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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피날레는 석류와 도끼로

 

 

 
 
 
 
 
DATE 240521
 
 
 
 
 
 
서막으로는 다소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이보다 나은 묘사가 없어 보이듯 뻔한 소리를 내며 마차 바퀴가 굴러갑니다.
 
 
포장이 안 된 투박하고 거친 흙길 위를 말발굽이 찰 때마다 부스러기 돌이 이리저리 구르더니, 화려하게 장식된 마차의 바닥을 때리며 떨어집니다.
 
 
잘 기름칠된 마차는 험한 흙길에서도 끼익거리는 소리 한 번을 내지 않습니다.
 
 
간혹 들려오는 바람을 가르는 말채찍과 마부의 헛기침, 그리고 숨소리를 제외하면 너무도 조용하고 황량합니다.
 
 
…아,
 
 
안개와 구름이 촘촘하게 덧쌓여 있음에도 햇빛은 마치 노쇠한 기병처럼 실 가닥 같은 빛줄기를 더디게 내리쬡니다.
 
 
바닥으로, 마차로, 그리고 세이블, 당신이 탄 내부로도.
 
 
잠시 창문을 열어 밖을 살펴보는 순간, 새벽 동안 창가에 붙어있던 이슬이 흘러 손 위로 떨어집니다.
 
 
흘끗 눈을 돌려 본 바깥은 안개가 하얀 곰팡이가 음식에 내려앉듯 짙게 깔려서 왔던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날, 이런 인적 없는 산길을, 황실과 교류를 할 정도로 성장한 상단주인 당신이 찾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 사실 알고 있잖아요. 기디언 때문이란 사실을.
 
 
그가 가문 간 정략결혼을 이유로 일주일 전 저택을 떠나게 됨으로써, 당신이 팔자에도 없을 흙길을 달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혼식이 치러지는 마을까지 가는 나흘, 당신은 마차 안에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세이블:...이 마을에 금은보화라도 묻어둔 건가? (몇시간 째 말을 하지 않았던 입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온다. 말투나 그 높이, 물기 가득히 섭섭함을 담은 그 감정도 닿는 이 없이 그저 마차 안을 부유하다 픽 꺼질 뿐이다. 창 밖에 있던 시선을 제 손 끝으로, 다시 창 밖으로 옮기는 동안 두터운 커튼을 잡아 끌어내린다. 다시 어둠이 내려앉고서야 눈을 바로 뜨고 굳은 몸을 풀어 나간다. 무슨 생각을 했냐니, 사랑해 마지 않는 동생... 애정하는 나의 기디언. 그의 결혼식이니 기쁜 감정이 솓구침이 응당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모욕으로 가득찬 소란스러운 마음은 쉽사리 정리되지 않는다. 결혼 소식, 그러니까. 정략결혼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몇번이나 붙잡고 되돌릴 계획을 세웠었지. 그 중 단 하나도 실행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손익만 따지고 장사해 먹는 자식이라도 제 삶을 밑바닥에서 건져내준 은혜로운 분들의 대소사에 어찌 물을 끼얹겠는가. 그러니까 웃음이 나오지 않는 건 긴 시간 홀로 창밖이나 보아 외로웠기 때문이고, 온갖 불온이 쏟아지는 마음은 나흘이나 걸린 긴 여정에 피로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들이 떴다 가라앉고 가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체감이 되지 않습니다.
 
 
낮이 저녁으로 변하였는지, 밤이 아침이 되었는지, 혹은 그 반대였는지….
 
 
그때가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좀 더 자세하게 물어보았다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인사를 나누고, 일을 하다가, 평소처럼 식사하고… 아니, 그날도 이렇게 안개가 꼈던가.
 
 
결혼이란 좋은 소식을 듣는 날이라기엔 그다지 좋지 못한 하늘의 색과 눅눅한 습기가 바닥을 채웠습니다.
 
 
기디언 헤르모드. 갈 곳 없던 어린 시절의 당신을 받아 키워준 헤르모드 후작가의 적자이자 당신이 동생처럼 돌보고 같이 성장해온 그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에 당신을 찾아와 통보했습니다.
 
 
기디언:마차로 3일은 꼬박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래. 상대 쪽 가문이 폐쇄적인 집안이라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거라고 했어. ... 나 이제 형과 만날 수 없는 걸까? 싫은데.
 
 
세이블:... (두 잔에 나눠 따르려던 물이 한 잔에만 가득, 넘쳐 흘러 질질질 새고 있다.) 상당히 갑작스러운... 비보. (입 밖으로 내고서야 단어 선정이 옳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손이 입을 막으러 간 덕분에 카펫이 젖어 드는 걸 멈출 수 있었다.) ...농담같은 건 아니죠?
 
 
기디언:비보 맞지 뭐. (자연스럽게 가득 찬 물을 빈 잔에 적당히 따라 버린 후 가져간다. 잔에 시선을 뒀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얼굴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쉬며 먼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응. 가기 싫다고 우겼는데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혼처래. (몇 번 마른 기침을 반복하다 들고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안 좋은 일은 겹쳐 온다고 요새 몸도 좀 안 좋고. 차라리 확 크게 아파서 결혼하러 갔다가 건강 문제로 파혼되면 좋겠다. (반쯤 진심.)
 
 
세이블:(주변을 잠깐 살피다 한숨을 내쉰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던 혼처라니. 난 전혀 들어본 적 없는데. 반응을 보니 그건 기디언 역시 마찬가지인 거 같지만. 아니, 그래도 난 꽤 신임받고 있었으니 살짝 알려줄 법 하지 않았나?? 어릴 때부터 그의 인맥이나 작은 결정들, 사소한 문제도 해결해 준 게 바로 난데! 몰랐다가 어디 참한 영애랑 손이라도 잡게 했음 어쩌려고. 물론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반 채워진 남은 잔을 가져가 물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생각하던 게, 연달아 들린 기침 소리에 끝맺힌다.) 괜찮으십니까? 요즘 날씨가 영 좋지 못 했으니, 건강이 나빠지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닙니다만, 늘 건강하던 기디언이 그러니 걱정되네요. (옅은 웃음을 짓곤 주변에 있던 숄을 들고 와 어깨를 둘러 감싼다. 잠깐 가까이서 시선을 마주한 후 떨어진다.) ...다시 못 만나게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아무리 폐쇄적인 가문이라도 문을 달려있을 거 아닙니까. 기디언이 못 나오면 제가 들어가면 되지요. (눈 맞춰 사근히 웃었으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 아, 왜 축축한 하늘에 벼락까지 떨어진단 말이냐.)
 
 
기디언:(한 번 시작하니 멈추지 않는 기침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멎는다. 이렇게 아파본 적은 처음인데 진짜 파혼당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과 동시에 마지막일 수도 있는 만남에 소중한 형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투정 부리는 가벼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안 괜찮아. 숨쉬기도 힘들고,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이거 다 형이 상단 운영한다고 안 놀아줘서 그래. (어깨 위에 덮어진 숄을 제대로 정리한 뒤 잠시 생각에 빠진다.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한 부분이 생각나서...) 그런데, 아무리 폐쇄적인 곳이라고 해도 이 나이 되도록 초상화 한 점 보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나. 나 태어날 때 아버지가 사고 쳐서 문제 있는 사람에게 팔려가는 거 아냐? 여태 말도 없다가 갑자기 서둘러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따라 웃었지만 표정엔 여전한 불안감이 서려있다.) ...말대로 문은 있을 테니까. 형이 꼭 일주일에 한 번씩 와줘야 한다? 약속해줘.
 
 
세이블:(숨쉬기도 힘들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거면... 감기? 목이 부었나? 따뜻한 물을 내줘서 다행이었다. 후작가 사람들은 애가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했단 말인가. 결혼 준비에 바빠선 정작 그 주인공을 못 챙겼다니... 기디언은 장난처럼, 기분 좀 풀려고 한 말이었겠으나 아무래도 제가 상단 일 탓에 그 곁에 있어 주지 못 했던 탓 같았다. 확실히 내가 붙어있었다면 이렇게 아플 일도, 영문도 모르고 팔려 가듯 결혼하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 달이라도 더 일찍 소식을 알았다면, 적어도 그 상대의 초상화 한 점 구해봤을 텐데.) 일주일에 한 번이면 오고 가는 데에 6일 걸릴 테니, 차라리 제가 그곳에 땅이라도 사는 게 낫겠습니다. (농담같아도 사뭇 진지했다. 상단이야 맡겨둘 사람 하나 정돈 있겠지만, 기디언은 맡길 사람이 없으니까!)
 
네, 약속할게요. 기디언이 거기서도 저와 만나게 될 거라는 것. (먹먹한 심정에 손을 잡아 이끈다. 그러길 잠시, 뒤늦게 말을 잇는다.) 그런데, 상대는 누굽니까? 이름은 들으셨나요?
 
 
기디언:아, 그렇네. 오고 가는 데 6일이었지. 그럼 땅 사기 전까진 한 달에 한 번으로 참아줄게. 그 근처에 땅을 사면 형도 그쪽에서 혼처를 알아보게 되려나. 그럼 내가 주례를 서야지. 먼저 가서 형에게 소개할 좋은 사람을 찾아봐도 되겠다. 상단의 분점을 세우면 지역 경제에도... (이후로도 쭉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다리를 까딱거린다. 요약하자면 결혼한 뒤에도 나랑 쭉 같이 있어줘.가 되겠다.)
 
