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날, 굳이 그 거리에 나온 게 그다지 거창한 의도를 가진 건 아니었다. 일 년째 되던 날은 전부 사라져 무의미해지기 전에 사건의 현장을 좀 더 조사해 보려고, 이 년째 되던 날은 꽃다발을 놓으러, 삼 년째 되던 날은 간만에 그가 꿈에 나왔기 때문에. 사 년째 되던 날은 그저 정말 우연히... 그리고 오늘은, 몇 년 내내 반복하던 짓을 안 하려니 허탈한 기분이 들어 나와 봤다.. 시간이 흐르며, 바닷가 모래밭에 파도가 덮쳐오듯, 충격도 슬픔도 점차 흐릿해져 갔으나 그뿐이다. 자리 빈 곳에 먼지 쌓인다고 그곳이 채워지겠는가.)
백지혜:우리... (평소 내내 울리지 않던 개인용 휴대전화에서 간만에 경쾌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화면에 띄워진 글자를 보고도 믿을 수 없어 두 음을 입 밖으로 낸다. 이 번호는... 분명... 하지만 여기서 전화가 걸려올 리 없는데. 그날 이후로 번호를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도록 5년 내내 개통시켜뒀으니까.) ...여보세요. (통신사의 오류든 심령현상이든... 받고나니 버릇적인 인삿말이 나온다.)
오광철:아, 드디어 받았다. 뭐 한다고 받는 게 이렇게 늦어. 빼빼로 사려는데 좋아하는 맛 알려줘.
... (보이스 피싱? 이런 악랄한... 같은 생각이 들기도 잠시. 아주 간만이고 그리웠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기이한 평온함이 든다. 이 목소리의 정체는 아직 모르겠으나, 내 삶이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거 같은 착각도 들었다.) 광철...
오광철:응 나인데, 형 좋아하는 빼빼로 뭐냐고. 안 말하면 아무거나 살 거야.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목소리. 스피커폰으로 하고 타자라도 치고 있는 듯 중간중간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린다.) 근데 목소리가 기운 없는 거 같은데 혹시 변호사 사이에도 왕따가 있어?
백지혜:... (AI 변조라고 하기엔 너무 자연스러운 어조, 말투와 습관까지. 정말 그가 살아서 돌아온 듯 하다. 아니, 살아서 전화를 거는 것 같은... 내가 꿈을 꾸는 걸까? 아니면, 환청이라도 듣는 걸까. 의문이 더 깊어지기 전에 입을 뗀다. 이게 뭐든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아서. 전화를 끊고 싶지 않아서...) 없... 없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빼빼로에 대한 답변? 정체가 누구냐는 것? 아니면...혹시, 살아있었다거나...) 보...보고 싶었습니다.
오광철:왕따가 있다는데 그게 왜 중요하지 않아. 나중에 말해. 사무실에 불시에 찾아갈 테니까... (이어진 말에 웃는 소리를 낸다. '보고 싶어요'도 아니고 '보고 싶었습니다'는 뭐야. 마치 한참은 못 만났던 사람처럼.) 집에서 헤어지고 몇 시간이나 됐다고 그래. 나도 보고 싶어. 오늘 퇴근 몇 시야?
... 어, 방금 앞에 고양이 지나갔다. 노란색 두 마리. 케로베로스도 빼빼로 먹을 수 있나?
백지혜:(다른 목적이 있다기엔 너무도 일상적인 대화, 살아있다고 느낄 것 같이 똑같은 목소리... 순간적으로 눈앞이 희뿌예진다. 숨을 삼키고 억눌린 울음소리를 내다가 간신히 몇 자 이어간다.) 지금... 어딥니까?
업무는 상관없습니다. 빼빼로도, 사두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렇지, 케로베로스. 아직도 광철을 많이 보고 싶어합니다. 물론 저도... 아시겠지만. 그러니까, 집에 들어가세요. 집에 와주세요.
오광철:나 시내쪽 골목길. 쇼핑몰 공사 중인 거기. (토톡, 화면을 두드리던 소리가 멈추고 목소리가 심각해진다.) 형 울어? 사람들이 많이 괴롭혀? 지금 집이야? (원래 가려고 했던 마트까지 얼마 안 남았지만, 급하게 발걸음을 옮겨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달리는 발소리 사이로 숨소리가 들린다.) 금방 갈게. 잠시만...
백지혜:...이거, 정말...? (휴대폰을 들지 않은 손으로 왼쪽 눈을 슥 훑은 후 심호흡을 한다. 그가 이 거리에 오도록 하지만 않으면... 계속 통화할 수 있어.) 과, 광철아... 지금 어딥니까?
