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사이에 많이 늙은 그의 얼굴은 많이 변했지만 그와 동시에 당신에게 익숙합니다. 그가 갖고 있던 두 눈은 하나가 사라진 채 책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한 쪽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습니다.
백지혜:(눈짓으로 환영 한 후 책을 덮는다. 소곤소곤...) 많이 지루해요?
오광철:조금 지루하긴 한데 형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서 괜찮아. 뭐 읽고 있었어? (어깨에 기댄다...) 나만 형 보고 있어. 형은 관심도 안 줘. 미워.
백지혜:방금까지 자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작게 웃고 난 후 책을 들어올려 표지를 보여준다. '나는 오늘, 내일의 나에게 말했다.' 라는 제목이 볼드체로 적혀있다.) 조금 어려운 부분이 나와서 힘들었는데, 마침 처리가 와주니 반갑군요. (머리를 맞대어 살살 부비곤 이마 위로 쪽, 입 맞춘다.) 용서해 주세요~
오광철:아~니. 안 잤는데? 나 말고 옆에 있는 아이가 잤는데. (어린아이손으로 가리킨다. 그보다 오늘... 뭐? 재미없어 보이는 책 표지는 덮어버리고는 고민하는 척 눈을 감고 고개를 기울인다.) 음... 용서할까 말까. 합의금으로 뽀뽀 한 번은 부족해. 더 해주면 고민해 볼게.
백지혜:(고개를 들어 흘긋 앞을 보다 옅은 미소를 짓는다. 우리도 애를 가질 수 있었으면 대충 저 나이 정도였으려나... 한쪽 손으로 오광철의 뺨을 감싸고 살살 쓰다듬는다.) 선처조차 없다니 잔혹하십니다. (장난스레 속삭인 후 반대편 볼에 쪽, 쪽 하고 두 번 더 입 맞춘다.)
오광철:(오늘따라 어려운 내용이 유독 많이 보이네... 내 알 바 아니지! 뺨을 쓰다듬는 손길에 바보같이 웃는 소리를 흘린다. 잠시 뒤 조용한 지하철 내부임을 깨닫고 입을 가린 뒤 다시 쿡쿡거린다.) 잔혹한 쪽으로는 내가 좀 타고났나봐. 하지만 이런 나도 형은 좋아할 테니까 됐어. 안 고쳐도 되지? (이미 밉다고 한 건 다 잊고 이쪽에서도 볼에 입 맞춘다. 거슬리는 이어폰 줄도 직접 뽑아 치워주고!)
백지혜:물론이죠. 제가 그래서 우리처리한테 반한 거잖습니까. (지하철 창을 통해 들어오는 서늘한 빛, 조용한 내부와 사랑하는 사람의 조곤대는 목소리까지. 여정의 출발점이 이렇게나 산뜻하다니... 스며드는듯한 좋은 기분에 느긋히 웃는다.) 오늘 함께 나와줘서 고마워요. 광철이 좋아할만한 전시회는 아니었는데...
오광철:잔혹한 모습만 보고 반한 건 아니지? 형은 내 어디가 좋아? (10년 사이 몇 번이고 물어봤을 내용이지만 들을 때마다 사랑받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좋아하는 대화 주제다. 알고 있을 대답을 기다리며 다시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응? 으음... 뭐~ 내가 좋아하는 전시였어도 형이랑 가면 집중 못 했을 테니까 오히려 좋아하지 않는 주제인 쪽이 좋아. (그보다 전시 주제가 뭐였더라... 잠시 허공을 보다 뽑았던 이어폰을 본인 귀에 꽂아본다. 무슨 소리가 나오고 있지?)
