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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깜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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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적시던 비는 어느새 폭우가 되어 내리는 중입니다.
 
개학을 하루 앞둔 지금, 당신은 집에 홀로 남아있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꺾일 기미 하나 보이지 않으매 비는 더위를 감추지 못합니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입니다.
 
아까부터 티비에서 흘러 나오는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조금 거슬리다고 생각했던가요.
 
문득 그것에 집중하다보면…
오광철, 듣기 판정.
 
오광철: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26
판정결과: 실패
 
쏴아아- 매서운 빗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비는 언제 즈음 그칠까요?
재판정이 가능합니다.
 
오광철: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38
판정결과: 실패
 
티비 소리야 높이면 그만입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면...
 
끊이지 않는 빗소리, 그 사이 이질적인 소리도 함께 들립니다.
 
 
아나운서: “8월 하순을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의 강수량이….”
 
빗소리보다 조금 더 거칠고 무게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앵커가 무어라 하든 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지니까요.
 
 
아나운서: “새벽부터 시작된 비는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
 
 
아나운서: “시간당 100mm로 인천 전역을 시작해 전국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으며,”
 
-똑
 
 
아나운서: “기습폭우로 인한 피해 역시 속출하는 중입니다.”
 
확실하게,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택배를 시켰던가…
 
아니면 누가 집에 방문하기로 했던가요?
 
기억을 더듬어도 방문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팟-
 
몇 가지 소리와 함께 가전제품들의 불이 꺼집니다.
 
정전이군요.
 
우중충한 하늘 덕에 잿빛이 슬금 들어온 집안은 낮임에도 어둑하네요.
 
인터폰마저 지직, 뚝.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습니다.
 
어째 예감이 좋지 않네요.
 
문을 열어줄 건가요?
 
아니면, 조용히 그 누군가를 무시할까요?
 
오광철:(망설임 없이 문을 엽니다. 상대가 칼을 든 괴한만 아니라면 위협해와도 싸워 이길 자신이 있거든요...)
 
역시 인천 4대 조폭가의 차기 짱은 다릅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백지혜:앗, 역시 계셨군요.
 
우산 하나 없이 다 젖은 생쥐꼴을 한 백지혜입니다.
 
흥건히 젖은 바닥이 보입니다.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머리카락,
 
하염없이 물이 떨어지는 옷, 또….
 
백지혜:...광철아?
 
비에 젖은 탓인지, 안색이 굉장히 파리해 보입니다.
심리학 판정 가능.
 
오광철:
심리학
기준치: 20/10/4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당신의 착각일까요?
 
여유를 잃은 그 표정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백지혜:괜찮으십니까?
 
…무엇이?
 
그리 묻는 백지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바꿉니다.
 
아까처럼 목소리를 떨지 않고, 그저 태연한 낯으로.
 
백지혜:가던 길에 우산이 없어서 곤란하던 참이었는데, 광철의 집이 가까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실례지만 신세 좀 져도 될까요?
 
당신의 집은 그저 길 가다 우산이 없어 들릴 만한 곳은 아닐텐데…
 
오광철:(앞선 수상한 점들에 대해 생각하다 금방 포기합니다. 어차피 내가 알아서 해결될 일이었으면 말했을 테고 일단 이 젖은 꼴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열쇠를 줄까? 앞으로도 필요한 거 있으면 와서 가져가. 다 젖었는데 씻고 가고. 옷도 꺼내놓을게.
 
백지혜:그렇게나 신경써 주시진 않으셔도 되는데! (가만히 널 바라보다, 어깨 너머로 집 안을 흘긋 살핀다.) 그보다 남에게 함부로 집 열쇠를 넘기면 안 되니까요! 이번만 조금 신세지겠습니다. (사람 좋게 웃으며 제 뒷목을 슬 문지른다. 뚝뚝...)
음? 평소에 불을 안 켜고 생활하시나요? (뻔뻔하게도 먼저 집에 발 들여놨다...)
 
오광철:아냐, 형은 이 정도 신경은 받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열쇠도 형이니까 준다고 하는 거고... 지금은 됐다지만 나중에 생각 바뀌면 말해. (젖는 바닥은 신경 쓰지도 않고 화장실에서 커다란 수건 하나 꺼낸 뒤 뒤에서부터 젖은 머리 위에 올립니다.)
아니, 방금까진 켜져 있었는데 형 오기 직전에 불이 나갔어.
 
백지혜:이거 참...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격스러운데요. (머리에 툭 올려진 수건에 뒤 돌아 감사합니다, 하고 짧은 인사를 전한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는둥 마는둥... 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곧 돌아가야 할 테니까 상관은 없겠지만...
두꺼비 집 봐드릴까요?
 
오광철:(몇 걸음 옆에서 닦는 것을 지켜보다 다가가 수건을 뺏어 머리 팍팍 닦아줍니다.) 아까 안색 나빴던 거 같은데 그렇게 하면 진짜 감기 걸려. 개학부터 학교에서 형 보지 못하는 건 싫으니까 제대로 해. (닦는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 볼 수 있어? 그럼 해줘.
 
백지혜:앗. (팍팍 닦아주는 손길에 엉거주춤 두 손을 머리 근처에 올려놓는다. 얌전히 닦이나 싶던 것도 잠시, 네 손목을 잡곤 수건과 함께 내린 후 고개 들어 시선 맞춘다.) 제가 그렇게나 보고싶으셨나요? 비가 내린 것에 감사해야겠군요. (능청부리며 작게 웃곤) 덕분에 완전 뽀송해졌습니다. (여전히 물기가 좀 흐르긴 했으나...)
그럼 잠시... (수건에 손 만큼은 깔끔! 하게 닦아내고 현관으로 가 기웃거린다. 쉬이 발견한 두꺼비 집 케이스를 열어 몇 번 달칵거리면...)
 
깜빡... 깜빡...
 
당신 집엔 와본 적 없을 그일텐데, 능숙하게도 척척 찾아내는군요.
 
불이 켜진 덕분에 한결 우중충한 분위기가 나아졌습니다.
다시 전원이 들어온 네모난 상자 속 [뉴스]는 여전히 이번 기습폭우를 다루고 있으며, [화장실] 에서는 뽀송한 수건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아, [부엌] 찬장에 고이 모셔둔 티백으로 차가운 그의 몸을 녹일 수 있겠네요. [백지혜] 는 그저 우뚝 서 있습니다.
자유 롤플레잉 조사 가능!
 
