌가?)
 
...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든다.) 어지르기 말이죠... ... ...꼭, 꼭 그래야.... 합니까?
 
 
오광철:(... 아!) 그 옷 빌린 거니까 너무 냄새 맡지 마. 그거 내 향 아니야. (당연히 환각이 아닌 옷을 뺏어서 방 안에 적당히 던져둔다.)
 
응. 해야 돼. 내가 보기에 형은 이 집을 좀 가볍게 여길 필요가 있어. 그런 뒤 다시 청소하면서 기운도 좀 빼고, 나도 잊고. 케로베로스도 다시 데려와.
 
 
백지혜:(어디서 빌린 거지...? 저승 의류 대핸 서비스 그런 게 있나? 눈매를 가늘게 하고 뺏긴 옷을 바라본다. 그러나 작은 숨을 내뱉으며 날을 이어간다.)
 
못... 합니다. 오늘 하루 이곳에 온 거라면서요. 와주신 건... 기쁘지만. 솔직히 그 이후의 두려움이 더 커요. 마치 함께 살던적과 같은
 
곳을 다시 한 번 내 손으로 치우라니... (저도 모르게 달달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꾹 잡아 내린다.) 당연히... (이번엔 미묘한 웃음을 짓는다.) 잊을 수도 없고요.
 
그냥 여기서, 하루동안 제 곁에 있어 주시면 안 됩니까?
 
 
오광철:(옷 출처는... 비밀. 알몸으로 인천 시내를 걸어 집까지 올 수는 없잖아. 방문을 닫은 뒤 그 앞을 막아선다.)
 
해야 하는데. 이번이 형이 홀로서는 것을 도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횐데. (하루뿐이지만 다시 집에 돌아올 기회를 얻은 게 큰 행운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겠지. 그러니 오늘 꼭 해야만 해. 문에서 떨어져 소파로 걸어가 그 위에 엎어진다.)
 
 
오광철:오늘은 내내 같이 있어줄 테니까 내일부터 치우고, 또 어지럽히고. 다시 치우면서 날 잊어. 그러다 가끔 생각나면 사진이라도 보며 사랑한다 말해줘. 그거면 돼.
 
 
백지혜:마지막... 아. (떨어지는 쿠션을 겨우 하나 붙잡았더니 뒤이어 줄줄 쿠션이며 인형이 떨어지자 그대로 잡았던 쿠션을 안고 멍청... 하게 서서 오광철을 내려다본다. 이것도 살아있을 적의 그 모습 같아.) ... (소파 끝에 걸터앉아 쿠션을 내려놓는다.)
 
제가 당신을 잊길 바라십니까? (양 손 네번째 손가락. 그중에서도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빼지 않은 오른 손의 반지를 매만지며 말을 이어간다.) 예, 확실히.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무뎌지기는 하겠죠. 하지만... 왜 그걸 바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오광철:(내려놓은 쿠션 위에 편하게 다리를 올려놓고 몸을 쭉 핀다.) 15년 만에 와서 그런가 졸려. (하품.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쿠션을 더 꽉 끌어안는다. 이제 슬슬 케로가 배 위로 올라타야 할 거 같은데... 허전해.)
 
응. 형이 날 잊어버렸으면 좋겠어. 형의 삶이 이젠 곁에 없는 사람 하나 때문에 다 망가졌으니까. (반지를 두고 나온 날 현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왼쪽 손을 내민다.) 그러니 그 반지도 다시 가져갈래. 내일부턴 집에 있는 내 물건들도 다 버리고 형의 삶을 살아.
 
 
백지혜:(15년... 하긴, 애초부터 그와 내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지 오래였지. 소파 등에 팔을 얹어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익숙한 모습을 다시 못 보게 된다고 생각하면, 더 버텨낼 수 없을 거 같아...)
 
제 삶은 원래부터 엉망이었습니다. 광철을 만나기 전엔 이보다 더욱. 그러니까, 그저 당신을 만나기 전으로 되돌아 간 것 뿐입니다. (내민 손을 보고 다시 자세를 고쳐자은 후 제 두 손을 멀리로... 치워버린다.) 줬다 뺏는 게 어딨어요. 제겁니다. 물건들도... 안 버려요.
 
...장례를 치룬 후 오광철 씨의 재산은 전부 제게 양도됐습니다. 제거예요. (유치)
 
 
오광철:... 그게 마음에 안 들어. 내가 고쳐놨는데 왜 멋대로 돌아가? 애프터케어 해준다니까. (미간 찌푸리며 손 까딱이다 결국 쿠션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파를 짚으며 몸과 소파 사이에 백지혜를 낀 듯한 자세를 만든다.) 안 돌려주면 이대로 형 위에 누워버릴 거야. 누워서 잠들 거야. 하루를 낭비해 줄 거야.
 
나 지금은 살아있어. 그러니 양도된 거 전부 다시 내 거야. 형도 내 거고. (따라서 유치!)
 
 
백지혜:(씁쓸한 웃음만 짓다가 자세를 바꿔 훅 가까워지자 숨을 그대로 멈춘다. 멀리 치운 손을 꼼지락대다 시선을 피한다.) ...그러시죠. 다시 만난다면 아무 말 않고 온종일 안고 있는 것도, 저는 상상해 봤습니다.
 
부활에 관한 법률은 아직 없어서, 유감이군요. (머뭇대다가 조심스레 머리에 손을 얹고 느리게 쓰다듬는다.) 저를 가지시는 것만큼은 좋지만.
 
...다른 곳 어지럽히러 갈까요? (불리할 때 주제를 바꾸면 잘 먹혀들었었지...)
 
 
오광철:(여전히 불만스럽지만 안 그래도 못 사는 사람 더 못살게 굴 생각은 없었다. 치웠던 손을 툭 건드린 뒤 몸을 숙여 끌어안았다 떨어진다.) 오늘 하려고 했던 것들 다 끝내면 하게 해줄게. 온종일 끌어안고 있는 거.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본다. 아직은 괜찮아. 여유 있어.)
 
응. 형이 부활에 관한 법률 만들어줘. 오늘 안으로. (쓰다듬는 쪽으로 머리를 기울인다. 주제를 바꾸는 전법이 잘 들어먹은 듯.) 다른 곳 어디? 하자, 하자~
 
 
백지혜:(덩달아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본다. 정말 오늘 단 하루 있는 거구나. 돌아왔으니, 평생 이대로 있어준다면 좋을텐데... 잠깐 안겼다 떨어진 사이 그의 허리를 둘러 감싸 안고는 품에 고개를 묻는다.) 너무 많이 어지럽히진 말아주세요...
 