오광철:뭐가 정말이야? 나 지금 빼빼로 사러 가. 쇼핑몰 공사하고 있는 시내 쪽 골목길. (화면을 토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 앞에 고양이다.
백지혜:................ (아까랑 똑같아. 이제 어디로 가라고 해야하지?) 멈, 멈춰요. 배빼로는 괜찮으니까... 지금 당장 차도에서 멀리 떨어지십시오. 그리고... 그리고 지금, 휴대폰 보면서 걷는 겁니까? (잔소리...?)
오광철:빼빼로 없어도 돼? 안 삐질 거야? 나 마트 가려면 여기 건너야 하는데. (휴대폰 보며 걷고 있었다. 찔린 듯 잠시 말이 없어진다.) ... 형 오늘따라 이상해. 어딜 가라는 것도 아니고 차도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말 돌리기!)
:대인기능 판정으로 설득 가능합니다!
백지혜:제가 애도 아니고. 벌써 서른... 아무튼. 괜찮습니다. (짧은 심호흡을 한 후 주변을 둘러본다. 5년 이내 생긴 쇼핑몰... 골목길과 사고 장소. 그가 어디쯤 있던 걸까.) 휴대폰 보고 걸으면 위험한 거 알잖아요. 누구랑... 연락이라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인터넷?)
...빼빼로 말고, 근처 카페의 디저트가... 먹고 싶습니다. 카페로 가요.
말재주
기준치:
75/37/15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오광철:서른...? (두 달도 안 남긴 했지. 그렇지. 금방 목소리에서 의심기가 거둬진다.) 나중에 가서 빼빼로 대신 뽀뽀 100번 해달라고 해도 10번만 해줄 거야.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멎는다.) 나 바람 안 피워. 그냥 빼빼로 무슨 맛이 있는지 보고 있었어. 디저트 뭐 사면 돼?
최근에 생긴 쇼핑몰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옆에 이어진 골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백지혜:...그럼 다행입니다. (성공한걸까? 마른침을 삼키며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본다. 그가 여기 있을 리 없다는 건 알지만...) 초콜렛... 쿠키가 먹고 싶어요. 광철 것까지 두 개. 사다줄 수 있죠? (...) 차 조심하고...
백지혜:... (만일, 이 통화를 이어간다 한들 정말 광철이 살아나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조금 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어차피 죽을 방법 없어 살아가던 삶, 목적이 생긴다면야...) 오늘은 더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가는 게 좋겠습니다. 다친 곳도... 치료해야죠. 꼭, 조심하고... 집 도착 전까지 끊지도 말아요.
오광철:왜? 초콜렛 쿠키 먹고 싶다고 했잖아. 사고가 하루에 두 번이나 일어날 리도 없고,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나도 케이크 먹고 싶어졌어.
그런데 형. 여기 이상한 사람이 한 명 있어. 얼굴 다 가린 사람.
백지혜:그치만... 광철을 무리시키고 싶진 않은걸요. (교통사고는 피했을텐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주변을 휙휙 둘러보며 카페부근으로 발걸음한다. 질질...) 얼굴 다 가린 사람...?
...우, 우선은 가까이 가지 마세요. 최대한 피하시길 바랍니다.
오광철:무리하는 거 아냐. 나 형보다 체력 좋아. (발소리가 멈춘다. 무언가를 지켜보듯 한동안 말이 없다가,) 어차피 가까이 못 가. 저 사람 공사장 철골 위에 있어. 인부들 다 퇴근한 거 같은데 혼자 뭐하는 거지.
현장관리 미흡으로 20대 청년을 숨지게 한 현장소장의 처벌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붙어있습니다.
사고 날짜는 5년 전 오늘.
통화로 바꾼 과거는 지금 현실에도 영향을 끼치는 모양입니다.
대체 어떤 이유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을 알 수 없습니다.
순간 균형을 잃고 땅바닥을 구릅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거나 한 건 아닙니다.
땅에 주저앉아 발목을 바라보면...
네. 통화료를 지불했습니다. 한쪽 발목이요.
다시 전화를 걸까요?
백지혜:... (순식간에 변한 풍경에 제 발목이 사라진 것은 여의치도 않은 채 멍하니 건물을 올려다본다. 통화로 바꾼 과거가... 현실에 반영되어 나탄나다고? 그럼, 그렇다면... 그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게 아니라, 잘 하면 그를 살려낼 수 있다는 걸까? 하지만 어떻게... 차 사고 다음엔 건물 붕괴. 마치 누군가가 그를 고의로 죽이는 것 같아. 애초에 차사고도... 고의성이 다분하지 않던가? 누가, 무슨 이유로...)