오광철:(갑자기 들어온 빛에 눈을 깜빡이며 적응한 뒤, 일단 우뚝 서있는 지혜를 먼저 살펴봅니다. 직전에 손을 뽀송하게 닦아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세찬 비를 맞은 탓인지 백지혜의 낯은 평소보다 더 창백합니다.
 
그 외 평소와 다른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평소와 다른 점이….
관찰력 판정 가능.
 
오광철:
관찰력
기준치: 35/17/7
굴림: 48
판정결과: 실패
 
찰나, 백지혜의 손등 위로 여린 푸른빛이 반짝거립니다.
 
...감전? 은 아니겠죠. 설마.
 
오광철:(설마...) (체온 확인 겸 감전 유무 확인을 위해 지혜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등을 가져가 붙여봅니다.)
 
백지혜:...? (맞닿은 손등을 가만히 보다가 작게 중얼거린다.) 아, 주문이라면 아직 괜찮습니다. 확실합니다.
 
체온은 조금 낮은 거 같으나...
 
감전은 아닌 게 확실하군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린것도 같지만...
 
오광철:주문이라니 무슨 헛소리야. 졸리면 괜히 비 맞으며 돌아가겠다고 하지 말고 자고 가. (체온이 낮다! 마실 것을 챙기러 부엌으로 가 찬장을 살펴봅니다.)
 
네? 저 멀쩡한데요? 하고 소리치는 백지혜를 뒤로 해 부엌으로 이동합니다.
 
찬장에는 티백이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어디서 받았던 건지, 직접 산 건지 기억은 흐릿하지만요.
 
뭐가 있더라, 열어서 확인해 볼까요?
 
오광철:(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무시하고 티백들을 확인합니다.)
 
덜컹,
 
내부는 텅 비어있습니다.
 
분명 많이 남아있었는데...
 
동생이 모두 먹었을까요?
 
지금 백지혜에게 줄 수 있는 건 따듯한 물이 전부입니다.
 
오광철:(텅 빈 티백 상자를 바라보다가 따뜻한 물을 동생이 아낀다고 쓰지 말라 몇 번이나 당부했던 예쁜 찻잔에 따라 가져옵니다.) 그냥 물이 싫으면 설탕이라도 타줄까?
아니면 화장실에서 수건 더 가져올게. 머리랑 손만 대충 닦은 거니까. (도망치는 듯 화장실로 이동합니다...)
 
백지혜:(미묘하게 예쁜 찻잔... 전부터 생각했지만 광철의 취향은 조금 여자아이구나. 여동생의 물건을 쓴 탓임을 알 리 없는 백지혜가 그리 생각하며 찻잔을 받아든다.) 앗, 감사... (하다고 인사하기도 전에 쌩 간 탓에 허공에 대고 웃어버렸지만. 그저 따뜻한 물만 홀짝인다.)
 
습기 가득한 눅눅한 하루라 해도 수건은 뽀송한 게 제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다.
 
수건이 더 필요할까요?
관찰력 판정!
 
오광철:
관찰력
기준치: 35/17/7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가지런히 놓인 칫솔이 눈에 밟힙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색이었죠.
이어서 행운 판정!
 
오광철:
기준치: 65/32/13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미끄러운 바닥에 기우뚱,
 
넘어질 리 없죠.
 
신체 반응 속도는 전부터 꽤 좋았으니 당연합니다.
 
무사히 수건을 꺼내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오광철:(수건을 들고 나와서 다시 머리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곤 다시 한번 체온을 확인하는 듯 손등을 이마에 올려놓고 가만 지켜봅니다. 체온은 좀 돌아왔나요?)
 
백지혜:(또 머리 위에 올려진 수건을 시선 올려 멀뚱히 보다가 당신의 손등에 기대려는듯, 혹은 문지르고 싶은건지 무게중심이 조금 앞으로 쏠린다.) 아까부터 말했지만 전 멀쩡합니다.
 
확실히, 체온도 아까보단 덜 차가운듯 합니다.
 
오광철:(아직 체온이 만족스럽지 않은 듯 가만히 지켜봅니다. 체온을 올릴 확실한 방법... 짧은 고민 끝에 손등에 기댄 머리가 앞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천천히 손을 뺀 뒤, 축축한 옷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나란히 앉아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고는 뉴스로 시선을 옮깁니다.)
 
 
아나운서: “기습폭우에 의한 피해가…”
 
주간 날씨를 알려주는 화면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합니다.
 
비, 비, 그리고 비.
 
여름철 장마는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전국을-그리고 한 주가 비로 가득한 건 이번 여름 중 처음입니다.
 
 
아나운서: “유명 스포츠 선수 A씨의 은퇴 사실에 관한 루머들이…”
 
 
:지능 판정 해주세요.
 
오광철:
지능
기준치: 45/22/9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처음 듣는 내용인 것 같은데,
 
다음으로 다루는 뉴스 내용은 낯설기만 하네요.
 
쏴아아, 비는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말발굽 소리처럼 휘몰아치는 비,
 
색을 잃은 잿빛 하늘, 습한 여름.
 
어느 정도 물기가 마른 백지혜는 간간이 멍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질적인 하루입니다.
 
폭우와 정전, 빗방울과 예상치 못 한 방문객,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운 여름...
 
백지혜:(평소라면 제 옷이 아주 흠뻑 젖었으니 옆에 앉는 건 고사하고 닿게 하는 것도 조심스러울텐데, 비를 맞은 탓에 컨디션이 안 좋은건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지... 어딘가 멍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고갤 옆으로 돌려 한참 바라본다. 가늘어지는 눈매, 더듬어 올라가 어느새 잡고 있는 손목. 천천히 입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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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광철아.
 
당신의 이름이 허공을 둥둥 부유합니다.
 
나지막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사뭇 진지한 표정의 그가 보입니다.
 
그의 손등에 새겨졌던 빛이, 헛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이.
 
당신만을 오롯이 담은 그 눈에 푸른 빛이 스칩니다.
 
동시에 그의 피부 위로 기하학적인 형태의 무늬가 그려집니다.
 
지금 당신은 무얼 보고 있는 거죠?
 
백지혜:이번에는 잘 될 겁니다.
…제대로 기억할 수 있죠?
 