저 토요일까지 일하다 들어왔습니다. 추가근무는 사양하고 싶군요. (갈아입지도 않은 넥타이를 손으로 툭 건드린 뒤 몸을 일으킨다.) 제 물건이 제일 많은 서랍장으로 갈까요?
 
 
오광철:(허리를 끌어안긴 채로 가만히 서있다 등 뒤로 손을 돌려 풀어낸다.) 얼마나 어지럽힐지는 형 하는 거 봐서. (이왕이면 많이 어지럽히고 싶은데... 일이 바쁘다면 청소하는 것도 그만큼 오래 걸릴 테고. 넥타이를 무작정 끌어당겨 풀어내곤 손을 잡고 서랍장으로 향한다.) 형이 3달 사이에 뭘 더 샀는지 봐야지.
 
 
백지혜:
관찰력
기준치: 65/32/13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백지혜:...주,주거 침입에 물품 도난까지! (당황해서 아무렇게나 내뱉은 후 팔을 잡아당긴다.) 방금 뭐 들고가셨죠? 다... 봤습니다. (안 봄)
 
 
오광철:... 응? 여기 내 집인, (말은 중간에 끊기고 으아아. 이상한 소리를 내며 끌려 나온다.) 나 아직 아무것도 안 꺼냈는데. 안에 수상한 거 있어? 형 또 사기 쳐?
 
 
백지혜:아뇨. 없습니다. 사기라뇨? 너무 오래 전이라... 잊으셨나본데. 저 손 털었잖습니까. (웃음...) 정말 아무것도 안 꺼내셨습니까? 몸 수색이라도 해볼까요?
 
 
오광철:손 턴 건 기억하지. 하지만 내가 없는 3달 사이에 뭘 했을지 혹시 모르잖아. 형을 보고 있긴 했어도 항상 본 건 아니었고. 그것마저도 흐릿했고. (양손을 머리 높이로 든다.) 네에. 아무것도 안 꺼냈으니 수색하세요~
 
 
백지혜:...보고, 있었습니까? 흐릿하게? (어떻게 본... 거지? 이번에도 짧게 머뭇거리다 몸에 팔을 두른다. 수색한다더니... 그대로 안고 있길 잠시, 다시 떨어져서 팔이나 어깨, 웃옷 등을 털어주며 광철을 살펴본다.) ...사후세계라는 건 있는 건가요?
 
 
오광철:혼자 멍하게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빛이 들어오며 단편적으로 보였어. 말한 것처럼 흐릿해서 잘 기억은 안 나. 그냥 형이 엄청 힘들게 산다는 것만 기억해서 오늘 하루를 받자마자 찾아온 거야. (내가 아는 수색이랑은 행동이 다른데? 몸수색은 그냥 핑계였나. 서랍장 안을 곁눈질로 바라보다 그냥 문을 닫는다.) 그걸 사후세계라고 해도 되나... 아무것도 없던데? 재미없어서 사라질 뻔했어.
 
 
백지혜:그렇군요... (광철에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건 좀 부끄럽긴 하지만, 덕분에 오늘 하루라도 만날 수 있던 거겠지. 게다가 잘 기억 안 난다고도 하니...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몸 이곳저곳을 매만지다 마지막으로 꼬옥 안은 뒤 떨어진다.) 그럼 제가 죽어도 광철하곤 못 만나겠군요. (가볍게 한 말이지만 다소 아쉬움이 묻어난 것도 같다.) ...아무것도 없네요~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오광철:(다시 한번 끌어안고 중얼거린다.) 형이 죽은 뒤에 형에게 살아있으며 있던 재미있는 이야기들 들려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아쉬웠어. 그래서 죽은 뒤에 조금 울었어. 이제 진짜 끝이구나 하고. 형 못 보는구나 하고. (이젠 다 옛날이야기니까. 덤덤한 목소리로 말한다.)
 
... 그런데 뭘 착각한 거야? 숨길 거 있어?
 
 
백지혜:...못 본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어떻게든, 보고 있잖습니까. 언젠가... 아주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서 오래도록 함께할 거야. 확신할 수 없는 소망을 속으로만 되뇌이며 손 닿은 곳에 좀 더 힘을 준다. 갈수록 먹먹해진 목소리가 그새 잠겨버렸는지 낮은 음성이 흘러나온다.) 어차피 광철 없이 재밌는 일 따위... 없습니다.
 
아뇨. 그냥... 보지 않는 게 더 나아요. 이제 다른 곳으로 가죠.
 
 
오광철:오늘 만난 건 아주 운이 좋았기 때문인데도?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데 형은 괜찮아? 긴 시간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버티며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어? (나도 겨우 3달 사이에 많은 걸 잃어버렸는데. 죽음을 받아들이고 납득하게 되며 남은 거라곤 형이 행복했음 좋겠다는 것 밖에 없는데.) 혹시 모르지. 살아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보지 않는 게 낫단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서랍장 위쪽에 있는 액자나 장식들만 대충 흐트러 놓는다.) 다음은 어딜 어지럽힐까.
 
 
백지혜:... (길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에 그저 침묵한다. 죽으면 다들 그렇게 되는 걸까? 모든 것을 잃을 때 까지 그런 곳에서... 아니면, 오광철이 그렇게 있던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 잠깐동안 생각만 하다 겨우 짧은 답을 내놓는다.) 모든 걸 다 잃어도, 광철을 잃는 것 보단 낫습니다.
 
(나중에 저 액자를 치울 때 사랑한다고 해줘야겠다...) 으음, 테이블로 가죠. (거긴 뭐가 있었더라...?)
 
 
오광철:형의 삶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게 기뻐. 하지만 역시... (잊어버리면 좋겠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형이 행복하길 계속 바랐단 건 형을 잊지 못했단 것과 같은 뜻이기도 하고, 계속 말하면 형이 또 슬퍼할 거 같아.)
 
 
오광철:형. 이거 치워도 돼?
 
 
백지혜:(역시 안 치웠군... 머쓱하게 뒷목을 문지른다.) 어지럽히기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치우시기도 하는군요.
 
 
오광철:일단 치워야 다시 어지럽힐 거 아냐. 그리고... 형이 술 마시는 거 너무 많이 봤어. 이제 싫어.
 
 
백지혜:
기준치: 35/17/7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오광철:(엇...) ............. 약은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있지?
 
 
백지혜:아... (발을 조금 움직여 보다가 쓰라린 기분에 눈가를 찌푸린다.) 괜찮습니다. 제가 치우고 올게요.
 