약속 안 지키면 저주할 거야. 형이 잡는 사업마다 다 망하라고 밤새 기도할 거니까 지켜야 해...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놓지 않겠다는 듯 깍지를 끼고 나서야 만족하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여전히 불안감은 남아있지만 만나러 와준다는 말 한마디에 전부 놓이는 기분이다.) 몰라. 이름도, 사는 지역 명도, 심지어 나이나 성별도. 결혼 소식을 들은 뒤 저택에 사용인이 찾아오는 걸 보면 실존하는 사람이긴 할 텐데... 나머진 아무것도 안 알려줬어.
 
 
세이블:음? 제 나이에 혼처를 알아보는 건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눈을 두 번 깜빡인다. 주례를 선다는 것도, 소개할 좋은 사람을 찾아본다는 것도 참 당돌하고 순진하고... 긍정적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예전부터 낙관적인 태도는 변하질 않는구나. 그 말을 가만히 들으며 고개 끄덕인다. 그래, 결혼 한 번 하는 요즘 시대에 큰일도 아니지. 특히 가문 간의 사랑 따위 없는 무미건조한 것 따위 한 번 끊겨도... 중요한 건 끝까지 그의 곁에 남는 것이다.)
 
그런 저주라니 무섭습니다. 기디언이 하는 기도는 효과가 좋을 것 같아서 더욱. 사업 한두 개 말아먹으면 탓하러 갈 거니까 문 열어두세요. (맞잡은 손에 힘을 주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버릇 같은 윙크를 하고, 안도한 듯 편안한 표정을 보고야 작은 숨을 내쉰다. 기디언의 결혼으로 제 기분이 어떻든... 제일 걱정되는 건 본인이겠지. 이름도, 지역도 나이나 성별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는 게. 앞으로의 남은 평생을 함께하게 된다는 게.................... 새삼 입 끝이 뒤틀린다.) 비밀이 많은 상대로군요...
 
 
기디언:조금 늦기는 했지만 못할 건 없지... 상인 중에서 찾으라면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거고. 아, 귀족 중에서 찾으려면 재혼이 대부분이긴 하겠다. (길게 고민한다. 금전적인 부분은 나나 형이 책임질 수 있으니 어떤 사람이 형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우선적으로. 작위를 사 남작이 되었다지만 세이블이 평범한 귀족처럼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이어가진 않았으면 좋겠어서...)
 
기도가 통하면 탓하는 게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 와달라고 빌어야 하는 거 아냐? 싫어하는 사람에게 저주의 기도를 내려주는 사업. 수요 좋을 거 같은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비밀 이야기를 하듯 귓가에 속삭인다.) 저주 걸면 찾아와 달라는 신호니까 진짜로 와야 해. 날 사업 파트너로 삼겠다며 당당하게 배우자 앞에서 납치해 도망 쳐줘. 할 수 있지?
 
 
대화가 얼추 정리되자, 집안사람들이 찾아와 연행하듯 기디언을 데리고 일어섭니다.
 
 
끌려가는 와중 마지막으로 세이블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사용인들의 손에 막힙니다.
 
 
그렇게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마지막이 될 줄 알랐을 리가 있나요.
 
 
연락을 취하려고 해도 집안 사람들은 한 번도 저택 밖으로 기디언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편지를 보내면 태워버리고, 사람을 보내도 돌려보내더군요.
 
 
며칠을 내내 수소문한 끝에 겨우 기디언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곳이 미저르 힐이라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세이블: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80
판정결과: 실패
 
 
그런 마을이 있었던가… 처음 들어보는 지명입니다. 말대로 먼 곳이긴 한가 봅니다.
 
 
다만 마부에게 목적지를 묻는 순간, 그의 표정에 퍼지던 의문이 조금 걸리네요.
 
 
듣기론 전염병이 창궐했다느니, 악마가 나타나 마을이 화마에 휩싸였다느니,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아 마을 사람 모두가 흙으로 돌아갔다느니... 온갖 괴문이 도는 마을이라는 모양입니다.
 
 
 
 
덜컹거리는 마차가 서서히 멈춥니다.
 
 
마부가 문을 열어주면, 낡은 표지판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글자가 대부분 떨어져 있지만 직감합니다. 바로 이곳이라고.
 
 
이곳은…… ‘미저르 힐’이라 추정되는 이곳은 분명 마을일 텐데, 어째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까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나, 축사 짐승의 울음, 혹은 사람의 발소리라도 들려야 정상인데. 이 마을은 정말,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마을이라면 당연히 인기척이 느껴져야 정상이 아닌가요?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없는 곳에서, 결혼식이 열린다고요? 정말로?
 
 
짙게 깔린 안개를 손으로 휘저으며 주변을 겨우 둘러본다면. 그나마 사람들이 몇 보입니다. 대략 세 명 정도?
 
 
그들은 모두 너덜너덜한 갈색 천을 대충 기워 입고 있으며, 그마저도 이곳저곳이 헤져 구멍이 나 있습니다.
 
 
어디에서 구르기라도 했는지 손끝과 발끝엔 흙 때가 껴 더럽고, 하나같이 무너져 가는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있거나, 주변을 배회하는 등, 마을에 사는 주민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말을… 걸어야 할까요?
 
 
세이블:... (주변을 다시 잘 살펴봐도...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겠지. 혹시 이 마을이 아닌 건 아닐까. 아까 보니까 표지판도 다 낡아 못 알아보겠던데. 아무튼, 미래의 사업을 위해서든... 사실 확인을 위해서든, 말은 걸어보는 게 좋겠지.) 저, 실례합니다.
 
 
무슨 말을 물어도 입술을 앙다문 채, 핏발 선 눈으로 바라봅니다. 눈앞의 사람은 세이블의 머리부터 발끝, 소매와 신코, 피부나 옷의 단추를 샅샅이 훑더니 말합니다.
 
 
 
사람: 자네... 옷이 그게, 다인가?
 
 
세이블:예? (뭘까, 이 불안함이 뚝뚝 묻어나는 물음은.) ...그런데요?
 
 
 
사람: 그래, 그게 다란 말이지... 썩 꺼지게. 오, 오늘 같은 날에 외부인을 들일 순 없지.
 
 
이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세이블:앗...
 
(오늘 같은 날이란 건... 역시 결혼식인가. 결혼식 날에 그런 옷을 입은 당신들이 할 말이야? 같은 생각을 하며 멍하니 서있다...)
 
외부인이라니요! 저, 헤르모드 가 사람입니다. 옷은... 급하게 와서! 깜빡한 게 있는 모양입니다. 오늘 있을 식에 아주 중요한 물건을 가져오라 하셨거든...요?
 
 
 
사람: 헤르모드? 아아, 신랑 쪽 말인가. 며, 며칠 전에. 이곳에 화려한 마차가 지나가긴 했지. 후, 하하... 잘 찾아왔소. 내려야 할 장소는 틀렸지만 말야. 그보다 그 눈... 꽤 불편했겠군 그래. 안심하게. 곧 모든 게 괜찮아질 테니....
 
 
사람들은 말을 마친 뒤 하나둘 일어나 숲으로 향합니다.
 
 
자욱한 안개 너머로 인영이 사라져가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이곳의 건물들은 관리가 안 되어 벽이 삭아 무너지고 있으므로 지표로 삼을 기둥조차 없는데. 이 곰팡이처럼 자욱한 안개 속에서 대체 어떻게 저리 척척 발을 내딛는지...
 
 
 
: 추적 판정을 통해 따라가볼 수 있습니다.
 
 
세이블:
추적
기준치: 10/5/2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재빠르게 뒤따라가도 눈을 깜빡인 그 순간. 그림자는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이 안개는 그칠 생각이 없는지, 발자국마저 당신의 것을 제외하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이블:...확실히 내릴 곳을 잘못 찾은 거 같긴 한데. (제 안대를 매만진다. 그간 좀 불편하긴 했지. 이걸로 지레 겁먹던 사람도 있었고, 아무튼 보기 좋을 건 아니니까... 고개를 세차게 흔들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럼 어디서 내려야 했단 거람...)
 
 
되돌아가기 위해 발을 옮기는 순간, 바닥에 흙이 아닌 다른 질감이 밟힙니다. 단단하고, 납작한 무언가가.
 
 
땅에 움푹 박혀있는 사각형 모양의 석판입니다.
 
 
세이블:(조심히 더듬어 석판을 살펴봅니다.)
 
 
살펴보니 석판엔 투박한 글씨로 무언가 적혀 있습니다.
 
 
세이블:(지표같은 건가? 이렇게 걸음을 옮기면 숨겨진 길이 나온다거나.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서 척척 거음을 옮기던 거 보면 아예 없을 일도 아닌 거 같긴 하다.) ... (근데 어디가 북쪽이야?)
 
 
이쪽이 시작이라는 듯 석판 위쪽에 작은 화살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세이블:(그럼 화살표를 따라 북쪽으로 다섯 걸음, 서쪽으로 세 걸음 북쪽으로 세 걸음... 아무튼 써져있는대로 걸어봅니다.)
 
 
하나, 둘, 셋. 또 몇 번을 걸었을까요.
 
 
어쩐지 어릴 적 함께 했던 놀이를 따라 하는 기분이 들 무렵, 먼지가 바람에 날아가듯 시야가 트입니다.
 
 
눈앞엔 안개 속에 가려졌던 우거진 수풀이 보입니다.
 
 
나무가 어찌나 빽빽하게 자랐는지, 서로의 몸통을 비벼가며 죽죽 뻗은 숲은 빛 한 점 들지 않아 해가 뜬 시간임에도 너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양옆을 둘러보아도 마치 울타리를 끝없이 뻗은 양, 일렬로 한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만이 사각거리는 풀잎 소리를 날라줄 뿐.
 
 
… 이상한 일입니다.
 