 
:오광철, 듣기 판정.
 
오광철: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지금 이 상황,
 
이 공간이 너무나도 고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비가 그쳤던가요?
 
창밖을 바라보면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비는 허공에 방울방울 ‘멈추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둥근 물방울의 형태를 가지고서.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SANC 0/1.
 
오광철: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백지혜:학교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릴게요.
 
백지혜는 당신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고 눈을 감습니다.
 
그는 반복적으로 괜찮다, 이번에야 말로, 같은 말들을 되뇌입니다.
 
그중엔 알 수 없는 단어들도 몇 개 들려온 것 같아요.
 
피부 위로 새겨진 무늬는 백지혜를 집어삼킬 듯 반짝이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숨을 쉬기도 어렵습니다.
 
별자리가 촘촘히 수 놓인 그에게서,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려요.
 
허공에 방울방울 매달린 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백지혜가 입 모양으로 어떤 말을 전합니다.
 
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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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이번 주 내내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열대야 역시 지속적으로…”
 
창밖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건조한 탓에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당신의 손을 잡고 있던 상대는 어디로 갔을까요.
 
집 안에 남은 건 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
 
그리고 당신뿐입니다.
 
 
:기이한 경험을 한 오광철, SANC 1/1d2.
 
오광철: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마치 영화 속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듯 페이드아웃 없이 한순간에 뒤바뀐 세상.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자유 행동 가능! (그냥 개꿈꿨네 하고 넘기셔도 됩니다)
 
오광철:(비어있는 옆자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닦지 않았던 떨어진 물, 꺼내온 수건과 찻잔, 기대느라 젖었던 옷 등 지혜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확인합니다.)
 
꺼내온 수건과 찻잔,
 
닿아있던 미적지근한 온기,
 
그에게서 뚝뚝 떨어지던 물마저 사라졌습니다.
 
오광철:(핸드폰을 킨 뒤 전화나 카톡을 남길 수 있을까요?)
 
그에게 전화를 걸어보나요?
 
오광철:(익숙하게 외운 번호를 입력한 뒤 전화 걸어봅니다!)
 
뚜르르르...
 
신호음만 한참 이어지더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로 시작하는 기계음이 울립니다.
 
몇 번을 다시 걸어도 돌아오는 답은 없군요.
 
긴 신호음 사이, 여전히 켜져있는 뉴스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맑음, 맑음, 그리고… 맑음.
 
장마철인데도 이렇게 맑은 날이 지속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분명 전부 비였는데….
 
휴대폰 화면 속 오늘의 날짜는 그대로입니다.
 
오광철:(모르겠다! 내일 학교에서 물어보면 해결될 일이겠지 싶어 제 자리에 풀썩 엎어집니다. 방금까지 여기 형이 있었는데. 괜히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고 좀 서운한 듯 죄 없는 통화 기록만 노려봅니다.)
 
역시 머릴 싸매도 모르겠는 일은 넘겨버리는 게 낫죠.
 
방문객이 사라진 집은 평온하고, 고요합니다.
 
올려다 본 창밖은 그늘마저 푸르러 바다를 베어 옮겨둔 듯한 착각을 일으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매미 소리,
 
물감을 풀어둔 푸른 하늘, 건조한 여름.
 
어쩌면 꿈이라도 꾼 걸지도 모릅니다.
 
쏟아지는 햇살은 눈을 괴롭힙니다.
 
...분명 학교에서 만나자고 말했었죠.
 
대체 오늘 겪은 일이 무엇인지….
 
만나면 제대로 추궁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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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멀게만 느껴지던 단어가 오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펄럭이는 교복들이 흰나비처럼 이곳저곳 쏘아 다니네요.
 
어제 일어났던 일들이 생생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일을 빼면 이 여름은 평범한 하루와 다를 것 하나 없었죠.
 
그건 정말 꿈이었을까요? 걸음은 느릿해집니다.
 
보통은 횡단보도를 건너, 가로등 두어 개를 지나면 그가 보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학생: “야, 그거 들었어? 오늘 정상수업이래.”
 
당신의 눈 앞을 지나가는 건 같은 반 친구들 무리입니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며 등교하고 있군요.
 
 
학생: “그보다 오늘 날씨 진짜 좋네. 보통 이맘때 즈음이면 비도 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새학기를 기념해...
 
저들과 친분이라도 쌓아보는 게 어떨까요>
 
...?
 
오광철:(나에겐 형만 있으면 된다! 먼저 말을 걸면 대답은 해주겠지만 일단은 학생들을 외면합니다...)
 
 
학생: " 어, 광철이다. 광철아 안녕!"
 
사교성 좋은 친구네요.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다니...
 
오광철:어. (누구더라...) 안녕. 방학 때 연락 없어서 죽은 줄 알았어. 잘 살아있어서 다행이네.
 
 
학생: "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글고 연락처가 없는데 연락을 어떻게 해..."
" 이 기회에 줄래?"
 
오광철:그래, 줄게. (핸드폰 넘깁니다.) 네 번호 찍어줘. 그리고... 하는 김에 이름까지 같이. (...) 이름 모르는 거 아니고, 이제부터 그냥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주려고. 어어, 알지?
 
 
학생: " 모르는 거 같은데..."
 
오광철:알고 있다고.
 
당신의 휴대폰을 넘겨받은 학생이 의심스럽게 보다가도 번호를 찍습니다.
 
이름은 어디 보자...
 
피쨩...? 특이한 이름이 다 있네요...
 
그 학생은, 무언가 떠올린 듯 고갤 번쩍 듭니다.
 
 
학생: “아, 맞다. 동아리 보고서!”
 
다시 당신에게 휴대폰을 내밀곤, 왔던 길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합니다.
 
 
학생: "야! 이따 반에서 보자!"
 
무언갈 두고 온 모양이네요.
 
덩그러니 남겨진 당신의 뺨 위로 푸른 나뭇잎 하나가 떨어집니다.
 
중력을 따라 떨어진 잎은 한가득 여름을 담아 푸르기만 합니다.
 
어느새 걸음은 교문 앞 횡단보도입니다.
 
신호를 기다리며 건너기 전, 당신에게 전화 한 통이 도착하네요.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합니다.
 
화면을 보면 저장되지 않은 처음 보는 번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까 걔는 아닌 모양입니다.
 