 
오광철:...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사고 치고 눈치 보는 고양이 표정.)
 
 
백지혜:(24시간 중에 20분도 아깝다면?)
 
 
백지혜:(그래도 어제 일하다 온 후 바로 잤으니까... 더럽기는 하지. 씻고 나갑니다.)
 
 
오광철:오늘 하려고 했다는 일들 있잖아. 치료 끝나면 장 보러 갈래? 형 혼자서 밥 먹기 연습 시킬래.
 
 
백지혜:그런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구급상자에서 연고와 밴드를 꺼낸다. 혼자 있었으면 그냥 뒀을텐데. 역시 옆에 사람이 있으니... 더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정신건강이나 그냥 건강이나.) ...지금도 혼자서 잘 먹습니다.
 
 
오광철:집까지 오는 길에 혼자 세웠어. 집 어지럽히고, 형을 꾸며서, 장 보기. (하나하나 말할 때마다 손가락을 접는다.) 혼자서 잘 먹는 거로 안 보이던데... 그리고 어차피 냉장고도 텅 비어있을 거 아냐. (내내 일했으니까.)
 
 
백지혜:(접은 손가락 중 중간 것을 다시 펴준다.) 아직 안 꾸며주신 것 같은데. (...장도 아직이니까 마지막으로 접은 것도.) ... ... ...혼자서 먹으려니, 해먹는 게 더 번거롭습니다. 하루 분량이라면 사오도록 하죠.
 
 
오광철:꾸미는 거 이제부터 하려고. 예쁜 옷 입고 장 보러 가자. 냉장고 가득 채울 정도로 살 거야. 3달은 버티게 만들 거야. (구급상자를 한 쪽으로 치워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머리 위에 수건을 올려주고 옷장이 있을 방으로 들어간다.) 어떤 옷이 좋아? 색은? 내 옷도 입어도 돼. (아직 안 버렸다면 체구가 비슷하니 사이즈도 대충 맞겠지. 옷 크게 사두는 편이라 다행이다.)
 
 
백지혜:(3달 버틸 수 있는 거면... 통조림이려나.) 혹시 거기선 미래도 볼 수 있습니까? 전쟁나요? (헛소리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닦은 후 뒤따라 방 안으로 들어간다.) 요즘은... 무채색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검은색 셔츠를 하나 집어든다. 오광철의 옷들은 옷장 옆칸에 그대로 접어 보관되어 있다.) 광철도 갈아입어요. 모처럼 집에 오셨잖습니까.
 
 
오광철:(아무거나 사놓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아니? 미래 몰라. 현재도 제대로 못 봤는데. (검은색... 꼭 상복 같다는 생각을 했다. 3달 내내 이런 옷만 입어온 건가?) 그거 좋아서 입는 거야? 형 취향이야? (백지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의 옷장에선 맨 위에 있는 옷을 아무거나 집어 갈아입는다. 춤추는 선인장이 프린팅된 하얀 후드티.)
 
 
백지혜:아쉽군요. 복권번호라도 알면 일 안 하고 매일 누워있을 수 있었는데. (장난... 처럼 말한 후 검은색 바지를 대충 골라 얹어둔다.) ...일할 땐 차분 한 게 좋기도 하고, 요즘 정신이 없어서... 옷에 뭔갈 자주 묻히고 다니거든요. 부끄러운 이유라. 다른 사람에겐 비밀입니다. (그보단 장례식이 있던 날, 그때로부터 한 발자국도 못 나아갔다는 이유가 더 크긴 했다. 의식하고 입었던 건 아니지만... 대충 갈아입은 옷을 빤히 보다가 입꼬리를 씰룩 올려 웃는다.) ...잘, 어울려요... 역시 처리가 아니면 이 옷들을 누가 입겠습니까. (진짜로.)
 
 
오광철:거기 있는 동안 미래를 보려고 노력이라도 해볼걸. 매일 형만 보다가 복권 번호 놓쳤네. (복권 번호가 있었으면 형이 좀 더 편하게 살았을까? 날 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곰곰이 고민한다.) 오늘은 계속 옆에 있을 거고 묻어도 집 와서 갈아입으면 되잖아. 그런 거 따지지 말고 형이 좋아하는 게 뭐냐고. (고른 옷들을 뺏어간 뒤 옷장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러는 와중에도 잘 어울린다는 말에 손으로 브이를 만든다.) 인터넷 보다가 이상해서 색 별로 세 벌이나 사버렸어. 사놓고 입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백지혜:(복권 당첨되면 술을 궤짝으로 사서 껴안고 마실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일을 하니 사람 몰골이지, 아니었다면 그가 집에 오자마자 다시 나갔을지도 몰라. 어느새 뺏긴 옷들을 가만 보며 허망해진 손을 괜스레 쥐었다 편다. 좋아하는 옷이라... 옷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오광철이 입은 옷의 다른 컬러를 꺼낸다.) 인터넷으로 이상한 쇼핑만 하셨군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꽤 마음에 드는지 이전보다 훨 표정이 밝다. 나중에... 옷장을 뒤져서 무슨 옷을 더 샀는지 확인해야지.)
 
 
 
오광철:응. 이상한데 귀엽고 특별하잖아. ... 아. (내 선인장 옷. 자신 때문에 억지로 고른 건 아닐까 잠시 걱정했지만 표정을 보니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저런 게 취향인가? 내 번호랑 계좌 남아있으면 가기 전에 비슷한 거 몇 개 더 시켜놓을까. 뺏었던 옷들을 다시 옷장 안에 정리해두곤 방을 나온다.) 머리 다 말리면 그거 입고 나가자. 오랜만에 커플룩 입는 기분... (그리고 멈칫한다. 드라이기가 어디 있더라.)
 
 
백지혜:(멈춰선 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손을 잡아 이끌어 욕실 앞에 선다. 서랍에서 드라이기를 꺼내 콘센트를 연결한 후, 그걸 다시 오광철에게 내민다.) ...말려주세요. 오늘 광철이 하자는대로 다 할 거니까, 이정도 어리광은 감수하셔야죠.
 
 
오광철:응. 그럼 앞에 앉을래? (드라이기 껐다 켰다를 반복하다 오른손에 쥔다. 형이 머리를 말려줄 때 어떻게 했었더라. 너무 뜨겁지 않게, 적당히 거리를 둬서...) 나에게 이거 시킨 벌로 장 볼 때 엄청 귀찮게 굴 거야. 하나하나 형이 뭐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살 거야. 뭐 먹고 싶은지 미리 생각해놔.
 