백지혜:제가 얼마나 사람 재고 따졌는지 아시면서. 이유 하나로는 청혼 못 하죠. 제 말에 잘 속아주시는 점도 좋고, 잘 휘둘릴 것 같은 점도 좋았고, 정 앞에서 사람 모른 척 안 할 거라는 것도... (줄줄줄... 마치 사기 당하기 좋은 인간의 특징을 전부 모아둔 것 같은 것들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손가락을 접는다.) 또, 저를 보며 웃는 게 사랑스러워서요. (제 휴대폰 화면을 흘긋 본 뒤 다시 머리를 맞댄다. 이어폰에선 잔잔한... 트로트...? 80세 노부부가 들을 법한 사랑 노래가 나오고 있다. '리아킴- 위대한 약속')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꼭... 한 번 정도는 그 사람을 이해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오광철:항상 느끼는 거지만 형 취향 이상해. 나 만난 거 다행이라고 생각해. 나니까 잘 속고 휘둘려서 좋다는 말에 기뻐하는 거야. (환하게 웃다가 노래 듣는 순간 표정 미묘해진다. 이어폰 뽑았다 다시 끼길 세 번쯤 반복하고 고개 갸웃거리며 이어폰 돌려준다. 이런 게 취향인가? 우리 아버지도 이런 거 안 들을 거 같은데... 저노인같은 사람이나...) 응? 그 사람이 누군데? 나 말고 또 누구를 이해하려고? 우리 지금 전시회가 아니라 바람피우러 가는 거야?
등이 굽고 머리가 새하얗게 샌 노인입니다. 돋보기 안경을 만지작거리며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백지혜:그럼요. 처리 없었으면 일평생 장가도 못 가고 골방에서 고독사 했겠지요. (장난 반 진담 반... 이어폰 여러번 뺐다 다시 끼는 모습에 풉, 하고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낸다.) 요즘... 시끄러운 노래는 피곤하더군요. (괜히 변명같은 말...)
아... 그러니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10년 전... 기억하십니까? 명동 거리에서 난 상해 사건. 그 가해자가 화가였다는 모양입니다.
오광철:고독사까진 안 했을걸. 우리 형처럼 멋지고, 능력 있고, 잘생긴 사람을 누가 안 가져가? 내가 운이 좋았던 거야. (이쪽은 진담 100%. 웃음을 참는 모습에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양손으로 지혜 뺨 감싸고 엄지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 뺨을 문지른다.) 우리 형 왜 이렇게 빨리 늙었지... 나랑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데 아무리 시끄러운 게 싫어도 그렇지 이건 너무 아저씨 노래야.
응? 아, 그거. (목소리 톤이 낮아진다.) 꼭 가야만 해? 굳이 이해해야 해? 나 싫어... (손끝으로 안대 위를 톡. 두드린다.)
백지혜:가져간들 누가 따라간답니까? 말했잖아요. 광철처럼 좋아하는 이유 열댓개는 더 있어야 청혼한다고. (그래도 칭찬은 순전히 기뻐서, 상대의 찡그린 얼굴에도 그저 헤실~ 하고 웃어댄다.) ...처리가 젊다~ 젊다~ 해줘야 젊어집니다. 늙었다고 하면 내일 여기에 주름 생겨요. (제 이마 위를 톡...) 걱정 마시죠. 처리보단 딱 삼일 더 살고 죽어줄 테니까.
(제 안대를 매만져 고쳐 쓰곤 오광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변호사로서... 공부가 될 듯 합니다. 오늘은 날도 좋으니까, 나온 김에 같이 데이트도 하고요. 응?
오광철:혹시 모르지. 형이 너무너무 외로운 나머지 좋다는 사람 막 따라갔을지도. 나 같은 사람 만날 자신 없으니 좋아하는 이유 하나만 있어도 타협하고 인생을 줘버렸을지도... (자기가 말하고 자기가 기분 안 좋아진다. 헉. 주름.) ... 우리 형 젊다~ 젊다~... (주문을 외우듯 뺨을 문지르며 계속 중얼거린다.) 그냥 같이 죽으면 안 돼? 장례 일주일 치르는 것도 민폐일 거 같고, 돈도 많이 들 거고, 상속 같은 것도 귀찮고, 또 보험 처리도... (10년 동안 귀가 닳도록 들었던 것들 달달 읊는다. 형 고생시키기 싫은데.)
다음에 또 싫은 거 하면 용서 안 할 거야. 오늘은 봐줄 테니까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사랑해 줘. 달래줘어. (품에 기대고 한껏 애처럼 칭얼거린다. 날 좋은 창문과는 달리 이쪽 표정은 꿍하기만 하다.........)
백지혜:에이, 그럴리가요.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으나, 혹시라도 오광철을 만나지 않았을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때로부터 나아가지 못한 채, 끝없는 고독에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었겠지. 그 말대로 지친 나머지 평범을 모방하고 타협해서 아무나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가. 자신 곁에 있어준 사람이 사랑하는 그라서.) 음... 그럴까요? 생각해보니 우리처리, 인내심이 적어 3일도 안 기다려줄 것 같습니다. (장례문화 하나는 빠삭하다니까...)