 
안개가 아무리 짙더라도 이만한 숲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을 텐데, 지금은 당신의 시야에 아주 잘 들어옵니다.
 
 
의문을 품고 어리둥절한 사이, 풀이 그득히 자란 바닥으로 자연히 눈길이 갑니다.
 
 
시선이 움직인 이유가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일지. 검기까지 한 진녹색 풀숲과 전혀 맞지 않는 하얀빛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련된 무늬가 수놓인 백색의 신발. 한눈에 보아도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에만 신을 법한 비싸 보이는 신발은 켤레가 아닌 한 짝만 놓여있고, 그 주변의 풀들은 전부 한 방향으로 꺾여 쏠려 있습니다.
 
 
세이블:(아까까지 안개로 한 치 앞이 안 보였는데, 갑자기 숲이 나타나다니, 그것도 이렇게 울창한... 그런 의문은 깊게 가지 못했다. 제 눈에 하얀 신발이 띄어서. 이곳에 헤르모드 가문 결혼식이 열린다는 건... 확싱해도 될 것이다.. 영 믿음 안 가는 사람의 말이었지만. 그러니 이 신발은 기디언의 것인가? 왜 한 짝만 덩그러니 있는 걸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신을 주워 들고 잔디가 꺾인 방향으로 걸어가며 살펴본다.)
 
 
그러고 보면 몇 번 신발을 신겨준 적도 있었죠. 무서울 정도로 손에 익숙한 크기입니다. 기디언의 신발이 확실해 보여요.
 
 
이어 잔디가 꺾인 방향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파삭거리며 무언가가 밟혀 무참히 부서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곳을 빠르게 내려다봅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곳 여기저기에 누렇게 변색하여 탁한 빛을 띠는… 기다란 다리뼈가 당신의 발에 밟혀 조각났음을 알아차립니다.
 
 
세이블: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 다리뼈를 자세히 관찰하려면 추가 의료 판정이 가능합니다.
 
 
세이블:
의료
기준치: 1/0/0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헉........................................(개껌같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주인을 아는 물건, 그리고 나타난 기다란 다리뼈. 한순간 누군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을 지도 모릅니다.
 
 
뼈를 다시 살피면… 색이 변한 지 꽤 오래된 뼈입니다. 게다가 파삭거리며 부서질 뼈라면 꽤 오랜 시간을 삭았을 것이란 것도… 적어도 최근에 놓인 뼈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나 안심도 잠시. 시야로 ‘다른 것’이 굴러들어 옵니다.
 
 
이번에야말로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똑같이 시간을 머금고 삭아가는 인간의 두개골들이 바닥을 구릅니다.
 
 
세이블:... ... ...(아무리 아는 사람의 뼈가 아니더라도... 얼굴이 사색이 되어 뒷걸음 한다.)
 
 
세이블: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정신을 겨우 다잡고 긴장한 숨을 뱉습니다. 지금 상황을 농담으로라도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네요.
 
 
기디언은 이 숲 너머로 향했다고…
 

 

 
 
 
발치에서 풀들이 스산하게 섞이는 소리가 납니다.
 
 
지금 시간은 못 해도 아침에서 점심 사이일 텐데, 나무들이 워낙 우거진 탓에 빛이 없어서 저녁으로 느껴집니다.
 
 
숲의 이곳저곳엔 기하학적인 형태로 꼬여있는 풀이나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식물의 몸이 서로 배배 꼬여 자연히 엉긴 건지,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방향을 꺾어 엮은 건지, 부자연스러운 모습은 어쩔 수 없는 불쾌함을 자아냅니다.
 
 
하물며 이따금 발에 채는 돌멩이 하나조차 검붉은색의 이상한 글자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빛이 없어 한층 더 피처럼 거뭇해 보이는 글자를 보노라면, 이것이 정말 글자가 맞는지도 자신할 수 없게 됩니다.
 
 
 
세이블:
오컬트
기준치: 5/2/1
굴림: 31
판정결과: 실패
 
 
의미를 알 수 없다 해도 불쾌감이 가시는 건 아닙니다. 기분 한편에 내려앉은 찝찝함은 닦이지 않은 얼룩이 되어 남았습니다.
 
 
부스러기처럼 가라앉은 불쾌함이 언제 또 불안과 공포가 되어 머리를 드밀지 몰라 속이 메스꺼워지려는 찰나. 탐사자의 코끝에 썩은 내가 들러붙습니다.
 
 
숲의 초입에 흩뿌려져 널린 뼈부터가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바로 옆, 세이블의 안면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파리 떼의 날갯짓은 이제 시작이라는 양 비위를 거스릅니다.
 
 
벌레 소리를 따라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면, 정말로 가까운 곳에 불쑥 솟아있는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속 알맹이가 긁힌 동물의 사체가 아무렇게나 바닥을 돌아다니고, 흙을 잔뜩 머금은 채 축 늘어져 있습니다.
 
 
 
: 사체를 자세히 살펴보길 원한다면 관찰력 판정이 가능합니다.
 
 
세이블:... (봐야...할까...? ..........................기디언은 아무래도 알 수 없는 부족의 제물이 되어버린 거 같다. ...무슨 상황인지 확인하려면, 하나라도 더 아는 게 좋긴 하겠지...)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음… 그래요. 자세히 보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리들은 부패해 가는 시신으로 다가와 새로운 생명을 낳고, 그들의 배양지에선 구더기들이 탄생의 춤을 추고 있습니다.
 
 
빨리 걸음을 옮기는 게 좋겠어요.
 
 
 
 
저주스럽다는 말이 딱 떠오르는 숲을 걸은 지 벌써 몇 분이 지났는지. 혹여나 방향감각을 잃을까 봐 앞만 똑바로 보며 걸어가던 세이블의 눈앞에 마침내 빛이 환하게 들어찹니다.
 
 
…믿겨 지나요, 침입자를 허락지 않겠다는 듯 위용을 뿜던 성벽 같은 숲을 지나니, 정말로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는 게 말이에요.
 
 
그러나 발걸음을 옮겨 마을로 들어가기엔 기묘한 위화감이 당신의 발목을 부여잡습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걸로 추정되는 곳은 흙과 나무, 짚을 섞고 기둥을 세운 일반적인 건축물로 보입니다.
 
 
저 멀리 울타리가 널따랗게 펼쳐진 곳도 눈에 들어옵니다. 돼지, 소, 닭, 토끼 등 쉬이 볼 수 있는 가축이 ‘축사’처럼 생긴 곳에 모여 길러지고 있네요.
 
 
정말 멋모르고 이 숲에 ‘우연히’ 찾아와 ‘우연히’ 마을로 들어갔다면,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땅이라 여겼을지도 모를 만큼. 생활감이 물씬 풍기는 곳입니다.
 
 
조금 더 살피면 머지않아 위화감의 정체를 눈치챕니다. 마을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은 저마다 비슷하게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아무 준비 없이 무심코 돌아다닌다면, 이질감이 눈에 띄어 무슨 변을 당하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 지금부터 자유 조사 파트입니다. 출발하기 전 주위를 좀 더 살펴보길 원한다면 관찰력 판정이 가능합니다.
 
 
세이블: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 만난 사람도 옷에 대한 얘기를 했었지. 외부와 단절이 심한 마을, 수상한 사람들... 알게 모르게 죽기 딱 좋군. 저 시체 더미 처럼 말이야. ...내키진 않지만... 사람을 마주치기 전에 저쪽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죽은 지 며칠 안 된 시체부터 부패가 심각하게 진행되어 누런 뼈가 보이는 시체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몸이었던 ‘것’이 쌓여 있습니다.
 
 
세이블: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1
 
 
… 시체들 사이엔 사람뿐 아니라 소, 돼지, 양, 토끼 등 짐승의 시체도 드문드문 보입니다.
 
 
시체는 이 마을 주민들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뿐 아니라, 탐사자와 같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옷을 입은 사람들도 보입니다.
 
 
세이블:윽... (....왜 시체를 묻지 않고 이렇게 한 곳에 탑마냥 쌓아뒀단 말인가. ...정말 내키지 않지만, 저들 중 하나가 되긴 싫으니까. 그나마 멀쩡한 마을사람들의 옷을 입을 시체를 찾아봅니다.)
 
 
세이블: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최근 죽은 듯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시체 한 구를 발견합니다.
 
 
그 옆으로는 마을에서 본 실종 전단에 있던 얼굴도 몇몇 보입니다.
 
 
제발 가족을 찾아달라, 보상이라면 얼마든지 하겠다며 상단을 찾아오던 이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 추가로 지능 판정이 가능합니다.
 
 
세이블: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1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실종된 시체들의 옷가지가 대부분 평민이나 빈민의 복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간혹 비단옷을 걸친 시체도 있긴 하지만, 그 수가 다른 시체들에 비하면 적습니다. 매우 현저하게.
 
 
빈민 옷을 걸친 시체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사라져도 알아차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세이블:(결혼식 참석하려다 집단 범죄 마을을 발각한 것 같다. 게다가 상당히 악질인. 어쨌든 지금 할 수 있는 건 저 옷을 뺏어 입는 것 밖에 없다. 어쩌다 죽었는진 몰라도... 이 마을 사람이면 한 패 아니겠어. 명복 빌 시간도 없으니 빠르게 걸쳐봅니다.)
 
 
다행히 옷은 몸에 딱 맞습니다. 다른 시체에게서 나온 진물인지, 아니면 다른 체액인지 모를 액체가 조금 스며들어 허리 부북이 축축하나, 멀리서 보면 크게 티 나진 않습니다.
 