백지혜:(욱신거리는 심장 위에 손을 올려두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한다. 그날 이후로... 이런 고통은 다시 느껴보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고사를 알리는 전화를 받자마자 거세게 박동해 멈출 것 마냥 뛰어대던 심장. 하지만 이것은 그 없이도 5년이나 더 뛰어 조용히 숨을 연맹해왔다. 이제와 멈춘다 한들 몇번이고 죽은 그보다 더 괴로울 리 없어. 이번에야말로 꼭...) 광철, 여전히 전부 기억합니까? 방금은... 어떻게 죽었나요?
오광철:... 기억은 하지만, 모르겠어. 현장에서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위에 있던 얼굴을 가린 사람이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나더니 갑자기.
(침묵이 오래 이어진다. 떠올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형의 조언을 받아 살아남았을 때.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사이사이에 들렸던 소리들,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던 것.) 혹시 이 통화에 무언가 대가가 있어? 형을 아프게 하는 거.
백지혜:(요즘 사이비는 순간이동도 하는 건가? 대체 어떻게 도망가라는 건지...! 얼굴을 손으로 덮고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도중, 들려온 말에 흠칫 몸을 떤다.) 전... 괜찮습니다. 잠깐 아팠다 말 뿐이니까요.
오광철:아무튼, 아프긴 하다는 거지? 그럼 이번까지만 하고 통화는 마지막으로 하자. (얼굴을 가린 사람이 이동하는 것도 그렇고, 이상한 사망 방법도 그렇고. 본능적으로 인간의 영역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 이상 발버둥 쳐봐야 소용이 없다면 형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관문도, 차원 이동자도 몰라. 그리고 다음부턴 전화 걸어도 안 받을 거야.
백지혜:어째서! (다음부터 받지 않겠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순간 큰 소리를 내고 만다. 꽤 아프긴 했지만, 그가 죽었던 날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설령 방법이 없는 일이라고 해도, 계속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그는 죽음을 거듭해 가겠지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번엔... (자신 또한 살 수 있을가 하는 기대가 없었으니.) 이번엔 살아서 볼 수 있을 거에요.
오광철:어째서... (형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 없이도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이런 진심을 말해봤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만 들려오겠지.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고민하던 중 알겠다는 대답이 들려온다. 만족한 듯한 웃음소리를 낸다.)
백지혜:(...다시 내뱉어지는 호흡에 제 팔과 얼굴, 몸을 더듬는다. 또 한 번 숨을 들이쉴 땐 앞에 있는 오광철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대로 팔과 손을 지나쳐 다시 떨어질 때 까지 천천히 숨을 내뱉는다. 그 이후 어떤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를 품에 끌어안는다.) 모르겠습니다. 이젠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오광철:(아직 이해되지 않은 듯 눈을 깜빡인다. 방금 통화를 끊고, 이제 진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살아났고...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로 등에 팔을 감싼다.) 죽는다고 생각했어? 왜? 그냥 아프기만 한 게 아니었어?
주변의 풍경은 익숙한 거리입니다. 그러나 지금과는 다릅니다.
간판, 전단 등 사소한 부분이 어색하면서도 익숙합니다.
이건... 5년 전의 모습입니다.
광철이 살아있던 시절로 돌아온 거예요.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이, 두 사람의 앞에 누군가가 나타납니다.
얼굴을 가린 이는 오랫동안 굳어 있다 겨우 입을 엽니다.
??:넌... 누구지?
백지혜:(직접 본 적은 없지만 분명 이 사람이겠지. 수도없이 광철을 죽이고... 이전 통화에서 말을 했던 사람. 대답하기도 전에 오광철 앞에 서서 팔로 가린다.) 알 것... 없습니다.
??:정체를 밝혀! 그렇지 않으면 네 녀석도 같이 제물로...!
얼굴을 가린 이는 광철에게 하던 것과 달리 공격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 이유를 알면 돌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르겠으면 아이디어 가능!
백지혜: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통화가 끊기기 직전,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차원 이동자와는 엮이지 말라고 했었죠.
그리고 지금, 백지혜는 5년의 차원을 넘어왔고요.
백지혜:(흘긋... 뒤에 있는 광철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시선을 돌린다.) 5년 후 미래에서 왔습니다. 친절히 차원 이동이란 관념을 말씀해 주신 덕분에요.
??:젠장! 어째서 제물의 옆에 차원 이동자가 붙어있는 거야! 조사는 완벽했는데...!!
손을 쓸 새도 없이, 얼굴을 가린 습격자가 사라집니다.
... 이제 끝인가요?