예에. 다음엔 재미없는 곳 말고 재밌는 곳으로 가죠. 제주도엔 테디베어 박물관이라는 곳도 있다던데. 간만에 가볼까요? (허리를 둘러 감싸 안고 토닥이며 마주본다.) 저녁에 맛있는 거 해줄 테니까, 사랑스러운 표정 보여주세요.
:순간적으로 분리되어있던 얼굴이 하나로 올바르게 맞춰집니다. 그 모습은 한 소녀의 얼굴입니다. 소녀의 얼굴은 기묘합니다. 한 명의 얼굴 같기도하고, 두 명의 얼굴 같기도 하고, 천 명의 얼굴 같기도 합니다. 소녀의 얼굴은 나이가 들어보였다가도, 또 어려보이기도 합니다. 탐사자는 급격하게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그림을 보면, 원래의 분리되어있는 얼굴 그림입니다.
SAN 0/1
오광철: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눈 비비적......) 형, 나 이 그림 싫어. 갈래...
백지혜:아. 많이... 힘들어요? 조금 쉬었다 갈까요?
오광철:힘든 건 아닌데, 그냥 싫어. 기분 나빠. 형을 아프게 한 사람이 그린 그림 따위 알고 싶지 않아.
백지혜:음... 그럼 이렇게 하죠. 그림은 대충 보고 제 손을 잡고 있는 것에 의의를 둡시다. (개수작! 두 손 내민다.)
오광철:으응... (양손 잡고 느릿하게 발걸음 옮긴다...) 다음은 40대야? 그게 제일 싫어. 형 아프게 하기 직전이잖아.
백지혜:그렇네요... 처리는 싫다고 했지만, 저는 조금 궁금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잖아요. (연행하며 말기작 구역으로...)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은 구역 정 가운데에 혼자 놓여있습니다. 위에 조명이 이 작품을 비추고 있습니다. 두 개의 캔버스는 거대한 사람의 눈이 각각 그려져 있고 가운데 동공에는 거울이 박혀 서로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캔버스들에 그려진 두 눈은 마치 인쇄한 것 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그림으로 보입니다. 동공에 박힌 거울들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어 마트료시카처럼 거울 안의 거울이, 거울 안의 또 거울이 비춰지고 있습니다.
백지혜는 이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못 합니다.
그야 그림에 그려진 눈이 백지혜의 것과 똑 닮았는걸요.
당신도 그것을 눈치챕니다.
:SAN 0/1
오광철: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 계획범죄다.
백지혜:...
오광철:같은 백씨잖아. 평소에 원한 산 거 아니야? 왜 형을 노려?
백지혜:글쎄요. 추후 조사했을 땐 연관은 커녕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건... 우연일지.
오광철:나 형 눈 좋아해. 세상에 이런 눈 형밖에 없단 말이야. 이거랑 똑같은 눈인데 우연일 리가 없잖아. (...) 갈래. 나 이 사람 싫어. 이제 다 봤잖아아.
백지혜:(긴 침묵...) 그럴까요? 이제 다 보기도 했고, 죽은 사람은 만나볼 수 없을 테니까... (만나선 안 될 것도 같고...)
오광철:응. 갈래 갈래. 이제부터 형이 죽은 사람 만나겠다고 하면 바람피우는 거로 이해할 거야... (손잡고 전시관 밖으로 이끈다.)
백지혜:폭풍우 치는 날 만난 두 사람이... 악연이 되어 깊게 빠져드는 내용이랍니다. 내용이 자극적이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나 봅니다.
오광철:으응~ 제목만 봤을 땐 중년 노부부의 마지막 이야기,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우리 형 젊은 사람이 좋아하는 거 많이 해야 해. 그래야 늦게 늙어. (뺨 문질문질... 그리곤 팝콘 매대로 이끈다.)
백지혜:젊은 노부부면 숨을 가져가선 안 되지 않을까요? (익숙하게 얼굴을 내어주곤 눈을 감는다. 이어 팝콘 매대에 다다르자 가늘게 뜬 눈으로 오광철을 본다.) 또 저녁 조금 먹으려고...
스낵바 직원:어서오세요, 뭘로 드릴까요?