 
백지혜:(따뜻한 바람이 닿아오자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머리카락 사이를 스치는 부드러운 손길과 조금 멀리서 들리는듯한 목소리에... 눈이 감겨오는 것도 같다.) 원래도... (장 볼 땐 내가 전부 생각했는데? ...물론, 그때는 자신이 아닌 오광철이 먹고 싶은 게 뭘까 하고 고심하긴 했지...)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꾸벅...) 생각해 볼게요.
 
 
오광철:응. 열심히 생각해. 이젠 내가 아니라 형 혼자 먹을 음식들이니까. (생각해 보면 매번 내 입맛에 맞추느라 형이 뭘 좋아하는지도 제대로 몰랐던 거 같아. 속으로 짧은 반성과 함께 물기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마르자 드라이기의 스위치를 내린다.) ... 졸려? 자고 나서 다녀올래? 아직 (시계를 본다.) 마트 닫으려면 시간은 있을 거 같은데.
 
 
백지혜:...안 졸려요. 괜찮습니다. (생각해보면, 마지막에... 직접 한 요리를 못 준 것도 꽤 오래 후회했었지. 바람소리가 멎자 자연스럽게 빗을 건네고 거울을 통해 그를 응시한다.) 앞으로는 혼자서 잘 먹을 테니까... 오늘만 같이 먹으면 안 됩니까? (어느덧 몸을 반대로 돌려 옷깃을 잡아당긴다.)
 
 
오광철:안 졸린 거 맞지? (받은 빗으로 머리카락을 천천히 빗어나간다. 뻗쳤던 부분도 꾹 누르고, 아프지 않게 살살.) 졸려도 나 가기 전까지 참아. 같이 있고 싶다며. (이어진 말엔 오래 고민한다. 혼자서도 밥을 잘 먹게 만드는 게 목표인데 내가 먹어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음... (끌려간 뒤 코 위에 입을 맞췄다 떨어진다.) 그럼 딱 한 입만 먹을게.
 
 
백지혜:물론이죠. (오랜만에 듣는 안정적인 목소리에, 부드러운 손길까지 닿아 다시 한 번 고개가 휘청거렸으나 일부러 뚜렷한 목소리를 내곤 잠을 깨려 노려한다.)
 
(코에 닿은 감촉과 결국 얻어낸 원하는 답변에 만족한듯 옅게 웃는다.) 그럼 특별히 더 맛있는걸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광철:(방금 고개 휘청인 거 같은데. 의심스러운데...) 하지만 메인은 내가 아니라 형이 먹을 거라는 거 잊으면 안 돼. 날 위한 건 덤이니까 꼭 형이 좋아하는 거 생각해야 해. 내가 떠난 뒤에도 혼자 밥 먹을 수 있게. (마저 머리를 정리하고 선인장 후드티까지 건넨다.)
 
빨리 출발하자. 형이 잠들어버리기 전에.
 
 
백지혜:그렇게 계속 말하지 않아도... ('혼자' 라거나 '떠난 뒤' 같은 단어가 반복적으로 들리자 괜히 이별이 가까워진 기분에 미간을 좁힌다. 가까이 몸을 좁혀 볼을 꾹 누르고 입술 위로 입 맞춘 후 옷을 받아간다.) ...알고 있습니다.
 
(받아든 옷을 들고 잠깐 망설이다 오광철을 방 밖으로 질질질... 연행한다. 이전보다 더 몸이 엉망이니까. 빠르게 갈아입은 후... 장보러!)
 
 
그리고...
 
 
백지혜:
SAN Roll
기준치: 39/19/7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백지혜:(아무리 졸려도 그렇지, 서서 잠들 수 있나? 광철이 당황하겠어. 얼른 깨어나야지. 앞으로 향해본다.)
 
 
 
: 핸드아웃, 生의 전이를 공개합니다.
 
 
 
 
♬-♪
 
 
백지혜:아... (간만에 이상한 꿈을 꿨네. 그리고 또 이상한 주술 같은 게... 아직 다 차려지지 않은 정신에 옆에 있을 오광철의 손을 붙잡고 전화를 받는다. 주말에 연락을 하다니...) 예, 백지혜 변호사 입니다.
 
 
 
최 변호사: 지혜 씨~ 주말인데 밥 거르고 또 술만 마시고 계신 거 아니죠? 박 변호사님이 오늘 저녁에 같이 밥 한 끼 먹게 부르자는데 어때요? 시간 괜찮아요?
 
 
백지혜:하하, 아닙니다. 저 술 끊었다니까요. (구라) 으음, 정말 구미가 당깁니다만... 아쉽게도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다음에 뵙죠.
 
 
 
최 변호사: 에이 술 끊기는요! 선약도 거짓말인 거 아니에요?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할게요. 다음엔 진짜 시간 비워줘요!
 
 
오광철:형 근처에 사람이 아예 없진 않았나 보네. 다음엔 가서 같이 놀아봐. 좋은 사람들일 거 같아.
 
 
백지혜:직장 동료들이랑 사적 연 쌓는 거 아니에요. 평일 내내 볼 사람들인데, 주말까지 봐서 뭐합니까. 가봤자 일 얘기, 사건 떠넘기는 말만 할텐데. (피곤...)
 
 
오광철:나도 따지고 보면 직장 동료였는데? 디비전 멤버였잖아. (빤히...) 형 친구 없지? 세 달 동안 사적인 대화 나눈 거 얼마나 돼?
 
 
백지혜:그거랑은 좀 다르달까요. 마계는...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 대회가 끝나면 연락 정리를 하고 잠적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와선... ... ... 과거에 파묻힌 사색은 날카로운 질문에 깨진다.) 이젠 친구 좀 사귀라고 잔소리 하시렵니까?
 
 
오광철:뭐가 다른데. (의심스러운데 표정.) 잔소리할 거야. 곁에 아무도 없는 것보단 누군가랑 같이 있는 게 형의 삶엔 더 도움이 될 테니까. (맞잡은 손. 반지가 있는 부분을 만지작거린다.) 친구 말고 다른 걸 사귀어도 되고. (...) 이왕이면, 조금 나중에.
 
 
백지혜:왜 이렇게 제 슬기로운 삶에 집착하십니까? 그렇게 해서 광철이 성불이라도 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다신 못 만나게 되겠지. 하지만 평생 재미없을 내 삶의 찌거기만 보여주기도 싫어. 잡은 손을 그대로 올려 손등에 입 맞춘 후 내린다.) 이제 연애 참견까지. (부모님이 따로 없군...)
 
나중에 고려해 보겠습니다. 아직 전 남편을 다 잊지 못 해서요.
 