오광철:(바로 전화받습니다. 스팸이면 3초 뒤 끊을게요.)
 
휴대폰 너머로 옅은 숨소리가 들립니다.
 
한참을 얘기하지 않은 채, 그저 숨소리만이.
 
잘못 건 전화일까요?
 
오광철:(머뭇...) 누구세요? 할 말 없으면 끊을게요.
 
 
수화기 너머 백지혜: …오광철?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전화를 건 이는 백지혜입니다.
 
불안하고, 여유가 사라진 그 목소리는 볼품없게 느껴져요.
 
동시에 그가 낯설기도 합니다.
 
오광철:형이야? 오늘따라 왜 그래? 어디 납치된 사람 같은 목소리로. (...) 설마, 아니지?
 
 
수화기 너머 백지혜: 예? 아, 아닙니다. 납치라니 당치도... (당황...) 전 학교에 있으니 그건 안심해 주세요.
 
오광철:목소리가 평소랑 다르길래. 별일 없는 거라면 됐어. (천천히 학교 쪽으로 발걸음 옮깁니다.) 그런데 좀 서운해. 어제는 말도 없이 가고, 오늘도 같이 안 가주고. 번호는 언제 바꾼 거야?
 
 
수화기 너머 백지혜: 제 번호가 바뀌었습니까? ...음,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어서...
저, 광철... 혹시 제 이름을 아십니까?
 
이름? 당연히 알고 있죠.
그러나 정신력 판정.
 
오광철: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의 이름은 백지혜입니다. 잘 알고 있듯이,
 
오광철:저장되지 않은 번호던데 바꾼 거 아냐? (다시 화면 확인합니다. 기억과 다른 번호...)
이름은 또 왜. 형 이름 지혜잖아.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어제 비 맞아서 아픈 거 아닌... (아, 맞다.) 어제 우리 집 온 건 맞지? 그거 꿈 아니지?
 
 
수화기 너머 백지혜: (그리 길지 않은 침묵,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다.) ...이거 이거, 아직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군요.
 
보행자용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뀝니다.
 
횡단보도, 그 하얀 선을 따라 걸을 때 즈음 백지혜가 중얼거립니다.
 
매미가 우는 소리에 묻혀버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 백지혜: …저, 얼굴이 사라지는 중입니다.
 
…이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요?
 
그러나 그는 장난을 치는 기색이 아닙니다.
 
휴대폰 너머의 표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있습니다.
 
그리곤 전화를 뚝 끊어버리네요.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텐데.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정신이 멍해집니다.
 
그러나 의문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끼익-!
 
당신의 눈앞, 가까운 거리를 두고 아슬하게 멈춘 차 옆으로 한 학생이 넘어져 있습니다.
 
거 참 운전 더럽게 하네!
 
부딪히진 않았지만 모두가 웅성거리며 횡단보도 쪽을 쳐다보네요.
 
 
:관찰력 판정 해주세요.
 
오광철:
관찰력
기준치: 35/17/7
굴림: 44
판정결과: 실패
 
운전자와 학생은 무어라 얘기하는 중입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됐지 뭐...
 
소란도 잠시, 지각을 피하고자 모두 다시 학교로 걸음을 옮깁니다.
 
물론 당신도 그래야겠죠.
 
오늘 하루의 시작이 묘하군요.
 
한층 한층 계단을 오르다 보면 당신의 반이 보입니다.
 
...들어가기 전, 신경쓰이는 일을 확인해 보는 건 어떨까요?
 
또 한층을 오르면 백지혜의 교실이 나올 겁니다.
 
오늘따라 파아란 창밖이 기이하게도 아름답습니다.
 
오광철:(교실에 들어가 책상 위에 가방만 대충 던진 뒤 바로 한 층 위로 올라갑니다. 창밖이나 주변 애들에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아요.)
 
다른 것들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그를 찾아봤지만,
 
그의 교실 속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보니 그만 없는 게 아니네요.
 
백지혜의 책상과 의자까지도 그림을 잘라 떼어놓은 듯 보이지 않습니다.
 
그새 퇴학... 전학을 갔나...?
지나가는 [학생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이며, 교탁에 붙은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자유 조사 가능!
 
오광철:(일단 자리표부터 확인합니다.)
 
교탁 위에 붙여진 자리표에는 학생들의 자리 위로 이름과 학번이 적혀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활자를 짚어 살피면….
 
없습니다.
 
애초에 없던 학생처럼 백지혜의 자리도, 이름도, 학번도.
 
없군요.
 
오광철:(복도로 나가서 반을 다시 확인합니다. 여기가 진짜 지혜의 교실이 맞나요?)
 
2학년 3반, 정확히 기억한다면 틀림없습니다.
 
오광철:(확인 후 교실로 들어오는 사람 한 명을 붙잡아 물어봅니다.) 혹시 백지혜 어디 있는지 알아? 원래 저쪽 (비어있는 자리 손으로 가리킵니다.)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학생: 응? (널 가만 보다가 조금 겁먹은 듯한 눈치를 보인다.) 아,아니? 백지혜... 우리 반이야? 난 처음 듣는데. (가르킨 자리를 보더니) 저긴 원래부터 비어있었는걸...
 
오광철:...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살도록 해봐.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오늘에서야 이름을 알게 된 친구-피쨩-가 있으니까. 그대로 뒤돌아서 다른 학생 무리에 다가가 똑같이 물어봅니다.)
 
 
학생: (억울....)
 
또 한 사람을 붙잡고 백지혜에 대해 물어봤으나, 돌아온 답은 전과 비슷했습니다.
 
그중엔 분명히 백지혜와 친분이 있었던듯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봤던 거 같은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난을 치는 것 같은 기색은 아닙니다. 반 전체에 걔가 누구야.. 하는듯한 분위기가 돕니다.
 
반 단체로 약을 했나...
 
오늘따라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시끄럽습니다.
 
하나, 둘, 셋. 당신에게 그리 속삭이던 백지혜는 어디로 간 걸까요.
 
모두가 한 사람을 잊고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창밖의 [푸른 하늘]은 작위적으로 맑고, 나무 아래 그림자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당신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광철:(일단 반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2학년 교실을 빠져나와 복도에서 가만히 창밖의 푸른 하늘을 바라봅니다. 눈이 부셔 잠깐 표정을 찡그리지만 시선을 떼진 않습니다.)
 