오광철:내 마지막 숨까지 함께 하라는 건 줄 알고. 형이 할아버지 노래 들어서 오해한 거야. 형 탓이야~ (시선 피한다... 그리고 카라멜 팝콘 가리킨다.) 하나 사서 나눠먹으면 돼. 그럼 저녁 먹을 수 있어. 만두 먹을 수 있어.
백지혜:그건 로맨틱 하군요. 가사만 보면 요즘 나오는 노래들보다 훨 좋은데... (궁시렁.) 아, 그리고 물도 하나 주십쇼.
스낵바 직원:네, 13500원 입니다~
카라멜 팝콘과 물병을 받아듭니다.
이제 영화 보러 갈까요?
오광철:(영화 보자~)
:테이크 마이 브레쓰
비 내리는 폭풍우 바닷가 앞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연히 만나 스쳐지나가듯 헤어졌으나, 결국은 지독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치닫습니다. 한 번 얽힌 손아귀는 결코 풀리지 않고, 퇴색하여 뼈끼리 얽혀버립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들은 깨닫습니다. 주위가 전부 휩쓸려간 그 끝에도 서로가 있어 서로가 존재함을. 결국 그 마지막에서 둘은 다시 바닷가 앞에서 만납니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영화는 끝납니다.
백지혜:여운이 깊은 영화군요.
오광철:... 응? 으음. 응. (졸았당.) 다음 주말엔 바다갈래?
백지혜:(졸았군.) 그럴까요? 많이 추울테니 슬슬 겨울 옷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오광철:겨울옷... 올해 겨울엔 패딩 말고 코트에 도전해볼까? 나도 형처럼 멋진 거 입어볼래. 바다 갈 때 그거 입을래~
백지혜:별일이네요. (편하면 장땡이던 사람이!) 코트만 입으면 많이 추우니까 여러 옷을 겹쳐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도리도 잊지 말고요.
마치 그 자리에 있으나, 있지 않은 것 같은 그녀는 여전히 나이가 몇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가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윽고 그녀가 점점 불투명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마치, 여러 장의 기름 종이를 덧대 겹친 것처럼 장하라는 점점 진해집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어째서인지 백지혜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장하라:이제 여기에 왔구나. 나는 당신에게 길을 알려주기 위해 왔어.
오광철:응? 무슨 길? (책 내려놓고 다시 앞으로 쫄쫄... 시야 맞춰준다.)
장하라:(빠안...) 나와 거래를 하자. 나를 얽매이게 해줘.
이제 이 세상은 곧 끝을 맞이할 거야. 0과 1이 아닌, NULL 그 자체를.
그러니 백지혜를 붙잡아줘.
오광철:(고개 기울인다...) 형은 이미 내가 꽉 붙잡고 있으니 됐고, 너는 어떻게? 우리 딸 할래?
장하라:저기, 세계가 멸망한다니까.
나는...파란 관측자의 신녀야.내가 워내서 그러헤 된 건 아니지만... 그리고 백지혜는 그들에게 붙잡혀있어. 육체적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도 나도 스스로는 설 수 없어.
하지만 너는 달라. 우릴 구할 수 있는 것은 당신 뿐.
오광철:형이랑 멸망할 때까지 같이 있는 것도 낭만적이라 좋은데. (오하라, 백하라. 뭐가 더 어울릴까 고민이나 하다가 이어진 말에 고개 퍼뜩 든다.) 형이 정신적으로 붙잡혔다고? 누구에게? 우리 형 바람피워? 어떻게 구해?
장하라:(이 사람 바보다) ...당신은 이제부터관측될 거야. '관측'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정시킨다는 것. 부정 不 定 의 상태인 당신을 한 시간대에 고정시킨다는 것.
백지혜의 빼앗긴 눈은관측할 수 있어.바로 그가 당신을 관측 할 거야, 본능적으로. 너무 많이 관측하면 부담이 가겠지만.
이곳이 과거인 건 알겠지? '관측' 된 상태에서 과거를 바꾼다고 하여도, 이 우주는 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이 과거를 바꾼다면, 달라진 또 하나의 우주가 생겨날 거야. 분명히 변한 우주는 존재하게 돼.
과거를 바꿔서, 세계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줘.
오광철:(눈 깜빡...) 이해하기 쉽게 말해줘어.