 
오광철:형이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줬으면 해서.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것도 진짜야. 29살이면 평생 독신으로 살기엔 아직 젊잖아. (성불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장소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공허를 느낄지도... 그건 싫은데. 손등을 바라보다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가능하면 빨리 잊어줘. 구질구질한 남자는 인기 없대.
 
 
오광철:뭐 살지는 고민 끝났어?
 
 
백지혜:예. 아마도... (카트를 붙잡고 몸을 낮춰 속닥인다.) 광철이 사주나요?
 
 
오광철:죽은 사람이 돈이 어디 있어? (곰곰...) 나중에 시간 될 때 은서에게 연락해 봐. 본가에서 내 몫으로 나오던 돈들 안 써서 받으면 꽤 될 텐데.
 
 
백지혜:(아니, 아무래도 죽은 남편 본가로 돈 달라고 연락하긴 좀 그렇지.) 그러고보니... 오은서 씨는 보고싶지 않으십니까? (카트를 밀고 냉동식품 쪽으로~)
 
 
오광철:은서도 보고 싶어. 하지만 은서보다 형이 좀 더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걔는 나 없이도 잘 살아. (오히려 집까지 오는 길에 인천 중구를 지날 땐 들키지 않게 얼굴을 꼭꼭 가리고 왔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는데 어떻게 설명해. 옆에 찰싹 붙어 냉동식품 코너로 향한다.) 뭐 사려고?
 
 
백지혜:그러고보면 한동안 광철을 그렇게 만든 범인 찾겠다고... 집안 전체가 꽤 바빴습니다. 요즘도 수색중일걸요. (잡을 수 있을 리는 없겠지만... 냉동식품 코너 앞에서 가만 서 여러 제품을 바라보다가 만두 몇 봉을 집어 카트에 담는다.) ...오래 먹기 좋습니다.
 
 
오광철:아, 수색... (그쪽 마을 주민들에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가상으로 만든 마을이라지만 꽤 오래 지내서 정도 들었는데.) 혹시라도 나중에 소티스 만나면 말 전해줘. 집에서 자살해서 미안하고 동생에게 쫓기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볼 수 있을 리 없겠지만.) 만두 말고, 다른 건? 오래 먹기 좋은 거 말고 형이 좋아하는 거 알고 싶다고. 그거 사고 싶다고오. (칭얼.)
 
 
백지혜:전해두겠습니다. (안 해야지.) 오은서 씨가 하루 빨리 잡으면 좋겠군요... 아, 이거. 좋... 좋아하기도 합니다. 만두. (세 봉지 기획 들고 애 달래듯 흔들어줌...) 그리고... 새우튀김도 좋아해요. (눈에 보이는 거 대충 집은 격이지만... 애초에 가리는 게 없는 많큼 호불호가 선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광철과 살기 편했던 점도 있고.) 다른 코너도 볼까요? 요즘 야채가 비싸다더군요.
 
 
오광철:(따지고 보면 날 진짜 죽인 원인은 구울이고 소티스는 그걸 발견해 삶을 연장시켜준 게 다인데. 미안...) 좋아하는 거 맞아? 진짜? (이어진 말에 냉동 새우튀김도 두 봉지 카트에 담고 야채코너 쪽으로 발걸음 옮긴다.) 나 가서 딸기 살 거야. 형이 딸기로 만든 디저트 좋아했으니까. (어째서 마트엔 디저트를 팔지 않는 거지? 집 가는 길에 휴대폰 훔쳐서 배민으로 시켜줄 생각도 한다.)
 
 
백지혜:(카트에 담긴 만두 세 봉과 새우튀김 두 봉 물끄럼 바라보며 카트를 밀어 옮긴다. 작게 웃으며 야채코너 옆 붙은 과일 매대를 훌어본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 팩만 사요. 딸기는 오래 관리하기 어렵잖아요. (오광철도 한 입 주게 맛있는 걸로 골라야지...)
 
 
오광철:(카트 옆에 매달린 채 걷는다. 오랜만에 보는 마트 풍경에 시야가 이리저리 돌아가기 바쁘다.) 그럼 딸기 말고 다른 과일도 하나 더 사자. 관리 쉬워서 형이 편하게 꺼내 먹을 수 있는 거로. (딸기 매대 앞으로 다가가 딸기를 노려본다. 뭐가 맛있는 걸까...) 과일 말고 밥으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사고 싶은데. 냉동식품만 먹으면 형이 게을러질거야.
 
 
백지혜:(오랜 고심 끝에 붉게 잘 익고 크기와 모양이 균일한 걸로 한 팩 집어 카트에 담는다.) 그럼 감으로 하겠습니다. 요즘 철이기도 하고, 오래 보관도 용이하니까... (나 혼자 먹을걸 이렇게 진지하게 고를 생각은 없었는데. 미묘한 기분으로 하나 집어 그것도 카트에 담는다.) 밖에서 바쁘니까 집에선 좀 게을러도 됩니다. 광철 없이 사는데 제가 부지런 해 뭐해요. (조금 툴툴 거리는 어투... 그러면서 착실히 신선 식품쪽으로 걸음 옮긴다.) 오늘은... 오므라이스로 해볼까요.
 
 
오광철:(딸기와 감을 카트에 담고 나면 다시 옆면에 매달린다. 다리를 들며 어린이 같은 놀이를 하다가) 너무 게을러서 안 돼. 계속 그렇게 지내다간 건강이 나빠질 거야. 몸을 쓰는 일도 조금씩 늘려야 해. (고개 돌려 몸을 훑다가 쿡 찔러본다. 아까 안았을 때 느꼈는데 확실히 살이 빠졌어.) ... 형 오므라이스 좋아해? 어떤 재료 넣어서 할 거야? 형이 좋으면 나도 좋아.
 
 
백지혜:(카트를 잠깐 멈춰 세운 후 오광철을 들어 땅에 내려둔다. '스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렇게 매달리면 위험합니다. 저한테 잔소리 하실 때가 아니라... 광철은 좀 더 조심성을 늘리는 게 좋아요. 신기하다고 막 가지 말고, 여행도 혼자 다니지 말고... 그랬으면... (급 침울해지는 분위기...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잇는다.) ...네, 좋아합니다. 당근이랑 완두콩을 쓰면 귀여운 색감이 되거든요. 계란이 들어가는 점도 그렇고. 따뜻한 식사의 정석 같아서요.
 