구름 몇 점이 떠다니는 하늘은 지독하게도 푸릅니다.
관찰력 판정 해주세요.
 
오광철:
관찰력
기준치: 35/17/7
굴림: 1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날씨라고 해도…
 
구름은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움직이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있습니다.
 
오광철:(구름과 눈싸움을 하는 듯 창틀에 기대 빤히 노려봅니다. 정말 조금도 움직이지 않나요?)
 
정말,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화면에 띄워둔 사진같아요.
 
오광철:시간이 멈춘 거 같네... (혼자 중얼거린 뒤 눈을 감습니다. 헛소리라는 거 압니다... 눈도 감은 김에 그대로 매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뜨거운 햇빛에 살짝 잠이 오는 거 같기도 해요.)
 
당신의 잠을 깨우기라도 하려는듯,
 
매미의 돌림노래는 끝날 기미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듣기 판정 해주세요.
 
오광철: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43
판정결과: 실패
 
일정하게 반복되는 소리는 흐트러짐이 없군요.
 
띠리링-
 
힘차게 울리는 수업 종.
 
재잘거리던 아이들도 자리를 찾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기억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모두가 그것이 거짓이라고 입모아 말한다면,
 
자신의 기억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부재는 애초에 없던 것처럼 하루가 흘러갑니다.
 
 
선생님: “예문에도 나와 있듯이 관계부사를 써야 하므로…”
“…에서, 그러므로 빈칸에 들어갈 말은.”
 
Where.
 
몇 아이들이 답합니다.
 
동시에 선생님께선 당신을 탐탁지 않게 쳐다봅니다.
 
 
선생님: “광철이가 오늘 영 집중을 못 하는 것 같네. 아까 말한 빈칸의 답, 한번 불러보렴.”
 
모두의 시선이 당신에게 쏠립니다.
 
오광철:...어 (안 듣고 있었다! 옆자리에 펼쳐진 책의 내용을 힐끔 보고는) Where?
 
 
선생님: ...씁...
 
선생님은 영 탐탁치 않은 모양이지만...
 
수업을 이어갑니다.
다시 시선을 돌리던 때, 관찰력 판정.
 
오광철:
관찰력
기준치: 35/17/7
굴림: 3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때, 복도 쪽 창가를 익숙한 인영이 스쳐 지나갑니다.
 
햇살에 눈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분명 백지혜를 닮은 이입니다.
 
 
선생님: “오광철?”
 
선생님께선 벙긋하는 입으로 무어라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당신에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개학 전부터, 등교 첫날부터 무던히도 신경쓰이게 했었죠.
 
그를 붙잡아 확인해 보고 싶지는... 않은가요?
 
오광철:저. (급하게 손들고 선생님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봐도 안 아픈 표정...) 갑자기 배가 아파서요. 보건실 좀 다녀올게요.
 
 
선생님: " 뭐? 안 아파보이는데... "
 
오광철:(필통 뒤적거리며...) 안 보내주면 이제부터 아프게 될 예정이에요.
 
술렁,,,
 
당신에게 새로운 소문이 붙는 순간입니다.
 
당황한 표정의 학생들을 지나쳐 복도로 향하면 흔들리는 머리칼은 이미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
 
위로, 그리고 다시 위로.
 
어느 교실에선 시를 읊는 소리가,
 
어느 교실에선 공식을 정의하는 소리가.
 
계단을 오르는 이는 당신과 백지혜뿐입니다.
 
그는 뒤 한 번 돌지 않고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네요.
 
분명 체력은 당신이 더 자신있을 터인데...
 
한참을 걷던 다리가 저릿해질 때 즈음,
 
활짝 열린 옥상 문을 보게 됩니다.
 
…그가 이곳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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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옥상에 발을 딛자 철조망 밖 너른 하늘을 보는 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흩날리는 머리칼은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에서.
 
바람의 방향은 초 단위로 달라지고, 하늘 위 구름은 못이 박힌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펄럭이는 교복, 흔들리는 검은색 머리카락.
 
그는 천천히 뒤를 돕니다.
 
아, 그 얼굴은 분명…
 
백지혜:...광철?
 
검은색 머리카락, 당신과 엇비슷한 체형에 언제나 단정한 교복.
 
하지만, 얼굴은 지우개로 문댄 듯 보이지 않습니다.
 
흐릿하고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그 얼굴만은 알아볼 수 없습니다.
SANC 0/1
 
오광철: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에게, 그리고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블러 처리가 된 듯한 그 얼굴에 몸이 반사적으로 얼어붙습니다.
 
백지혜:...이거 참, 아무래도 이번 세계는 많이 뒤틀려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도 절 아는 체 해주지 않더군요.
그래도 광철은 절 기억하고 계시죠? 이렇게 찾으러 와주셨으니.
 
오광철:이번 세계라니, 형도 약했어? 그거 좋은 거 아닌데. (괜스레 이상한 말로 상황을 돌려봅니다.) 얼마나 심하면 반 전체가 기억이 사라져. 나만 기억하고 찾고 있었잖아. (다가가 옷자락을 붙잡습니다.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지혜가 했던 것처럼.) 오늘 어디 있었어? 지금 상황은 다 뭐고. 납득될 때까지 절대 안 놓을 거야.
 
백지혜:... (무어라 대답하면 좋을까.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고- 아니, 돌아오긴 커녕 잃는 게 더 많아질 것이다. 버릇처럼 눈썹을 우그러뜨리고 미간을 좁힌다. 이런 표정 지어도 보이진 않을텐데... 붙잡힌 옷자락을 내내 바라보다 더듬 더듬 말을 이어간다.) 오늘은......... 줄곧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렁이는 표정.
 
아니, 저걸 표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흐릿한 얼굴은 여전히 뿌옇기만 합니다.
 
…눈은 어떤 색이었고, 어떤 모양이었고, 또 어디에 자리 잡고 있던지.
 
당신마저 그 얼굴을 떠올리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가진 그에 관한 기억들 역시 하나둘씩 지워지는 중이란 것을요.
 
백지혜:그리고... (짧은 침묵, 제 옷깃을 붙들은 네 속목을 그러쥐곤 한 걸음 다가간다.) 광철에겐 보입니까? 제 얼굴이.
 