장하라:...과거로 가서 착한 일 해줄래?
오광철:응. 할게.
장하라:음, 10년 후의 백지혜가 당신을 보네. 당신을 원래대로 돌리고 싶어하는거겠지. 자, 그럼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최대한 끝이 오기 전까지 이 일의 근원을 찾아. 어디서부터 그들이 손을 뻗었는지 알아내는거야. 그리고 과거로 '관측' 되고 싶다면 백지혜에게 말하면 돼. '10년전의 너는 뭘 보고 있었니?' 라고.
이 다음엔 과거의 보육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
...다시 눈을 뜨면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백지혜:...광철? 어딘가 불편한 건가요? (눈 앞에서 손을 휘적.)
오광철:... 형, 나 착한 일 해야 해.
백지혜:크리스마스를 위해서?
오광철:(고개 젓는다.) 착한 일 안 해도 선물 줄 거잖아. 생일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새해 선물 3주 연속으로.
음. 내가 착한 일을 하면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대. (일단 테스트해볼까?) 형 10년 전에 뭐 봤어?
목사님, 저번에 말씀 드렸던 내용대로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저는 매번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몸 속 세포는 매초마다, 매순간마다 죽고 새로 분열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태어났을 때 가졌던 몸과 10년 후의 몸이 다름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누가 만들어가는 것입니까? 나는 살아가면서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불안정하지 않습니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주위의 가족, 친구들에 의해 내가 정의되고 있다니요. 만약 그들이 사라진다면 나는 바람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두렵습니다. 정말 두렵습니다. 저는 '파란 관측자' 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들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측' 되어 고정되고 있는 것이라고. 제 생각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주위 사람들이 사라지면 우리들은 바람 앞 촛불과도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자신을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신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신은 우리보다 아득한 존재인데, 그들은 우리를 관측하여 우리를 고정시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신의 눈을 감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제물을 바쳐, 신이 눈을 감으면, 우리들이 존재함을 삭제한다고 하였습니다. 네, 우리들은 존재하지 않는 그 상태로, null 로 고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비로소 우리들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광철:(고개 기울인다... 죽고 싶다는 건가? 사람 한 명이 나갈 만한 공간이 있는지 더 둘러본다.)
(중략) ...'신' 이라 하심은 우리들에게 사랑과 희생을 전해주시는 신이 아니다. 우리들의 신은 그저 '관측'하는 신이다. 그들은 우주라는 것이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하였다. 그 신은 형언할 수 없는 형태를 가졌으며 그저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들이 죄악에서 허덕일 때도 그저 바라보니 그 신은 아직 희생하지 않은 자이다. 그러니 우리는 신의 눈을 감게하고, 우리가 먼저 신을 위해 희생해야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신이 우리들의 희생을 깨달을지이니, 우리는 고정되어 완벽한 無 의 상태가 될수 있는 것이다. (하략)
(중략) ... 그렇게 우리는 해냈다. 신녀의 힘이 닿지 않는 과거는 우리가 얻은 '눈'으로 바꿨다. 성지를 빼앗으려는 자는 지옥불로 밀어넣고, 우리에게 감언이설을 속삭이는 악마의 자식을 땅으로 돌려보냈다. 그 외에도 우리들은 우리의 앞길에 있는 가시덤불을 전부 불태웠다. 아아, 이것이 우리의 존재이며 증명이다.
이 세상은 다중성을 지니며 매 분기점마다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파란 관측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며, 최근을 분기점으로 삼은 새로운 우주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이용해 모든 가능성을 하나로 좁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 누군가가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야한다. 새로운 미래를. 나와 같이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 눈의 주인은 불가하다. 그렇지만 그눈의 주인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오광철:(그래서 새 미래를 어떻게 만들라는 건데? 착한 일이 뭔데... 방 밖으로 나가10층 의식의 제단까지 올라간다. 일단 형을 찾아야 과거로 돌아가건 말건 할 테니까.)
오광철:원래 사람은 불완전해서 좋은 거야. (환하게 웃으며 아트 나이프를 역으로 치켜든다. 어딜 노릴까. 형이 잃어버린 눈? 방금 찔린 복부? 막아낸 뒤엔 바로 지혈해야 하는데 반격하면 귀찮으니 차라리 즉사할 수 있는 곳이 좋으려나. 짧게 고민하다심장을 노려 아트나이프를 깊게 박아 넣는다.)