 
세이블:(조금 오래된 추억이긴 해도, 이런 더러운 거 걸치는 게 한두 번도 아니지 않았나. 가볍게 숨을 들이쉬려다 위치가 좋지 못 함을 깨닫고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앞에 축사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지나가던 걸로 하자.)
 
 
옷을 걸친 후 축사로 이동합니다.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다니기도 하고, 저 멀리 빨래터엔 빨랫감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휘날리고 있습니다. 또, 그 옆을 보면…
 
 
방금까지 있던 시체 더미 말고도 마을 한구석에 사람이 한 뭉텅이로 쌓여 있습니다. 힘이 풀렸는지 저마다 입을 쩍 벌리고, 파리한 낯을 띄운 채 탁한 백색 눈동자를 초점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체 더미 사이로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장신구가 반짝입니다. 귀족가 자제나 쓸 법한 남성용 타이 핀이요.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옆에서 평범하게 대화하고, 걷고, 심지어 아이들은 놀기까지 합니다.
 
 
노는 아이들의 손엔 화려하게 장식된 브로치가 들려 있습니다. 저것은 분명 3년 전, 당신이 기디언의 생일 선물로 준 것이죠.
 
 
이를 배경으로 노인의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려옵니다.
 
 
세이블:
SAN Roll
기준치: 49/24/9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2
 
 
축사에 도착합니다. 닭, 양, 염소, 돼지, 소와 말 등이 모여 있는 축사입니다. 울타리를 기준으로 땅을 나누어 기르고 있습니다. 짐승 특유의 비린내가 지독하게 나고 있으며 건초가 사람 키만큼 쌓여 있습니다.
 
 
축사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마을 주민 한 명이 불러 세우더니 말을 겁니다.
 
 
 
마을 주민: 친구! 축사 일 도와주러 온 건가? 닭 모이 정도는 줄 수 있지?
 
 
세이블:(지금 한가하게 닭 모이 줄 정신도, 시간도 없지만... 부자연스럽게 굴다간 저 시체더미다.) 그럼요. 제가 하겠습니다!
 
 
 
마을 주민: 어우 젊은 청년이 싹싹하기까지 하고 얼마나 좋아. 우리 아들도 좀 본받으면 좋을 텐데! (환하게 웃으며 등을 팡팡 친다.) 경사스러운 날이니 정성스레 줘. 얘들도 오늘이 어차피 마지막일 텐데~ 가는 길 기분이라도 좋게 뿌려줘야지.
 
 
세이블:(오늘이 어차피 마지막........ 등을 팡팡 치는 손길에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웃음 짓는다.) 예에... ...그런데, 제가 너무! 바빴었어서... 그거, 언제 시작하죠...?
 
 
 
마을 주민: 결혼식 말이야? 어쩐지 얼굴이 낯설더니 신입인 모양이네. 딱 좋을 때 왔어 청년! 결혼은 3시니까 어디 보자... (허리를 펴 하늘을 바라본다. 머리 위에 떠있는 태양으로 보아 12시~1시 쯤?) 지금 해 떠있는 거 보면 한참 남았겠네.
 
 
세이블:(이 마을엔 신입도 들어오나? 하긴, 그렇게 넓어보이진 않는데 사람을 막 죽이고 그러면... 어디서 유입도 있긴 해야겠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마을이길래 그 흔한 시계도 없으며, 아이들마저 시체를 거리김없이 대한단 것인가...)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하며 닭 모이 주러 갑니다...)
 
 
 
마을 주민: 방금까진 싹싹하던 청년이 왜 갑자기 말이 없어졌대? 다 줬으면 나중에 시간 될 때 목공소에 한 번 들러줘. 남편이 필요한 게 있다고 했던 거 같거든!
 
 
세이블:(이 마을 사람들은 남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써먹는단 말이야? 의문 가득한 머리와 달리 얼굴 위론 한껏 유하고 둥글게 웃음 만든다.) 조금 긴장되어서요! 목공소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마을 주민은 말을 마치고 닭 모이 주는 데에 집중합니다. 다시금 축사를 둘러보면 축사 옆으로 나무로 된 작은 농막이 보입니다.
 
 
세이블:(정성껏! 열심히 닭모이를 주다가... 틈을 타 작은 농막 쪽으로 가 살펴봅니다.)
 
 
농막은 잠금쇠가 걸려있지 않습니다. 삐걱거리는 판자문을 열고 농막 안으로 들어가면 곡괭이와 삽, 쇠스랑 같은 온갖 농기구가 벽에 걸려있습니다. 구석에는 나무 상자도 여럿 쌓여 있네요.
 
 
세이블:(농기구 부터 살펴봅니다. 시체 만드는 일에 썼던 건... 아니겠지.)
 
 
농기구 주변엔 도축용 칼을 포함하여 조각칼, 단도, 농기구 등 여러 자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도축용 칼은 어찌나 날을 잘 갈아냈는지 작은 빛에도 서슬 퍼렇게 번쩍입니다.
 
 
세이블:(손을 댈 일이 안 생기면 좋겠군. 이어 나무상자를 살펴봅니다.)
 
 
안을 확인하면 양초가 차곡차곡 들어 있습니다. 농막에 왜 양초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건지…
 
 
상자 주변엔 부싯돌 몇 개도 같이 놓여 있습니다.
 
 
세이블:(물어본들 좋은 일은 안 생길 것 같다.)
 
(축사를 더 살펴봤자 나올 건 없겠지. 목공소라고 했던가. 이런 마을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전부 살펴보긴 해야할 것 같으니까. 목공소로 갑니다.)
 
 
목공소에 도착합니다. 숲에서 베어낸 나무토막이 산처럼 쌓여 있으며 도끼와 톱을 비롯한 자재가 벽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주민 한 명이 그루터기에 앉아 칼을 만지작거리며 손안에서 무언가를 다듬고 있습니다.
 
 
세이블:저어, 실례합니다! (기웃거리며 손안을 슬쩍 확인한다.) 도울 일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목공소의 주민: 못 보던 얼굴인데. 누구의 소개를 받고 왔지?
 
 
그가 쥐고 있던 건 ‘작은 돌’입니다. 단도로 돌 하나하나를 파내었는지 여기저기 흠집이 나 있지만, 소름 돋을 정도로 정교한 무늬가 나 있습니다.
 
 
세이블:아, '신입'이라서요. 저기, 축사에 계신 분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남편분께서 필요한 게 있다던데요!
 
 
 
목공소의 주민: 아 신입인가? 운이 좋구먼 자네도. 어리바리해 보이는데, 다들 바쁘니 예식장 주변엔 얼씬거리다 찍히거나 말고. 그보다 오자마자 다시 보내게 돼서 미안하네만 하는 일이 없으면 내 심부름이나 하세.
 
돌을 조각해야 하는데, 마땅한 도구가 없거든. 여긴 도끼랑 톱만 있어. 단도로 하루 종일 파고 있으려니 눈 빠질 지경이라고. 쓸만한 칼을 찾으면 좀 가져와 주게나.
 
 
세이블:에이, 어리바리해 보이긴요! 저 어디가서 일 못 한다는 소리 안 듣습니다. 다 믿음이 가니까! 남편되시는 분 일에 보낸 거 아니겠습니까? (활짝!) 결혼식 일도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참, 아쉽군요... 아무튼, 칼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무늬를 조각하시는 건가요? 알면 더 적당한 칼을 찾아드릴 수 있겠다 싶어서 말이죠...
 
 
 
목공소의 주민: 이 시기에 하는 일이야 뻔하지. 결혼식 준비 말고 더 있겠나? 내 심부름이 곧 결혼식 준비일세. 아무리 신입이라고 해도 이 정도 기본은 알아야지. 이래선 어디 가서 주례사 님에게 고개도 들지 못하겠군... (쯧!)
 
 
세이블:아앗, 네에... (어리바리해졌네. 여전히 웃는 낯 유지하며 뒷목을 문지른다.) 실례했습니다. 그럼 칼, 빠르게 찾아올 테니 조금 기다려 주세요! (하고 뒤돌아 빠져나온다...)
 
(칼이라면 아까 본 축사에 아주 잘 갈린 걸 본 기억이 있는데. 축사로 돌아가기 전 중앙의 우뚝 선 나무 상자를 흘긋 확인해 본다.)
 
 
나무 상자로 향하는 길, 지나가는 사람이 붙잡아 말을 겁니다.
 
 
 
주민: 못 보던 얼굴인데...
 
 
세이블:신입이에요.
 
 
 
주민: 결혼식을 앞두고 새 하객을 받는다고? 굳이...
 
 
 
: 대인 기능 어려움 이상 성공으로 의심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화이팅!
 
 
세이블:
말재주
기준치: 65/32/13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멀리서 귀한 분이 신랑측으로 걸음하셨는데, 그 은혜 여럿 받아볼 수도 있는 거죠~
 
 
 
주민: 그런가... 너 지켜볼 거야. 이상한 짓 하기만 해봐!
 
 
주민은 천천히 멀어집니다...
 
 
나무 상자를 살펴봅니다. 합판과 못, 누더기 천을 엮어 만들어진 상자입니다. 성인 한두 명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며 밖에서 잠글 수 있는 걸쇠가 튀어나와 있습니다. 자물쇠도 함께요.
 
 
세이블:(마을 한 가운데 이런 게... 무슨 용도인지 몰라도, 좋지 않은 예감이 스친다. 오늘이 결혼식이라면서, 결혼식을 상징하는 하얀 천이라던가, 화사한 꽃다발이나 달콤한 음식. 샴페인도 보이질 않으니... 분명 내 상식의 결혼은 아니겠다 싶었다. 나무 상자 안을 좀 더 잣[히 살펴 볼 수 있나요?)
 
(자세히...)
 