 
오광철:(얌전히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서서 눈을 깜빡인다. 매달려서 가는 거 재미있었는데. 아쉬운 듯 느릿하게 발걸음 옮긴다.) 이제 와 조심한다고 하루뿐인 삶이 더 늘어나는 건 아닌데. 알겠어. 조심할게. 그리고, 잠시만. (침울한 분위기를 살리고자 신선식품 코너를 지나쳐 조리도구들이 있는 곳으로 혼자 걸어간다. 잠시 후 꽃 모양 당근 커터를 챙겨 돌아온다.) 모양이 예쁘면 더 기분이 좋을 거 같아.
 
 
백지혜:더 줄어드는 것 보단 낫잖습니까. (작은 한숨을 내쉬고 발을 돌리려는 찰나, 혼자 총총 걸어가는 것을 붙잡지 못 하고 뒷모습만 가만 바라본다. 뒤늦게라도 따라가볼까 싶던 참에 들고 온 물건을 보며 눈을 깜빡인다.) 귀엽네요... 29세 남성이 혼자 쓰기엔 과할 정도로.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당근 커터를 톡 건드린다.)
 
 
오광철:집 근처에서 수명이 줄어들 만한 일은 없을 거 같은데... (당장 옆에서 은서나, 조직원들이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면. 주변을 슥 살피고 후드 모자를 꾹 눌러쓴다.) 꽃 모양에 익숙해지면 다른 모양도 사봐. 사무실에 예쁘게 만든 도시락 싸가면 형도 인기쟁이. (완두콩과 당근, 그리고 오므라이스에 넣기 좋을 거 같은 야채들을 짚이는 대로 카트에 담는다.) 고기나 생선도 좀 살래? 지금 너무 야채만 있어. 그리고 국에 쓸만한 것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좀 더 챙겨주고 싶은데. 간식도. (카트 앞부분을 당기며 무작정 걷는다.) 빨리. 더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봐.
 
 
백지혜:세상이 그렇게 수월하게만 돌아가면 보험사들은 뭘 해먹고 살겠습니까. (물론 집 근처에서 큰 사고가 날 일이 적긴 하지만, 어차피 조금 있으면 다시 잃을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말을 그냥 넘길 순 없는 법이다. 후드 끈을 정갈하게 리본 모양으로 묶은 후 당근 커터기를 카트에 툭 담는다. 이후 차곡차곡 쌓이는 식재료를 보고 '으음' 하며 고민하는 소리를 낸다. 안 썩히고 다 먹으려면 근 며칠은 부지런해져야 하겠어...) 그럼 계란을 조금... (속도가 높아진 카트를 뒤따라 걸으며 양 손 가득 계란이며 두부며 안아든다.) 저 평소에 그렇게나 안 먹고 살지 않았습니다. 밖에서 먹을 때도 많았고요... 이미 충분합니다, 광철.
 
 
 
오광철:보험사는... 알아서 잘 살겠지. 세상이 안전하게 돌아간단 뜻이니 걔네도 좋아할 거야. 그 시간에 형이나 조심하고 걱정해. (퉁명스런 목소리로 아무렇게나 내뱉는다. 어차피 근처에 아는 보험 설계사도 없는데 내 알 바인가. 천천히 걸음이 느려진다.) 진짜? 잘 먹고 다녔어? 하지만 내가 본 형은 술만 마시고 있었는걸. 제대로 먹는 모습은 거의 못 봤어. 그러니 걱정됐어. (앞서가던 위치 그대로 멈춰 선다. 그리곤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후드를 더 깊이 눌러쓰며 매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지금 표정 이상할 거 같아. 형이 충분해도 내가 충분하지 않은데.)
 
... 그럼 이제 집으로 돌아가?
 
 
백지혜:저는 광철이 좀 더 조심하면 좋겠다는 말을... (퉁명스러운 대꾸에 뒷말을 흐리곤 입을 다문다. 곧 이어진 말에 작게 앓는 소리를 낸다.) 우연히... 그런 모습만 본 거겠죠. 왜,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시시한 일상보단 극적인 장면만 보여주지 않습니까? (누가 그런걸 오광철에게 보여준 건진 모르겠지만.) ...걱정시켜드려 죄송합니다. 광철이 보고 있는걸 알아다면 좀 더 제대로 살았을 거예요. (아마.)
 
(멈춰선 모습을 가만 보고 있자니... 산책 끝내기 싫어하는 강아지의 뒷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키워본 적은 없지만. 하긴, 여길 오는 것도 아주 오랜만이겠지...) 조금 더... 둘러볼까요? 제가 좋아하는 건 많이 샀으니, 광철이 좋아하는 것도 몇 개 사죠. 필요없다곤 해도 간만이잖아요.
 
 
오광철:그건 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시시하고 보기 힘든 일들이었어. 차라리 형이 일하는 모습이라도 봤으면 좀 더 안심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그런데 아마, 형이 제대로 살았으면 난 오늘 여기 오지 않았을 거 같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걸 보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왔던 거니까. 멀쩡하게 살고 있었으면 멀리서 좀 지켜보다가 괜히 마음을 흔들어놓지 않고 다시 돌아갔을 거다.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자신의 목적을 잊지 말자.)
 
아냐. 다 샀으면 가자. 어차피 몇 시간 뒤면 전부 필요 없어질 텐데 오랜만인 게 뭐가 중요해.
 
 
백지혜:그것 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렇다면 어디로 가려 했을까. 내가 제대로, 그가 없는 슬픔을 참아내고 살았었다면 다른 사람을 만났을까? 집에 와 불쌍하게 사는 사람 하나 돕는 게 아닌 그가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단 하루 돌려받은 기적같은 날인데, 이런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좀 더... 습관이 된 사색은 상대의 숨소리에 깨어진다. ...이제와 이런 의문을 품는 것도 다 무용이겠지.)
 
...그래도 전, 오늘 광철을 볼 수 있었어서 기쁩니다. (옷깃을 붙들어 잡곤 한 걸음 다가간다.간략한 사실과 마음만 표현하니 한결 가볍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저는 아직 광철을 좋아하니까요.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갖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또 돌아와줄지도 모르고... 주변을 잠깐 둘러보다 캔으로 된 과일 음료를 하나 담는다.) 이거, 좋아하셨죠. 이제 돌아갑시다.
 
 
오광철:(대답 없이 잠깐 웃었다. 난 다행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죽은 사람과 보내는 하루가 아닌 살아있는 형의 매일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도 기뻐. 하지만 복잡해. 슬프기도 하고,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고... (다가오면 볼 위에 짧게 입을 맞췄다 떨어진다.) 아직 좋아한다니 딱 이거 하나만 봐줄게. 가지고 있으면 기분 좋아진다니 봐주는 거야. 이제 다른 거 더 사지 마. (돌아가는 길, 몰래 똑같은 음료를 하나 더 담는다. 카트에 실린 물건들 사이, 가장 아래쪽에 꼭꼭 숨겨놓고 모른 척한다.)
 