아트나이프가 장원순의 심장에 깊게 박힙니다.
이윽고 쏟아진 핏줄기가 당신을 적셔냅니다.
장순원: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해냈다. 신은 눈을 감을 것이고, 곧 세상은 無 그 자체가 된다 ... ...
또다른 우주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수십 번, 수백 번 반복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백지혜:(깜빡... 제 두 눈을 더듬어 보다가 고개를 든다.) 광, 광철아... 윽. (두 눈이 떠진다는 것에 놀란 것도 잠시, 제 복부를 움켜잡고 몸을 구부린다.)
오광철:응, 나야. 나 여기 있어. (빠르게 제단으로 다가간다. 안대로 가려져 있던 곳, 이젠 멀쩡한 눈이 더 어색한 곳에 짧에 입 맞춘다.) 형. 아마 많이 아플 거야. 편하게 눕고, 그냥 비명 질러도 돼. (이마를 꾹 눌러 다시 제단 위에 눕힌 다. 반대쪽 손으론 상의를 들춰내고 상처 부위를 꽉 눌러 지혈한다.)
백지혜:아,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춘다. 안구가 든 상태로 받는 입맞춤이 낯설고, 또 익숙하기도 하다. 다시 제단 위에 누웠을 때, 가해진 압박에 윽, 하고 단말마를 내지른다.) 자, 잠깐... 이래봤자, 지금은...
들었어요. 세상의 종말이라고...
오광철:당연히 무사하지. 내가 누군데. 지금은 형을 너무 사랑해서 그만뒀지만 예전엔 조폭 후계자로 불리던 사람이야. (깨끗한 천이 있다면 좋을 텐데... 급한 대로 입고 있던 옷을 뜯어내 상처 부위 위를 덮고 이마를 누르던 손도 복부로 옮겨와 더 강하게 압박한다.)
아, 응. 그렇지. 종말한대. 하지만 아직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일단 형을 살려놓고 도전하려고.
백지혜:그랬었죠.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인데, 복부의 고통과 압박감에 억지로라도 지어지지 않았다. 결국 제 복부를 누르는 오광철의 손을 잡아낸다.)
그 방법이라는 것도, 들었습니다. 잠깐 사라졌을 때 과거에... 갔었다고요.
오광철:(잡힌 손을 쳐낸다.) 아플 거라고 했잖아. 나 똑같은 곳 다쳐봐서 지금 기분 잘 알아. 엄~청 아프지~ (손을 쳐내느라 잠시 빈틈, 자신의 옷도 들춰 이제는 많이 옅어진 흉터를 보인다. 그리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지금 잘 버티면 커플 흉터~
맞아. 형에게 말하면 잠시 과거로 갈 수 있대. 거기서 착한 일을 해서 세상을 구하는 거야. 우리 하라. (음.) 하나랑 하리가 알려줬어. 거기서 새 우주를 만들라고... (여전히 다 이해는 못 했지만, 해보면 뭔가 되겠지.)
백지혜:(와중에 들춰진 옷 아래 흉터를 흘긋 본 후 눈을 감는다. 쳐내진 것에 개의치 않고 다시 한 번 더 손을 강하게 붙잡는다. 어차피 이 우주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도 다 무용일테니. 하지만 그만큼은...) 우,우리처리. 제가 언제나 사랑하는 거 알죠. (한글자 한글자 힘주어 내뱉는다.)
어디에서, 언제라도 항상... (드디어 간신히 입 끝을 올려내고 다시 시선을 마주한다.) 그럼 얼른 가요. 전부 사라지기 전에.
오광철:(내겐 세계를 구하는 것보다 형의 안전이 우선인데. 그래도 형이 바란다면...) 이거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해. 다녀올 동안 아프다고 손 떼면 안 돼. (붙잡힌 손을 상처 위로 올려준다. 다시 위로 올라가 눈가에, 코에, 입술 위에 순서대로 입 맞춘다.) 나도 형 사랑해.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그럼 금방 다녀올게.형은 10년 전에 무엇을 보고 있었어?
결심을 마치자, 제단의 끝부분에서부터 검은색이 물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null 그 자체.
그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늪에 빠지듯, 폭풍우에 휘말리듯, 파도에 휩쓸리듯 거스를 수 없는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