 
나무 상자를 자세히 살피려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주민: 뭐 하고 있는 거지? 감옥에 볼 일이라도 있는 거냐?
 
 
세이블:(감옥?) 엇, 아뇨?
 
(이렇게 된 거 좀 띨띨해 보이는 게 의심사는 것 보다 낫겠군....) 칼이 없나 해서?
 
 
 
주민: 볼 일도 없는 녀석이 왜 여기서 어슬렁거리지. 감옥에 칼이 있을 리가 없다는 건 백치가 와도 알겠다.
 
 
 
: 대인기능 어려움 이상 성공하면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세이블:
말재주
기준치: 65/32/13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하,,,,,,,,,,,) 길 가다 흘렸을 수도? 있잖습니까?
 
 
 
주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주민은 여전히 의심하는 눈치입니다. 한 명이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행동을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세이블:(시체 더미 쪽을 흘긋이곤 다시 축사로 갑니다.)
 
 
축사 외부는 닭이 아닌 소들에게 여물을 주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방금과 동일합니다. 작은 농막은 여전히 문이 열려 있습니다.
 
 
세이블:(작은 농막으로 가서 아까 본 농기구 중 서슬퍼런 칼을 찾아봅니다.)
 
 
농기구의 칼날 사이를 뒤적거립니다.
 
 
세이블: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29
판정결과: 실패
 
 
도축용 칼에 손이 베입니다. 체력 -1
 
 
세이블:아야...
 
 
이어 농기구 사이에서 작은 조각칼을 꺼냈습니다.
 
 
세이블:(의심받기 시작했는데, 미적거리면 안 되겠지. 들고 목공소로 이동합니다.)
 
 
목공소는 여전히 주민 한 명만이 앉아 돌에 문양을 새기고 있습니다.
 
 
세이블:(다가가 조각용 칼을 슥! 건네줍니다.) 여기, 찾아왔습니다!
 
 
 
목공소의 주민: 왔나. 꽤 늦었군그래. 다녀오는 길에 주민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한 모양이지?
 
 
세이블:어유, 제가 뭘 했다고 붙잡히겠습니까? 손이 좀 베여서. 아파하느라 늦은 겁니다.
 
 
 
목공소의 주민: 말 돌리지 말게. 앉아서도 자네가 주민들에게 말이 걸리는 걸 볼 수 있으니. 한 번뿐인 결혼식이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평소보다 예민해서 그래. 자네가 이해하게나. 아직 마을에 익숙하지 않을 코흘리개를 위해 어른인 내가 조금 가르쳐 줄 테니. 궁금한 게 있음 물어보게.
 
 
세이블:(하, 빌어먹게 좁은 마을. 돌만 깎는 줄 알았더니 다 보고 다 듣는단 말이지... 눈매가 가늘어진다.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해도, 아까는 엄청 성질내지 않았던가. 적당히 재가면서 해야겠어.) 코 흘릴 나이는 아니지만... 알려주신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저 감옥, 무슨 용도입니까?
 
 
 
목공소의 주민: 감옥이 감옥이지 다른 용도가 있겠나? 가끔 마을에 외부인이 찾아와서 말이야. 평소라면 주례사님이 데려가겠네만, 자네도 알다시피 요새 결혼식 준비로 바쁘지 않나. 그래서 임시로 세워둔 걸세.
 
 
세이블:(오면 가두는 용도라... 훨씬 전부터 느기긴 했지만, 역시 상식이 없는 마을이다. 부디 같힐 일 없다면 좋을텐데.) 결혼식 준비라는 거 말이죠, 일주일 전부터 시작됐습니까? 아니지, 열흘정도 걸렸나요?
 
 
 
목공소의 주민: 일주일이나? 잠깐... 자네, 이 결혼식이 왜 열리는 것인지도 모르는 겐가? 아무리 신입이라고 해도 이마저도 모를 수가 있나.
 
 
 
: 대인기능어려움 이상 판정으로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화이팅......
 
 
세이블:
말재주
기준치: 65/32/13
굴림: 83
판정결과: 실패
 
제가원래머리가좀나빠요.
 
 
 
목공소의 주민: ...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겠군. 가보게나.
 
 
주변이 소란스럽습니다. 당신의 흔적을 누군가가 발견한 거 같습니다.
 
 
세이블:... (조용히 목조건물 쪽으로 빠집니다.)
 
 
목조건물로 가는 길, 지나가는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에서 기디언의 이름을 들은 거 같습니다.
 
 
세이블:
듣기
기준치: 50/25/10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마을 주민A: 결■식 준비는 다 되어가?
 
 
 
마을 주민B: 주■■님이 아직이래, 헌■가 덜 되■■지만 ■ 중이면 완전할 거래.
 
 
 
마을 주민A: 그러면 결혼■■ 밤에 거■되겠네, ■를 더 준비해야겠어.
 
 
 
마을 주민B: 하■■이 앉을 자■는 충분히 ■■했어?
 
 
 
마을 주민A: 모자라면 ■자를 더 가져■■야지, 신랑■ 아직 주■사■ 댁에서 ■■ 중이야?
 
 
 
마을 주민B: 마지■■로 본 곳이 ■■이긴 했는데… 한 번뿐이 될 ■■■이니 준비■ 오래 ■리나.
 
 
 
마을 주민A: 아~ 나■ 주례사■■■ ■로 된 건■■서 지내보고 ■■.
 
 
 
마을 주민B: 꿈 ■! 네가 주■■■ 될 수 있겠어? ■■■ 인■■로 다시 태어■도 ■들걸.
 
 
말소리는 점점 멀어집니다.
 
 
목조 건물이 모인 곳에 도착합니다. 나무를 뼈대 삼고 황토나 벽돌을 적당히 둘러 지은 목조 건물이 모여 주거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목공소나 축사보다 월등히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고 있으며, 가족 단위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식사 준비를 하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집도 보입니다.
 
 
열려있는 창을 통해 건물 안을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이 모여 붉게 염색된 천을 바느질하고 있습니다. 기다랗게 이어지도록 말이에요.
 
 
세이블: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4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두꺼운 융단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 두께와 길이, 붉은빛이 경사스러운 일을 위해 염색된 천임을 알아봅니다
 
 
곧 다가올 경사스러운 일이라면…… 역시 기디언의 결혼식뿐이겠죠.
 
 
마을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모두 결혼식 준비를 한다니, 기디언이 결혼하게 될 상대는 얼마나 덕망이 높은 사람이길래…
 
 
하지만 당장 오늘이 식 아니었던가요? 결혼식에서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줄 알았으나 애꿎은 물만 솥단지에 한가득 끓고 있는 둥, 결혼식에 쓰일 음식도 전혀 준비되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주민들은 시간에 쫓긴다거나,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보단 설렁설렁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치 날짜만 대충 맞추면 되는 사람처럼…
 
 
세이블:(결혼식에 붉은 천을 쓰는 건 들어본 적 없는데. 장식에... 쓸 천인가? 잘 들리진 않았지만, 헌사가 덜 작성된 탓에 결혼식은 밤으로 밀린 모양이고, 기디언은 주례사란 사람의 집에서 준비 중인 듯 하다. 한 번뿐인 결혼식이라... 이런 마을에서 결혼해 봤자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리 없다. 애초에 살아있을 것 같지도 않고. 아무리 폐쇄된 가문이라 한들 단 한 번 나오지 못한 다는 건 말도 안 돼. 죽는 거나 다름없어. 그래, 결혼식을 보는 게 문제가 아니다. 기디언을 데리고 이 마을에서부터 도망쳐야 해. 신발이나 브로치가 길에 널려있는 것도... 기디언이 순순히 따라가지 않았단 뜻 아닌가.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애초에 시작돼선 안 됐다.)
 
(...하지만 저 숲을 넘어 잘 빠져나갈 수나 있을까. 더군다나 기디언과 만나는 일도 문제다. 주례사의 집은 이 목조건물과는 다른 형태로 지어진 모양이니까 더 둘러본다면 보이겠다만... 의심받지 않고 접근하는 건 불가능 할 테다.)
 
 
모든 내용을 파악하고 고개를 드니, 방금까지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입니다. [석조 건물], [창고], [예식장]...
 
 
세이블:(저 석조건물에 기디언이... 예식장이나 석조 건물 주변을 막 돌아다니면 의심받을 테니까, 우선 창고 부터 갑니다.)
 
 
창고의 앞은 건장한 사람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 은밀행동 판정을 통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세이블:(자신 없으니까 안 가야지. 어쩔 수 없다.예식장부터 둘러봅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예식장입니다. 빨갛게 염색한 천들이 길게 늘여져 있지만, 3m도 되지 않는 짧은 길이입니다.
 
 
아직 준비가 한창인지, 가만히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목조 건물에서 사람들이 나와 끝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천을 잇습니다. 카펫을 연상케 하는 붉은 천 끝엔 계단이 약 열 칸 이상 놓여 있습니다.
 
 
천이 덮이지 않은 하얀 석회암은 반지르르하게 빛납니다. 어둠 속에서 본다면 조각된 유리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말이죠.
 
 
세이블:(이것만 보면 평범한 결혼식 같은데... 이 마을에 와서 기디언의 이름은 꽤나 들었지만, 그 상대측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 했네 싶다. 예식장에 이름이 써져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물어보기엔 의심당하겠지... 이어 석조 건물로 향합니다.)
 
 
석조 건물은 다른 건물에 비해 커다랗습니다. 아마 이 안에 사람들이 말하는 주례사와 이 마을의 영주가 있는 거겠죠.
 