오광철:... (얼굴이 보이냐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하는 것으로 대답은 충분했을 것입니다.) 보여. 아마도... (거짓말.)
 
백지혜:... 안 보이는군요. (충분했다. 거짓말 할 때 항상 티난다니까...)
 
그는 그대로 굳어 당신을 마주 봅니다.
 
그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분명 그리 느꼈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요동칩니다.
 
가는 침묵이 흐른 후 백지혜는 당신을 그대로 와락 끌어안습니다.
 
엇박자로 뛰는 심장 박동 소리.
 
백지혜:... ... ...
 
한참이 지난 후에야 백지혜는 진정한 듯 천천히 당신에게서 떨어집니다.
 
백지혜:차원의 관문도 사용할 수 없더군요. 마치 이 세계에 갇힌 것만 같이.
 
차원의 관문? 그리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습니다.
 
백지혜:기억도 온건치 않으신데, 이렇게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만...
 
말 한 마디 전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수많은 갈등이 스칩니다.
 
백지혜:저흰 원래 세계에서 신도들에게 쫓기는 중이었습니다. 도망치던 중 차원의 관문을 사용했지만, 그대로 우주 미아가 되었고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차원을넘었습니다.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가끔 기억을 잃기도 했었죠…
 
…우리가?
 
그의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영화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백지혜는 평소에도 공상같은 이야기를 종종 해왔었지만…
 
이번엔 농담같은 게 아닐 것을 직감합니다.
 
제물과 차원의 관문, 우주 미아와 다른 세계.
 
우주를 건너, 먼 은하를 건너, 다른 세계로 함께.
 
마치 당신이 겪은 일처럼.
핸드아웃, 기억의 파편을 공개합니다.
모든 것을 떠올린 오광철, SANC 0/1d2.
 
오광철: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비가 멈추는 것은 주문진에 의해 발생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비가 쏟아지던 그 여름도, 맑고 화창한 이 여름도.
 
우린 원래 세계를 찾아 한없이 우주를 넘나들었죠.
 
그 과정 중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여름인데도 선선했던 어느 세계,
 
잘못된 위치에 떨어져 바다에 빠졌던 우리,
 
겨울 별자리가 보이던 또 다른 세계.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찾아서,
 
다음 세계로.
 
그렇다면 왜, 이번 평행세계에서 그는…
 
사라지는 중인 걸까요?
 
백지혜의 존재 자체가 없었던 세계 또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백지혜:이쯤이면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이 세계는 저희가 여러번 넘어온 곳들과는 다릅니다. 절 모두가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은 둘째치고,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들 투성이에요. 만들어지다 만 것 같은 곳이랄까…
…광철, 당신 또한 저를 잊을지도 모릅니다.
 
흐르지 않는 몽글한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선 곳의 짙은 파랑이 가려집니다.
 
백지혜는 천천히 철조망에 기대앉아 작은 수첩과 연필을 꺼냅니다.
 
당신을 위해 옆자리를 가볍게 쓸어내리는 그 손은,
 
미약하게 떨리는 그 손은,
 
그의 얼굴처럼 흐려지고 형태를 잃고 있습니다.
 
이윽고 모든 소리가 사라집니다.
 
그 자리를 연필 소리가 가득 채웁니다.
 
다급한듯 하면서도 정확한 손놀림.
 
사각거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집니다.
 
이건 잊지 않기 위한 기록입니다.
 
잊혀지지 않기 위한 기록.
 
백지혜:...저에 대한 것을 적어두었습니다.
 
그저 희망 사항일지라도.
 
백지혜:잊지 말아주세요. 광철만큼은 저를 잊어선 안 됩니다.
 
기억해 달라는 그의 목소리마저 뭉툭해져 알아들을 수 없게 됩니다.
 
백지혜는 당신의 어깨 위로 툭, 힘없이 머리를 기대네요.
 
그 무게마저 낯섭니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애써 붙잡아도,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백지혜:뭐, 그렇게 애쓰실 것도 없습니다.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요!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제 이름을 불러주시겠습니까?
 
오광철:왜 마지막이야. 잊지 않을 건데. 형, 지혜 형, 백지혜... (...) 기억하고 있을게. 형은 혼자 있는 거 싫어하니까 나 없으면 안 되잖아. (잊어버리지 않도록 형이란 호칭 뒤에 가려져있던 백지혜, 이름 세 글자를 반복해 중얼거립니다.)
 
백지혜:(세계에서 존재가 지워지는 일. 분명 좋은 경험은 아닐 터다. 그럼에도 다행이라고 생각된 점은, 자신의 표정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것과 자신을 기억해 줄 마지막 사람이 너라는 점이겠지. 반복해서 들려오는 이름에 불안함과 더불어 기묘한 만족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답한다. 계속, 다시......)
기억해 주세요.
 
그 이름 역시 떠올리기 힘들어질 때면,
 
□□□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흰 물감을 군데군데 풀어둔 하늘 아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서서히 지워집니다.
 
기대어 느껴지던 무게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 □□□, □□□….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지금처럼.
 
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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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은 맑으매 푸른 하늘은 눈이 부십니다.
 
무더운 여름은 습하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데자뷔처럼 옥상에는 당신만이 홀로 남아있습니다.
SANC 0/1.
 
오광철:
SAN Roll
기준치: 64/32/12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손에는 힘껏 구겨진 수첩,
 
급하게 휘갈겨 쓴 티가 역력한 글이 남아있네요.
 
가장 크게 □□□에 대한 정보라고 적혀있으며,
 
그 아래로는 누군가의 사소한 정보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 □□□, □□□….
 
절대 잊어선 안 될 이름인데도 왜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지.
 
이젠 여름이 원망스럽게 느껴집니다.
 
□□□를 되찾고, 이 세계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오로지 당신의 힘으로만, 홀로.
 
한참을 되뇐다고 하여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철조망에 오래 기댄 탓에 몸이 찌뿌둥하기도 하네요.
 
툭, 움직이자 가벼운 종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열어볼까요?
 
오광철:(열어봅니다...)
 
음, 이름조차 기억 안 나는 이 사람은 평소에도 참 말이 많았었죠.
 
그러니까…
지능 판정 해주세요.
 
오광철:
지능
기준치: 45/22/9
굴림: 99
판정결과: 대실패
 
휘갈겨 쓴 탓에 더 알아보기 힘듭니다.
 