긴장이 풀리는 듯합니다.
광철을 살렸어요. 이제 더 이상 저들은 광철을 노리지 않을 거예요.
백지혜에게 손을 내밀며 광철이 묻습니다.
오광철:나 없는 5년은 어땠어?
백지혜:(잠시 주저하다 손을 붙잡곤 시선을 맞춘다.) ...별로였어요.
오광철:안 들어도 별로인 거 알 거 같아. 5년 사이에 확 늙었어. (시선 마주하다 크게 웃는다.) 머리는 왜 기른 거야? 어색해. 하지만 멋있어.
백지혜:간만에 얼굴 보고 대화하는데 그러실겁니까? (퉁명스레 받아쳤지만 역시 신경쓰이는지 눈가 밑을 더듬는다. 이어 들려온 말에 점차 얼굴이 붉어지더니,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린다.) ...비밀입니다.
오광철:그럴 수도 있지. 형에겐 간만이지만 난 오늘 아침에도 봤는데. 오늘 아침 인사는 이렇게 했어. (오른쪽 뺨에, 입꼬리에, 입술 위에. 세 번 연속으로 입 맞췄다 떨어지며 현관에서 했던 마지막 인사를 그대로 재현한다.) 왜 비밀이야? 5년 사이에 나에게 말 못 할 일이 많이 생겼나 봐?
백지혜:(연달은 입맞춤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짓기도 잠시, 홀로 5년을 보내고 돌아왔다는 생각에 곧 미묘한 표정이 된다. 울 것 같다가도 안도하고, 웃다가도 찝찝해하는 표정...) 그럼 저도... 돌려드리겠습니다. (장례식 날 마지막으로 했던 인사. 잡은 손을 이끌어 올리곤 손등 위로 입 맞춘다.)
물론 많이 생겼죠. 5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잖아요. (그다지 숨길 것도 즐거운 일도 없었지만.) 궁금하십니까? 제 전화는 안 받겠다던 사람에게 알려줘야 할지 말지... (뒤끝...)
오광철:형이 나에게 한 마지막 인사가 이거야? (입 맞췄던 손등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뻗어 볼을 만지작거린다. 울 거 같을 때, 찝찝한 듯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억지로 입꼬리를 잡아 올려 웃는 표정으로 바꿔준다.) 70년 뒤에 한 번 더 해줘. 그땐 자연사로 죽을 수 있게 힘내볼게.
5년이 짧은 건 아니지만. 음... 됐어. 안 궁금해. (삐짐!) 형 아프지 말라고 그랬던 건데.
백지혜:(억지로 입꼬리가 올려져 바보같은 표정이 지어진다. 그래도 떨어지거나 떼어낼 생각 없이 얌전히 히죽 히죽... 웃어준다.) 이제 처리랑 전 10살 차이인데, 그보다 더 오래 살아 인사해줄 수 있을련지... (장난스런 어투...)
...그 어떤 고통보다, 광철을 잃었을 대가 제일 아팠습니다. (어깨에 머릴 기대고 시선을 맞춘다.) ...이제 집에 가죠. 5년만이라 그립습니다. 가는 길에 조금씩 얘기해 줄게요.
오광철:(히죽 웃는 얼굴에 다시 입 맞춘다. 손을 떼어냄과 동시에) 건강 관리 열심히 시켜야지. 나 94살까지 살게. 형 104살까지 살아. 한날한시에 죽자. 형도 날 잃지 말고, 나도 형을 잃지 말기로.
... 집도 5년 만에 가는 거야? 어디서 살고 있었대. (이마로 콕, 눌렀다가 떼어낸다. 한 걸음 물러서서 제대로 얼굴을 보고.) 궁금하긴 한데, 5년 동안 형이 어떻게 지냈는지 굳이 지금 말해줄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이제부터 나도 같이 겪을 테니까.
양손을 내려다보자, 온몸이 약한 빛을 내며 반투명하게 변해 있습니다.
그제야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알게 됩니다.
계속해서 사라졌다가 나타났던 자신의 육체는 이곳을 다녀간 모양입니다.
그것들은 사라지고 몇 분 후에 원래대로 돌아왔었죠.
이제는 자신이 돌아갈 차례입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광철을 만날 수 있겠죠.
돌아가기 전,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이 있나요?
백지혜:...아. (투명해진 두 손을 가만 내려다보며 천천히 미소 짓는다. 그의 5년을 못 보는 것, 함께 살아가지 못 하는 것, 지나간 시간을 전부 말해줄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제 돌아가면 그가 있을 것이다. 그동안 외롭지 않도록...) 광철, 잘 있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