 
곱게 갈린 돌벽과 유리가 건물을 장식해서인지 위압감을 뽐냅니다. 주민들이 안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세이블: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주민들은 저마다 앞치마를 둘렀거나 수건을 가지고 나오고 있습니다. 혹은 양동이를 이고 있거나.
 
 
그들의 옷에는 검붉은 흙 자국이 가득합니다.
 
 
우선 저 안에 들어간 이들의 눈을 돌릴 방법이 없을까요? 그들이 한 번에 나오게 한다던가… 그렇게 되면 침입하기가 좀 더 수월할 텐데.
 
 
세이블:(이 마을은 정상이 아니라고, 존재하지 않는 게 나을 거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실종 포스터에 걸린 사람들의 시체, 그 외에도 알 수 없는 죽음이 가득하다. 도덕의식이 결여된... 하나의 광신도 무리 같달까. 그러니까,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으니까. 내 탓이 크진 않을 테다. 끽해야 결혼식 절차가 좀 어긋나기나 하겠지. 제대로 진행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축사로 향합니다.)
 
 
축사로 돌아옵니다. 여물을 주던 주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텅 비어 있습니다.
 
 
세이블:(작은 농막으로 가 상자를 열어, 초와 부싯돌이 있는지 확인해 봅니다.)
 
 
초와 부싯돌 역시 제 자리에 잘 있습니다.
 
 
세이블:(챙긴 초를 평평한 바닥에 놓고, 부싯돌을 부딪혀 불을 붙여봅니다.)
 
탁, 탁. 돌들이 내는 마찰음과 스파크가 몇 번 일더니 촛불에 불이 붙습니다.
 
 
세이블:(일렁이는 촛불을 잠시 보다, 높게 쌓여진 짚더미에 주저없이 던집니다. 불이 잘 붙었음을 확인한다면...)
 
(빠르게 빠져나옵니다.)
 
 
촛불을 던지자 마른 건초더미에 불이 옮겨붙는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무사히 몸을 숨겨 살펴보고 있으면 삽시간에 커진 불에 주민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야단났네, 야단났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주민들 사이, 석조 건물에서 한 사람이 나옵니다.
 
 
천둥·번개 같은 목소리가 귀에 거세게 박힙니다.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말하는 주례사라는 인간들이 저들임을. 일반 주민과 달리 기다란 자주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으니까요.
 
 
그 ‘여러 명’은 석조 건물의 문밖으로 하나둘 튀어나와 상황을 정리합니다.
 
 
건물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타난 걸까요? 더 이상 석조 건물의 문은 열고 닫히는 걸 반복하지 않습니다.
 
 
이제 건물 안에 들어가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세이블:(또 내가 아는 주례사랑은 다른 사람이 나오는군... 땀으로 흥건한 손을 꾹 쥐곤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석조 건물로 무사히 들어옴과 동시에 의아해집니다. 밖에서 본 바로는 내부가 더 널찍할 거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있어야 할 공간이 반으로 잘린 기분입니다.
 
 
어쩐지 작지 않나? 숨겨진 공간이 있기라도 한 걸까요?
 
 
석조 건물 내부는 바깥을 장식한 회색 돌 장식과 달리 따뜻한 색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포근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에 들어오는 이 색이, 바깥에서 보아왔던 환경과 위화감이 느껴져서…
 
 
벽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선반이 고정되어 있고, 중앙엔 타원형 탁자가 놓여 있습니다.
 
 
벽의 모서리마다 작은 책장이 들어찼고, 바닥엔 화분이 듬성듬성 정돈되어 있습니다. 선반의 맞은쪽 벽엔 세밀한 솜씨로 그려진 그림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세이블이 있는 위치로부터 가장 먼 곳은 벽난로로 막혀있으며 박제 장식이 그 위에 있습니다. 벽난로의 상향광을 받아 그늘진 모습이 섬찟합니다.
 
 
 
: 지금부터 리얼 타임으로 40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40분 뒤엔 건물에 다시 주례사가 찾아옵니다.
 
 
세이블:(서둘러 건물을 살펴봐도 기디언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경쓰이는 것 부터 해결해야지. 그림액자를 확인합니다.)
 
 
멀리서 보았을 땐 단순 그림 액자인 줄 알았으나, 가까이서 본 이것은 누군가의 초상…화?
 
 
…헉,
 
 
순간 무슨 생각들이 휘몰아쳤는지 스스로 정의 되지 않습니다. 저 그림은,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세이블:
SAN Roll
기준치: 47/23/9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2
 
(...탁 막힌 숨을 몰아쉬고, 걸음을 배회하다 선반을 살펴봅니다.)
 
 
반짝이는 백랍 접시와 작은 도자기 장식이 놓여 있습니다. 살펴보면 도자기 장식이 약간 들렸음을 알아차립니다
 
 
세이블:(뭐지? 도자기 장식을 더 자세히 관찰합니다.)
 
 
도자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도자기 밑에서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열쇠를 발견합니다.
 
 
세이블:(챙깁니다!)
 
(바로 걸음을 옮겨 타원형 탁자를 확인합니다.)
 
 
탁자 밑엔 곰으로 만들어진 카펫이 깔려 있습니다. 가죽을 통째로 벗긴 건지, 살짝 누린내가 나고 이빨이 드문드문 빠져있습니다.
 
 
탁자 위엔 종이 뭉치가 난잡하게 널렸습니다. 그들이 급하게 나오느라 자료가 헤집어진 모양입니다. 중심엔 불이 꺼진 촛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세이블:(종이뭉치를 손 가는대로 들어 읽어봅니다.)
 
 
수많은 종이 뭉치 속에서, 당신의 눈에 두 개의 단어가 보입니다.
 
 
 
: 기부 명단 #573, Witching Hour 핸드아웃 공개합니다.
 
 
기부 명단이라 적힌 종이를 넘기면 가장 첫 장엔 ‘#573’이란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명단에는 기부자의 이름과 그들이 기부한 물품들이 상세하게 적혀있습니다.
 
 
개중엔 시신이나 사람 등, 보편적이지 못 한 품목도 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존엄을 내놓다니요. 적혀있는 날짜는 전부 한 옛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꺼림칙한 내용이 담긴 명단을 한 장, 두 장 넘겨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혹은 보고 싶지 않았을 이름을 마주합니다.
 
 
기디언 헤르모드, 이 이름이 왜 여기에 있는지.
 
 
그를 기부한 인간은 그의 아버지.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날짜를 보면,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기디언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디언은 전부 알고 이곳에 온 것일까요?
 
 
세이블:(알았다면 왔을 리가. 분명 어떻게든 빠져나와서, 나한테 도움을 구하러 왔었겠지. 어릴 적처럼, 내 상단 건물에 숨어 들어왔던 것처럼... 감상에 젖어있기엔 영 로맨틱한 장소가 아니므로, 이어 시선이 닿는 촛대를 확인한다.)
 
 
투박한 금붙이가 얼기설기 붙은 구리 촛대입니다. 도금이 여기저기 벗겨져 있으며 기둥에는 문구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 읽어보길 원한다면 언어(라틴어) 판정이 가능합니다.
 
 
세이블:
라틴어 Roll
기준치: 1/0/0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아는 글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곳을 살펴보는 게 좋겠어요!
 
 
세이블:(챙장을 살펴봅니다. 설마 전부 라틴어는 아니겠지.)
 
(ㅋㅋ책장,,.)
 
 
세이블: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수기 핸드아웃 공개합니다.
 
 
글 옆에는 마구 휘갈긴, 어떤 방면으로는 정교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은 난잡하면서도 세밀하며, 조악함과 동시에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머리와 가슴은 전혀 동의하지 않음에도 일순 시선을 빼앗깁니다.
 
 
아무렇게나 죽죽 그어진 선들이 점차 엉켜있는 실타래처럼 변하더니, 곧 생물의 핏줄을 연상시키는 곡선이 되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합니다.
 
 
피부를 갈라내어 그 속을 훔쳐보기라도 하는 양… 마치 심장처럼.
 
 
세이블:
SAN Roll
기준치: 45/22/9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2
 
(못 본 걸로... 못 본 걸로 하기엔, 시선을 떼기 어려운 선과, 글자와, 내용들이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야... 애써 시선을 내려 화분을 살펴봅니다.)
 
 
화분들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질서라도 지키듯 놓여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자생하던 식물을 옮겨놨는지, 아니면 정성 들여 키운 건지. 숲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는 달리 잎사귀의 모양이 전혀 다릅니다.
 
 
다섯 개의 화분에는 각각 다른 잎사귀를 가진 식물이 자라 있습니다.
 
 
 
: 화분을 자세히 살펴보길 원한다면 자연(식물학) 판정이 가능합니다.
 
 
세이블:
자연
기준치: 10/5/2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아직 어린 잎들로 보입니다. 마을 주민이 키우는 걸까요?
 
 
애지중지 키우는 건지 잎사귀엔 먼지 한 톨 없습니다..............
 
 
세이블:(뭔진 몰라도 이 마을에 있으니 좋은 것일리 없겠지. 독초라거나. 뭐든... 그림액자엔 시선도 주지 않으려 고개를 뻣뻣하게 돌려, 벽난로 쪽으로 다가간다.)
 
 
박제 장식이 위에 걸린 벽난로입니다. 두꺼운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들어진 기둥이 다른 벽들과 달리 튀어나와 있습니다.
 
 
박제 장식 밑으로, 주변과는 미묘하게 색이 다른 벽돌 네 개가 보입니다. 각각 위, 아래, 중간을 건너뛰고 양옆으로 총 네 개입니다
 
 
바닥엔 조각난 장작이 여럿 쌓여 있고, 벽난로의 장식은 마치 출입을 거부하는 창살처럼 밖으로 휘어 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살갗이 찢길지 모르겠어요.
 