숫자는 뭐고, 또 그사이의 글은 뭔지…
 
…그사이에 수업 하나를 완전히 빠진 것 같습니다.
 
뭐... 이곳은 진짜 세계가 아니므로 상관없는 일이죠.
 
어쨌든 쉬는 시간입니다.
 
이름도, 성격도, 함께한 추억도
 
그 모든 게 조각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만이 남은.
정신력 판정 해주세요.
 
오광철: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 이젠 그 사람과 당신은 어떤 관계였는지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굳이 도서실로 향해야 할까요?
 
오광철:(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해봤자 무슨 감흥이나 있겠나요. 구겨진 수첩과 종이. 둘을 번갈아 바라보는 시선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습니다. 평소라면 무시하고 수업에 돌아갔겠지만... 수업을 빼고 도서관에서 이 정체불명의 종이를 해석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요.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까요. 가끔 이런 날도 있는 법입니다.)
 
당신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깁니다.
 
이건 지루한 나날 속 한낱 심심풀이일 테니까요.
 
그럼에도 지독히 좋은 날씨에, 파란 하늘에, 누누부신 햇빛에
 
조금 울렁거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으며 웃었던가요.
 
구겨진 수첩에는 옅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도서실에 도착하면 [종교], [예술], [언어]가 적힌 책장들이 빼곡합니다.
 
기이한 충동입니다, 저곳에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을 거란 예감이 듭니다.
 
사서 선생님께선 보이지 않네요.
 
오광철:(생각해 보면 도서관에서 제대로 책을 읽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일단 예감을 따라 첫 번째, 종교 책장을 살펴봅니다.)
 
2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종교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해주세요.
 
오광철:
자료조사
기준치: 30/15/6
굴림: 45
판정결과: 실패
 
□□□에 관한 기억이 조금 더 흐려집니다.
 
수첩을 한 번 더 봐야겠어요.
 
오광철:(수첩과 쪽지를 다시 한번 살핍니다. 꽃... 이면 예술인가? 긴가민가하게 옆쪽 책장으로 이동합니다,,,)
 
6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예술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관찰 판정 해주세요.
 
오광철:
관찰력
기준치: 35/17/7
굴림: 96
판정결과: 대실패
 
 
:,..
자,자료조사 판정이었어요
 
오광철:(!!)
자료조사
기준치: 30/15/6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에 관한 기억이... ... ...
 
[언어] 쪽으로 가볼까요?
 
오광철:(이동합니다...)
 
700번대 책들로 다양한 언어에 관한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자료조사 판정!
 
오광철:
자료조사
기준치: 30/15/6
굴림: 25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그중 눈에 띄는 책을 발견합니다.
 
누군가 일부러 제대로 꽂아두지 않은 듯 한…
 
이정도면 보람찬 독서활동을 즐긴 것 같습니다.
 
슬슬 쪽지에 적혀있던 책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마침 800번대 [문학] 코너가 보입니다.
 
오광철:(840... 840... 분류 코드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살피며 나아갑니다.)
 
쪽지에 적힌 창구 번호, 840.01이12꽃.
 
그것은 <꽃갈피>란 제목의 얇은 영문 시집이었습니다.
 
꽃으로 책갈피를 만드는 방법과 짧은 시들이 실려있습니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꽃을 여러 번 말려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의 여름을 닮았습니다.
 
수없이 반복한 탓에, 심장에 꽂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마른 우리의 32번째 여름.
 
책에는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 □□□, □□□…
 
그래요, 백지혜.
 
외부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 거짓된 세계를 부술 수 있는 한 단어.
 
그러나 쉬이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거짓된 세계라고 하여도 한 사람만이 사라진 이곳은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굳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하나요?
 
우린 다시 우주 미아가 되고 말 텐데,
 
기약 없이 차원의 관문을 다시 넘나들어야 할까요?
 
당신에게 백지혜는 그럴 가치가,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오광철:(평소 느끼던 점이 하나 있다. 이 학교엔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 이상한 소문들로 인해 주변의 시선으로 자연스레 고립된 결과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학교생활을 이어가며 똑같은 날만 반복되는 지루한 곳은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던 거 같다.
여름은 싫지만, 수많은 여름을 건너간다는 점은 꽤나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게다가 자신을 기억하길 간절히 바랐다는 점은 아마... 우리가 꽤 친밀한 사이였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함께 우주를 계속 도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해도, 우주 미아가 되어 같이 죽게 된다고 해도. 이 지루한 나날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 백지혜, 들려? 이렇게 부르면 되는 거야?
 
당신은 이름을 불렀습니다.
 
남을 기억하고, 형상화할 수 있는 최고의 단어를.
 
그를 오롯이 기억하는 당신의 입으로.
 
거진된 여름을 부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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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모든 기억이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세계의 소리가 멈춥니다.
 
맴맴 울던 매미의 소리,
 
복도에서 재잘재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바람에 커튼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시간이 멈춘 듯 이곳은 고요해집니다.
 
기이한 침묵.
 
충분히 겁먹을 만한 상황인데도 되레 익숙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관찰력 판정.
 
오광철:
관찰력
기준치: 35/17/7
굴림: 2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깜빡이던 형광등이 꺼지고 맙니다.
 
정전일까요?
 
아니… 창밖을 봐요.
 
창밖으론 하늘, 땅이랄 것도 없이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새까만 밤과 반짝이는 은하수, 촘촘히 박힌 별들.
 
건물도 도로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짙고, 또 짙은 밤하늘이 전부입니다.
 
당신은 깨닫게 됩니다.
 
이 거짓된 세계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요.
 
모두가 사라지고 오로지 당신만이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아니, 혼자가 아니라…
 
백지혜:오광철!
 
운동장이었던 그 너른 공간 한가운데,
 
우주 위로 백지혜가 동동 떠 있습니다.
 
반짝이는 별들 사이 중력을 무시한 채 흩날리는 머리카락.
 
마치 그림의 한 폭 같습니다.
 
물론 감상이 이어지기도 전,
 
그는 당신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네요.
 
 
:듣기 판정 해주세요.
 
오광철:
듣기
기준치: 20/10/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웅웅거리는 그의 말이 정확히 들리지 않습니다.
 
쿠궁,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별가루들이 흩날립니다.
 
어라? 그러나 당황하던 것도 찰나.
 