 
오광철:오늘 하루 내내 있어준다곤 했지만 자정까진 있기 힘들 거 같고, 아마 10시쯤 가야 할 거 같아.
 
 
백지혜:정리 다 했으니까, 조금... 쉬죠. 이리오세요, 광철. (쿠션이 난잡한 소파에 앉아 옆자리를 도닥인다.)
 
 
오광철:형. 나 손 언 거 같아. (옆자리에 앉은 뒤 냉장고 정리하느라 잔뜩 차가워진 손으로 뺨을 문지른다.) 이제 내내 끌어안고 있을 거야? 아까 말했던 것처럼.
 
 
백지혜:(작게 웃으며 두 손을 잡아 끌어 제 무릎 위에 올려둔다. 그리곤 손바닥을 펴 그 위에 덮었다.) ...예. 그럴까 하는데, 다른... 하고 싶은 일이라도 있나요?
 
 
오광철:(사이에서 손을 꼬물거린다.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 푹 기댄다.) 타르트 시킬래. 형이 좋아하던 딸기 올라간 거로. 하나 주문해서 초 꽂아놓고 노래 부르자. 이제부터 혼자 잘 살아갈 수 있음을 기념하는 의미로.
 
 
백지혜:꼭 생일같아요. (두 달 정도 남았지만... 미리 한 셈 칠까. 주문 어플을 켜 자주 시키던 가게 목록을 열람한다. 아, 여기... 폐업했었구나.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가벼운 손놀림으로 다른 가게를 찾아 누른다.) 그럼 올 때 까지... (잡은 손을 소중하게 감싸곤 옆으로 몸을 기울인다.) ...얘기나 하죠.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오광철:생일이라고 쳐. 다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잖아. (머리를 기댄 채 화면을 같이 바라본다. 저기 맛있었는데. 가기 전에 형에게 만들어주던 간식 레시피도 적어주고 가야겠다.) 얘기? 어떤 이야기? (기댄 기대로 시선만 위로 올린다.) 물어봐. 대답할 수 있으면 해줄게.
 
 
백지혜:(고개를 조금 내려 시선을 마주하다 천천히, 느리게 입을 연다. 몇번이나 상상하고 몇번이고 묻고 싶었지만, 막상 들을 답은 유추해낼 수 없었기에 막연한 두려움이 든다.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긴 망설임은 없었다. 어느 길로 나아가든, 문을 열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삶을 돌려 받는다면... 다시 한 번 저와 살아주시겠습니까? (혹시 돌려받을 삶이 무의미할 정도로 그는 마모되어 버린걸까. 긴 세월을 한적하게 살아가고, 여럿 죽음을 경험한 그는, 죽어서조차 편히 쉴 수 없었던 그가... 다시 살아난들 기뻐할까. 꿈에서 깨고 난 뒤 내내 고민한 것은 그것 뿐이었다.)
 
 
오광철:(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날 되살려낸 사람들도 소중한 사람을 살리려다 실패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을 딱 하루 이승으로 끌고 온 게 전부인데 일반인인 형이 어떻게. 게다가 이미 사망 처리까지 다 됐을 사람을 되살린 뒤 설명은... 긴 시간 고민하다 내놓은 답은 타인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이다.) 형이 그러고 싶다면. 오늘 내가 챙겨준 것들을 다 가지고도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면. 시체 비슷한 것도 여전히 사랑한다면... (기쁠지는... 잘 모르겠다.)
 
 
백지혜:(다시 한 번 함께 살아가고 싶어.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염원해왔어. 당신이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할 거야. 하나하나 마음 깊이 답을 정했으나 입 밖으로 뱉지는 않았다. 혼자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도, 온전히 행복할 수도 없는 자신이 누군가를 되살려낸다 한들 그에게 다시 삶의 기쁨을 만끽하게 해줄 수 있을까. 서로의 시간이, 세상이, 모든 감각이 달라진 그를 마주하는 게 싫었다. 사랑하는 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고 이해하지 않았던 자신도 싫었다. 지나간 일로 다투고, 싸우고 또 상처입히게 될 것이다. 그럼에 함께 살아가는 것도, 또 그를 잃는 것도... 어느쪽도 두려웠지만, 그보단...)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다시 목소리가 무겁게 잠겨온다.) 점점 무뎌질 겁니다. 슬픔도 기쁨도, 영원한 건 없잖아요. 배웠으니까... 배운대로, 혼자서. (불안정하게 떨리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변질되어간다.) 이제 다시 보게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이별을 스스로 택한 사람이 제일 괴로워하며 울었다. 자신의 두려움을 이유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랑한 나의 삶을 오려내 덧붙이고 싶지 않았다.)
 
 
오광철:(결국 선택한 건 그거구나. 흐느끼는 사람을 품에 안고 담담하게 등을 토닥인다. 다시 같이 살 수도 있다는 말에 혹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게 맞는 거야. 올바른 선택이야.) 무뎌지고, 잊고. 그러다 가끔 생각날 때 한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좋아하는 것들도 많이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배운 대로 다 할 수 있지? 형은 똑똑하니까. (상체를 뒤로 물린다. 등을 토닥이던 손은 다시 두 뺨을 잡고, 고개를 들게 해 눈을 마주친다. 환하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오늘이 끝나면 우리 다시 만나지 말자. 나도 형 지켜보는 거 그만둘게. (말을 마치면 무의식중에 눈치챈다. 그동안 의식이 무의 공간을 떠돌던 이유는 아마 형을 지켜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 같다고. 이번에 헤어지고 나면 진정으로 영원한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거 같다고. 마지막을 인지하니 되려 편안해진다.)
 
... 나 아까 10시쯤에 가겠다고 했잖아. 형에게 내가 죽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건데. 어떡할래? 좀 더 있을까?
 
 
백지혜:(말 한마디 한마디가 끝날 때 마다 힘겨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죽은 뒤 느꼈던 슬픔도, 괴로움도, 무력감도 전부 자신의 행복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사랑할 수 있었어서, 기쁨으로 가득 찬 나날을 보냈어서, 세상을 바르게 살아갔던 적이 있어서... 그러니 이제부터 느끼게 될 슬픔은 조금 다를 것이다. 그의 부재는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을 더 찬란하게 만들어 줄 테고, 내가 느낄 외로움과 그리움은 언제까지고 그의 존재를 증명해 줄 것이다. 누군가를 잃는다고 모든 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됐다.) 광철도... 안녕히, 안녕히 가세요. 이제는 괴로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저 실실 웃어댄다. 지금은 그저,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웃음을 볼 수 있어서 기쁠 뿐이다.)
 