 
벽난로 내부엔 다 타들어 갔는지 작은 불티만 조심스레 머금고 있는 숯이 남았습니다.
 
 
세이블:(바로 고개를 들어 박제 장식도 확인한다.)
 
 
사슴… 아니, 무스일까요? 머리 위로 솟아오른 뿔을 제외하면 그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은 기이한 ‘것’의 머리가 벽에 걸려 있습니다.
 
 
뿔은 마치 손가락을 기다랗게 늘린 뒤에 아무렇게나 꺾은 것을 머리에 붙인 양, 기하학적으로 뻗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괴함에서 아름다움을 찾듯, 묘한 안정이 느껴지는 박제입니다.
 
 
목이 잘렸으니 죽은 것이 분명한데도 약품처리 된 눈은 여전히 생동감 있게 시야로 들어오는 빛을 반사합니다. 혹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릴 만큼…
 
 
가까이 살펴보면 밑엔 작은 철판에 문구가 세밀하게 파여있고 박제와 함께 걸려 있습니다.
 
 
세이블:(이런 글귀는 누가 다 생각해서 적어내는지, 쉬울 것도 참 어렵게 풀어낸다 싶다. 밖에서 본 것과 달리 비좁은 내부, 장치라도 있는 듯 다른 벽돌색. 숨겨진 공간이 있다면 이 너머겠지... 그리고, 기디언이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던 방법을 쓰라는 게 맞다면, 기억력 하나는 준수해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북쪽을 다섯 번, 서쪽을 세 번, 다시 북쪽을 세 번, 동쪽을 세 번, 북쪽을 열 번... 신중하게 벽돌을 누른다.)
 
 
순서대로 벽돌을 누르자 둔탁한 소리가 내려앉습니다.
 
 
수상한 마을의, 수상한 주민들이 소란의 원인이 된 세이블을 이 잡듯 뒤지며 미친 듯이 발을 구르는 상황에서, 저 소리를 마주하니 심장이 떨어지는 착각도 듭니다.
 
 
샐 것 같은 목소리를 억누르고 둘러보면 벽난로의 기둥이 약간 튀어나와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벽돌이 촘촘히 쌓아 올려진 기둥을 밀고 당기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필요합니다. 자연히 힘줄이 서고, 손끝으로 표면을 긁어내리며 열어젖히면… 숨겨진 공간이 나타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선 지독한 악취가 벌레처럼 스멀스멀 풍겨 옵니다.
 
 
마치 빛도 머금을 수 없이 검고 어두운 형태의 묵직한 무언가가, 세이블을 잡아먹듯 온몸을 덮은 채 바닥으로 끌어당긴다고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나아갈 곳은 이 ‘앞’과 당장이라도 당신을 찢어발길 것처럼 달려올 사람들이 있는 저 ‘밖’ 뿐입니다.
 
 
다만, 이 앞으로 나아간다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강한 예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신을 에워쌉니다.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 선택은 엄연히 당신의 몫입니다.
 
 
 
: 나아가면 해당 방의 조사는 끝나게 됩니다. 조사를 전부 마쳤다고 생각되면 나아가 주세요! ^_^
 
 
세이블:(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건, 지금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이 아닌 기디언이 찾아온 마지막 날부터였다. 내 삶의 대부분엔 그가 있었으니, 그가 사라지는 순간부터 달라진다. 되돌리고 싶다면 온전히 되찾아오는 방법 뿐이야... 적어도 나한텐 돌아올 수 없는 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이다. 앞으로 나아갑니다.)
 
 
 
 
숨겨진 장소로 이동합니다.
 
 
작은 창이 전부인 방 안의 공기는 다소 눅눅합니다. 가장자리엔 마치 제집을 차린 듯 모락모락 피어난 곰팡이들이 즐비합니다. 퀴퀴하고 습한 냄새가 납니다.
 
 
와중에 죽어 있는 생물의 사체가 보기 좋게 바닥과 벽에 널려있습니다. 곰팡이와 만난 끔찍하고 역겨운 누린내는 바늘이 되어 코와 안면을 가득 찌릅니다.
 
 
아무렇게나 손질이 된 가죽은 사슴이나 양, 토끼 등 짐승의 겉가죽은 물론이거니와 인피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널려있는 꼴 때문일까요? 언뜻 진짜가 아닌 작품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방엔 빛이 없어서 자세히 볼 수 없다는 점이 참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입니다.
 
 
들어온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돌조각 종이 더미가 있습니다. 돌조각은 발에 챌 만큼 가까운 거리에 놓여 있네요.
 
 
긴장된 시선을 다듬고 주변을 둘러보면, 바닥 한가운데에 알 수 없는 원형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문양의 위로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나무 탁자가 놓여 있습니다. 빛이 적은 곳이라 탁자가 검은색으로 보입니다.
 
 
그 너머 바닥엔 통으로 된 유리관이 잔뜩 있습니다. 그리고 세이블이 들어온 문과 마주한 벽에는 거대한 상자 이동형 수납대가 붙어 있습니다.
 
 
세이블:(익숙해질 수 없는 관경... 이런걸 작품이라 부른다면 그 취미가 아주 고약한 사람일 것이다. 아무튼... 둘러봅니다.)
 
 
작품을 둘러봅니다.
 
 
'목'으로 추정되는 곳에 나무로 만들어진 인식표를 내건 채 사람과 동물, 혹은 물체가 기괴하게 섞여 반죽이 된 가죽이 벽에 걸려있습니다.
 
 
세이블:(인식표...?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살펴봅니다. 적힌 글자라던지...)
 
 
인식표를 확인하면 영어와 숫자로 된 문자열이 보입니다.
 
 
AA-0
 
 
ACA-05
 
 
ADV-023
 
 
DXAA-001
 
 
XXZA-0263
 
 
세이블: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길래… 각 작품마다 알파벳을 포함하여 숫자가 계속, 계속 뒤바뀌고 있습니다.
 
 
시도도 그렇다지만 이만큼 글자의 나열이 갱신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 흘렀는지 체감되지 않습니다.
 
 
세이블:(뭘 위한 건진 감도 안 잡히지만 말이야...)
 
(이어 돌조각을 확인합니다.)
 
 
가까이에 있던 돌조각을 살피면, 각각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거대한 곳에 그렸다가 깨뜨릴 건지, 아니면 부쉈는지… 퍼즐 같은 돌조각들을 이어보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 완성됩니다.
 
 
어떤 것은 물감으로, 또 어떤 것은 세세하게 칼집이 난 형태로. 아, 목공소에서 봤던 사람이 떠오릅니다.
 
 
돌조각은 하나의 거대한 문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가리키는 문양임은 알 수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처음 보는 문양입니다.
 
 
세이블:이렇게 보게 될 거, 그냥 알려주시지 그랬어요... 그럼 이 마을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올라갔을지도 모를 일인데... (작게 중얼거리곤 조각된 돌을 손으로 쓸어본다. 촉감을 느낀 후엔 지체없이 종이더미를 확인한다.)
 
 
떨어진 책의 낱장, 헤진 표지, 실로 묶인 뭉치까지… 더 이상 쓸모없는 자료들을 아무렇게나 놔둔 걸까요? 기본적으로 초자연적이거나, 삿되고 부정한 내용을 담은 글뿐입니다.
 
 
쌓여 있는 더미들 사이, 한 권의 ‘일지’를 발견합니다. 앞 장은 다 헤져서 손이 닿는 곳마다 부스러기가 거무죽죽하게 묻어납니다.
 
 
조심스럽게 장을 넘기면 해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벌레, 물고기, 개구리, 생쥐, 도마뱀, 토끼, 양, 염소, 순록, 무스, 돼지, 소, 말, 그리고… 인간까지.
 
 
의학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이 일지는 수많은 생물의 배를 가르고 뼈를 끄집어내 내장과 근육, 핏줄의 움직임을 담아낸 하나의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어서 작성한 건지 장을 넘길 때마다 여러 필체가 섞였음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뒤이어 기묘한 단어가 적혀있는 또 다른 목차가 눈길을 끕니다. 생물체 기관 전이, 그리고 기관 부분 교체
 
 
세이블:(아까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인간의 불완전한 신체에 대한 아주 긴 불평이 담긴 책. 끔찍한 상상과 함께 생물체 기관 전이 페이지를 넘긴다.)
 
 
여러 명의 필체로 적힌 내용이 이어집니다.
 
 
 
: 생물체 기관 전이 핸드아웃 공개합니다.
 
 
읽는 순간 구역질이 올라옵니다. 이 마을에 와서 먹은 음식이 없음에도 속을 게워야 풀릴 듯한 비린내가 오장을 잠식한 기분이 듭니다.
 
 
당신이 지나오면서 보았던 무수한 시체 더미들, 그리고 이 방의 수많은 ‘작품’들이… 헤아릴 수 없이 오래전부터 거행된 흐름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절대로 정상이라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대체 무엇이 이 마을을, 사람들의 뇌리를 갉은 것 인지…
 
 
세이블:
SAN Roll
기준치: 43/21/8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이걸 읽는 일이... 기디언을 데리고 나오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일지에 쓰인 이름, 분명 기부명단에서 본 사람의 것이다.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부정해도 이미 일어난 일은 뒤바뀌지 않아. 지금은, 최악의 결과가 나오지 않게 움직여야 할 때다. 기관 부분 교체 페이지를 확인합니다.)
 
 
한눈에 봐도 제일 많이 펼쳐본 것처럼 페이지는 바래 있습니다.
 
 
 
: 기관 부분 교체 핸드아웃 공개합니다.
 