정신을 차리면 100번, 600번, 800번.
 
책장들이 모두 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어요.
 
심지어… 도서실 전체-학교 전체가!
 
당연하죠, 이 세계를 부수는 단어는 당신이 읊었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마땅한 탈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잔해 속에 깔리는 건 아닌지….
 
다행히도 창문이 보이네요.
 
아니, 이게 다행인가요?
 
지금이 당신이 있는 층은 1, 2, 3…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어요.
 
백지혜:...제가! 받아드리겠습니다! 뛰어내리세요!!!
 
부서지는 학교, 창문 아래의 백지혜가 소리칩니다.
 
말이 쉽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요.
 
시간이 없습니다.
 
창틀을 딛고, 유일하게 부서지는 세계 속 당신을 바라보는 이에게 뛰어내려요,
 
응원하듯 거센 바람이 당신의 등 뒤에서부터 불어옵니다.
 
오광철:(바로 창틀 위로 올라간 뒤, 망설임 없이 힘껏 뛰어내립니다. 흩날리는 건물과 우주에 시선을 뺏길 법도 하건만, 끝까지 지혜를 바라보는 눈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창턱을 밟고 아래로, 다시 아래로.
 
별가루가 흩어지매 까만 우주는 눈이 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이어질 추락에도 눈을 감진 않습니다.
 
당신은 아주 천천히,
 
중력을 무시하고 아주 천천히.
 
바람 따라 나는 민들레 씨처럼 느릿하게 떨어집니다.
 
와락, 그런 당신을 백지혜는 쉽게 그러안아 잡습니다.
 
여전히 흐릿하지만,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점점 선명해지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탓에 꼭 물에 빠진 것만 같습니다.
 
이윽고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외부 세계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백지혜가 묻습니다.
 
백지혜:제 이름, 기억하십니까?
 
오광철:당연하지, 형.
 
당신의 답에, 백지혜의 얼굴이 되돌아옵니다.
 
백지혜:그럼 저희가 얼마나 사이 좋았는지도?
 
오광철:집에 찾아왔을 때 의심 없이 바로 열쇠를 줄 수 있을 정도?
 
반짝. 둘의 팔에 새겨진 주문진에 빛이 들어옵니다.
 
백지혜:이것도 잊지 않으셨겠죠, 같이 하던 게임의 다음층 공략법 말이예요. 그거 연습하느라 얼마나 시간을 썼는데…
 
이번 물음은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오광철:아... 그건 좀 까먹은 거 같아. 하지만 이제부터 다시 연습하면 되는 거 아냐? 같이 해줄 거지?
 
백지혜:물론이죠. 돌아가면 할 일이 아주 많겠습니다.
 
모든 별가루가 허공에 둥둥 뜬 채로 멈춥니다.
 
백지혜:그럼 마지막으로 물어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거죠?
 
오광철:응, 돌아가야지. 그런데 형과 함께라면 평생 우주를 떠돌아도 좋을 거 같기도 하고. (...) 계속 함께해 주기만 하면 어찌 되어도 좋아.
 
백지혜:(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큭큭 웃어대다가, 고갤 천천히 숙여 네 이마에 맞대곤, 조금 뒤 떨어진다.) 제정신으로 한 말이라니 놀라운데요. 물론, 저도 광철이 없는 곳이라면 아무데도 안 가겠지만요.
 
백지혜가 당신의 두 손을 잡습니다.
 
피부 위로 새겨진 별자리와 같은 무늬가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둘의 팔을 타고 이어져 반짝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푸른 빛이 스칩니다.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력이 배로 느껴지는 기분에 속이 울렁거립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일이었잖아요?
 
백지혜:(그대로 시선을 마주하다, 옅은 웃음을 지은 채로 나긋나긋 묻는다.) 제 편지는 모두 보셨습니까?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 나쁘지 않았을텐데요. 물론 저를 기억해 주셔서 더할나위 없이 기쁩니다만...
 
오광철:하지만 혼자 있는 건 재미없으니까. 형 없이 살았다면 머지않아서 학교 따위 다 때려치우고 떠났을 거 같아. 난 평화로운 게 체질이 아닌가?
 
백지혜:그거 큰일이군요. 전 되도록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은데. (장난스레 말하곤 눈웃음 짓는다.) 졸업하고 나면 같이 사업이라도 시작할까요?
 
오광철:형만 있으면 평화로운 삶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니 괜찮을 거 같기는 한데. (일부러 길게 고민하는 척 끌다가) 사업, 어떤 거?
 
백지혜:음... 저와 광철이 가장 잘 하는 걸로요. 평생 질릴 틈 없게 해드리겠습니다. 배분은 5:5. 인센티브도 드리죠.
 
오광철:나랑 형이 잘 하는 거라고 하면 위험한 사업만 생각나. 매일 둘이 도망치고, 다치고... 그래도 말한 대로 지루할 틈은 없을 거 같네. 인센티브는 필요 없으니까 주기적으로 나랑 놀러 가기. 이거 계약서에 적어줘.
 
백지혜:뭐... 지금도 매일 복도를 뛰어다니고, 위험한 일에 휘말렸으니까요. 부정할 순 없겠군요. (눈을 깜빡) 그건 굳이 계약서에 적지 않아도... 역시 확실한 게 좋긴 하겠죠? 볼드체로 작성하겠습니다.
 
부서져 가는 세계, 거짓된 세계, 꾸며진 여름.
 
우린 그것들을 두고 차원의 관문을 넘을 거예요.
 
어쩌면 다시 우주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가 환히 웃습니다.
 
마주 잡은 손이 웅웅, 진동하며 가볍게 떨립니다.
 
이번에는 어쩐지 감이 좋아요.
 
여름을 말려 심장에 꽂는 법.
 
수없이 반복한, 수없이 넘은 이 여름을.
 
백지혜:다음 세계에서도, 서로를 기억하도록 하죠.
 
강한 빛이 주문진에서 쏟아집니다.
 
우린 차원을 넘기 전, 집으로 돌아가길 빌며 속삭이곤 했죠.
 
이렇게, 우주 한가운데에서, 서로를 보며, 지금처럼.
 
셋,
 
ENDING1: 집으로, 함께.
백지혜 생환
오광철 생환
보상: 진행 중 감소한 이성 전체 회복, 우리가 살던 세계.
수고하셨습니다....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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