제게 미련이 남지 않도록 해주세요. 제대로 보지 않으면... 이건 행복한 꿈이었다고, 당신이 내년 할로윈에 다시 와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작별을... 확인할 겁니다.
 
 
오광철:(사기 치는 웃음이 아니라, 정말 행복해서 짓는 웃음. 눈물과 함께 보이는 이 웃음을 좋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보는 표정이 이거라 정말 다행이란 생각에 뺨으로, 눈가로, 콧잔등으로, 입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입을 맞췄다 떨어진다.) 벌써 헤어지는 것처럼 말하지 마. 아직 시간 조금 남았으니까. (눈가를 문질러 닦아준 뒤 타이밍 맞게 배달 온 타르트를 문 앞에서 챙겨오고 냉장고에 넣어뒀던 과일 음료 두 캔을 꺼낸다. 생일 축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앞으로의 일을 상상한다. 형이 나이가 들면 엄청 멋있을 거야. 카리스마 있는 변호사가 되어서 인기도 엄청 많아질지도 몰라. 그 모습을 보지 못하는 건 여전히 아쉽지만, 그 집에서 울며 털어놨을 때만큼 억울하지 않았다.) 건배할래? 형의 남은 생을 위해서, 나의 평온을 위해서.
 
... 좀 징그러울지도 몰라. 내가 다시 눈을 뜬 곳은 인간이 아니라 뼈랑 살덩이를 섞은 무언가가 가득했어. 아마 나도 그렇게 될 건데 괜찮지? 내 마지막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지?
 
 
백지혜:(부드러운 입술이 스쳐갈 때마다 웃음 소리가 새어나온다. 잠시 시선을 맞추다 자신도 입술 위로 길게 입 맞춘 후 제 눈가를 문지른다. 운 뒤 피곤하고 머리 아파 바로 잠들기만 했는데. 이렇게 개운한 적은 처음이었다. 따라 일어나 접시와 나이프, 포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좋아 천천히 눈을 깜빡인다.) ...예, 건배하죠. 다시 한 번 제 일년에 기념할 날이 늘어났군요. (경쾌한 손짓으로 캔뚜껑을 따 부딪힌다. 그가 없이도 지속되어야 하는 내 삶, 내 의지 없이도 흘러가는 시간... 앞으로도 나는 몇번이고 불행하겠지.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행복하게 될 거야.)
 
...확실히, 겁 먹을지도 모르지만... 이전엔 제가 마지막 배웅을 해드리지 못 했으니까요.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니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아. 뭔가 떠오른 게 있다는 듯 휴대폰을 든다.) 지금... 사진 찍어도 될까요? 찍힐지는 모르겠지만, 남겨두고 싶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건 가장 최근 모습이 좋을 것 같아서.
 
 
오광철:평생에 걸쳐 매일매일을 기념일로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그건 숙제야. 다음 생에 검사할 거야. (캔을 부딪힌 후, 입안으로 음료를 흘려보낸다. 한 모금 삼킬 때마다 미래의 행복을 기도한다. 가능하면 긴 삶을 살기를. 그 삶에 슬픔이 적기를. 마주친 고난도 쉽게 지나가기를. 좋은 사람이 곁에 있기를... 단숨에 한 캔을 다 비워버린 뒤 타르트를 한 입 크기로 자른다.) 마지막이니까 오늘은 내가 먹여줄래. 아~ (밥투정을 부릴 때마다 다정한 목소리로 먹여주던 모습을 따라 한다.)
 
이왕 찍는 거 사진 말고 영상으로 할래.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으면 아쉽잖아. (사람이 죽은 뒤 가장 먼저 잊어버리는 게 고인의 목소리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성대가 가장 늦게 노화되는 기관이라는 말도. 그렇다면 오늘 찍은 영상 속 목소리는 내가 늙은 뒤의 목소리와 비슷하겠지. 두 걸음 물러난 뒤 휴대폰 카메라를 보고 익숙하게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든다.) 찍은 거 너무 자주 보지는 마. 내가 생각나지 않을 때만 봐야 해.
 
 
백지혜: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꼭 검사하러 와주세요. (다음생 같은 건 믿지 않지만, 이런 막연한 약속들도 이젠 좋은 기분으로 넘겨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캔을 입에 대고 한 모금 삼켜 마시자 기분 좋은 단 맛이 입 안을 감싸돈다. 산뜻한 향기가 코 끝을 간질이고, 적당한 온도가 목넘김에 부드러움을 더한다. 옆을 흘긋 보고 캔을 내려놓는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어쩐지 익숙한 행위에 웃음을 터트리며 타르트를 받아 먹는다. 간만에 먹는 디저트라 그런걸까, 처음 시켜본 건데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저를 오래오래 사랑해 주셨다는 건 잊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영상이 더 좋을 거라는 의견엔 동의해서... 모드를 전환 한 후 오광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가 사라지고 나서도 이 영상은 남아주면 좋겠다.) 그럼 찍겠습니다. 하나, 둘-.
 
...사랑합니다, 광철.
 
 
오광철:검사하러 갈 테니까 만날 장소 정하자. 매년 할로윈, 법원 앞에서. 다시 태어나면 매년 가서 기다릴게. 만약 태어난 곳에 할로윈이 없다면 가을이 끝나는 날로. 법원이 없다면 대충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포크를 들지 않은 손으로 손가락을 내민다. 타르트를 받아먹는 것을 확인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에 직접 굽던 타르트 레시피를 기록한다. 기존의 날려 쓰는 필체가 아니라 한 자 한 자 읽기 쉽게. 초보자도 따라 할 수 있도록 기초부터.)
 
나도 사랑해. 그동안 고마웠어 형. (일시적이지만 육체를 얻어 살아난 것이니 내가 사라진 뒤에도 이 영상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이 영상을 봤을 때 그가 웃을 수 있도록.)
 
 
KPC 로스트 PC 생환
 
 
엔딩인데 뭐... (GM):수고하셨어요... ^_^....
 
 
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수고하셨어요,,,,,,,,,,,,,,,,
 
 
엔딩인데 뭐... (GM):저 힘들 때마다 폰 흔들다가 피크민 만보 채웠어요
 
 
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노래 너무 슬퍼
 
근데 저거
 
치워야...하는거죠...
 
 
엔딩인데 뭐... (GM):네에에...
 
 
...네 ㅠ
 
 
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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