 
마력, 이성 등 알 수 없는 내용과 함께 주문이 적혀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신체 기관을 교환했다는 뜻이겠죠.
 
 
세이블:(끔찍하게 발전된 의료술이다...)
 
(책을 덮고, 조금 더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나무 탁자를 확인합니다.)
 
 
방에 들어왔을 땐 몰랐으나 가까이 오니 바로 알겠습니다.
 
 
피로 점철된 나무 탁자입니다. 되직한 액체가 켜켜이 쌓여 감히 물로도 씻기지 않을 만큼 짙습니다.
 
 
나무 탁자의 결을 만져보면 음각 문양이 파여있습니다.
 
 
둥그렇게 주변을 둘러싸는 괴이하게 구부러진 문자들, 수많은 덩굴처럼 얼키설키 엮인 비선형 자국. 이 위에 생물을 눕힌 뒤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이블:(손도 대고 싶지 않은 탁자. 아직 이 위에 기디언이 올려지지 않았길 바란다. 그런데, 저 끔찍한 의술과 결혼식이 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대외에 쓰기 좋은 핑계? 그러고 보니, 아직 기디언이 보이지 않는다. ...저 커다란 공간, 두 곳 중 하나에 있을까. 유리관을 확인합니다.)
 
 
방에 들어왔을 땐 어둠에 가려져 평범한 유리관인 줄 알았으나, 어둠에 차츰 익숙해지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남달랐습니다.
 
 
뇌, 심장, 발굽, 어딘가의 뼈, 지느러미, 주인 모를 안구, 거대한 부레, 구불구불한 창자…
 
 
각양각색의 장기와 신체가 보존제처럼 보이는 액체에 마치 절임처럼 담겨 보관되어 있습니다. 어찌나 저장이 잘 되었는지 그 빛깔이 여전히 나긋합니다.
 
 
몇 개의 통엔 글귀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산양의 뿔이 들어있는 통엔 ‘엔젤’, 길고 가는 손가락이 들어있는 통엔 ‘에밀리’,
 
 
이곳에 그의 심장이 왜 있는 것이죠?
 
 
만약 저 심장이 정말로, 기디언의 것이라면. 지금 그의 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세이블:.................................
 
(기디언은... 어디 있지...? 거대한 상자를 확인합니다.)
 
 
방에서 풍기던 역한 냄새의 원인은 여기였습니다. 재활용도 하지 못할 온갖 생물의 몸뚱이와 폐기물, 생명을 이루던 조각이 한데 모아 썩어 문드러져 있습니다.
 
 
뚝, 뚝, 고약한 악취를 진하게 담은 검은 추깃물이 시체의 손끝에서 떨어지네요.
 
 
왜 이것들을 따로 모은 거죠? 설마 이 상태마저도 쓰임새가 있어서?
 
 
찰나, 작은 철문,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법한 크기의 철문이 상자의 뒤에 가려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세이블:(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심호흡을 할 시간도 없다. 숨을 들이쉬지 않아도 폐부에 썩어드는 악취가 스며든 기분이다. 손 끝에 힘을 주고 상자를 밀어내 철문을 확인한다.)
 
 
문을 열자, 셀 수 없이 많은 장작이 숯과 함께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잠깐 열었을 뿐임에도 열기에 얼굴이 홧홧해집니다. 지옥의 업화를 훔쳐보기라도 한 듯, 끓어오르는 열기에 머리카락이 훅 올라갔습니다.
 
 
이건 분명히 소각로입니다.
 
 
증명이라도 하듯 녹아내리는 뼈붙이가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서 눈에 띕니다.
 
 
 
세이블:(소각로... 설마, 심장만 빼고 던져지진 않았겠지... 끓어오르는 열화에, 서둘러 문을 닫고 걸음 뒤로 물린다. 여기서 남은 건... 이동형 수납대 를 확인합니다.)
 
바퀴가 달린 이동식 서랍 위로 종이를 포함하여 책이 한가득 쌓여 있습니다.
 
 
책을 조금이라도 크게 들어 올리려고 하면 책등에 무겁게 꽂혀있는 사슬이 가로막힙니다.
 
 
척 보아도 시간을 가득 품었는지 낡아 있으며, 습기를 머금은 종이에선 쿰쿰한 냄새가 납니다.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적혀있습니다.
 
 
세이블:(무슨 책을 이렇게나 쌓아둔 걸까. 읽을 용도는 아닌 것 같은데. 순간, 전부 태워버릴까 하는 충동이 일었으나... 멋대로 건들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책을 살짝 들어 그 틈으로 내용을 읽어봅니다.)
 
 
세이블:
라틴어 Roll
기준치: 1/0/0
굴림: 21
판정결과: 실패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가득한 책을 들어 읽다 보면, 조금 더 아래. 종이 더미 사이 숨겨놓은 듯한 책을 발견합니다.
 
 
숨겨진 책은 손으로 훑을 뿐인데도 녹이 묻어납니다. 무언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라도 있는 건지 정 가운데에는 자물쇠가 걸려있습니다.
 
 
세이블:(이 마을엔 잠긴 곳이 별로 없던데, 자물쇠까지 쓸 정도라면 엄청난 비밀이라도 적어둔 모양이지... 도자기 장식에서 찾은 열쇠를 꽂아본다.)
 
 
찾았던 열쇠는 부드럽게 맞물려 돌아갑니다.
 
 
 
: 일지? 핸드아웃 공개합니다.
 
 
맞아요, 결혼식. 아주 먼 곳에서 들어온,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는 기디언의 혼처.
 
 
이제껏 보아왔던 그 시설이, 장식이, 주민들 모두가 기디언을 바치는 일환책이라니,
 
 
산소를 들이마시며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첫 숨을 내뱉다가 제 삶을 살아 나가야 할 아름답고 독립적인 개체들이, 고작 고깃덩어리로 이루어진 ‘심장’이 되기 위해 바쳐졌다니,
 
 
그리고 그런 모독적이고 흉악한 죄악의 덩어리가 지금 기디언의 몸 안에서 자생하고 있다니.
 
 
기디언이 몸 안에 독자적으로 호흡을 내뱉고 박동하는 괴악한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게 정말이라면. 그것으로 인해 온 세상의 생물체가 진실로 ‘완벽’한 신체가 될 수 있다고요?
 
 
하지만, 어떻게? 어떤 식으로?
 
 
피를 뱉어봤자 거리가 얼마나 간다고 이딴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순간, 물음에 답이라도 하듯. 너덜너덜하게 헤진 페이지 몇 장이 바닥으로 자르르 떨어집니다.
 
 
당신의 눈길을 끄는 단어. 거대 관문 생성
 
 
 
: 거대 관문 생성 핸드아웃 공개합니다.
 
 
망막에 다시금 이 공간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작품’들이 맺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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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한 순간, 침몰하는 배 마냥 다리가 부르르 떨리며 바다로 집어 던져진 짐짝처럼 가라앉습니다.
 
 
우울, 무력감, 허탈, 경멸과 분노, 체념과 경외, 그리고 분노. 수많은 감정을 비롯한 중압감이 지옥 같은 심해 밑바닥으로 찍어 누릅니다.
 
 
세이블:
SAN Roll
기준치: 42/21/8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1
 
 
 
 
 
 
탁, 긴장이 풀립니다.
 
 
이 공간에 들어오면서부터 놓지 않던 그 줄이 스르르 빠져나갑니다. 순식간에 정신적인 피로가 몰려옵니다.
 
 
당신의 정신을 부여잡던 끈이 뚝 소리를 내며 끊어지더니 공중에 부유시킵니다.
 
 
이 미친 공간에서 어떻게든 버텼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돌들이 끌리며 무거운 소리가 납니다. 익숙한 소음. 들어올 때 당신도 내었던 마찰음.
 
 
벽난로를 통해 이어진 문이 열리고, 빛줄기가 들어오며 시야를 일순 뿌옇게 만듭니다.
 
 
아. 마을의 주민들입니다.
 
 
떨림이 채 가라앉지 못한 몸을 어거지로 일으키고 달려드는 것들을 향해 발버둥 칩니다.
 
 
악을 쓰고, 물건을 던지고, 주먹을 내지르고, 발길질하며 버티는 시간이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처럼 느리게, 아주 느릿하게, 천천히 이어집니다.
 
 
곧 모든 저항이 무의미해지고. 정전이 찾아옵니다.
 
 
 
 
우당탕.
 
 
거짓으로라도 좋게 말할 수 없는 세찬 소리를 내며 바닥을 나뒹굽니다.
 
 
온갖 손에 붙들려 들어온 곳은 이전에 살펴보지 못한 창고의 안쪽입니다.
 
 
무거운 철문이 열리자 미처 살피지 못했던 건물 안에, 감옥 시설이 놓여 있었습니다. 썩어가는 시신의 냄새, 갉작거리는 벌레의 이와 날갯짓 소리, 그리고 한 점 불조차 지펴지지 않은 어둠이 당신을 감싸 안습니다.
 
 
감옥의 벽은 두꺼운 합판을 여러 번 덧대어 못질하고, 그것도 모자라 벽돌을 세워두었습니다. 흙 위로 보이는 원통형의 철창은 땅 밑까지 깊숙이 박혀있음을 어림잡을 수 있었습니다.
 
 
 
마을주민: 정말로 불온분자가 숨어들었을 줄이야. 주례사님이 미리 예견해 주셔서 다행이지.
 
 
당신을 잡아 온 주민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모멸을 담은 시선을 내던집니다.
 
 
 
마을주민: 이 새끼도 그냥 처분해서 식장에 장식하지. 왜 가둬 두기만 하는 거야?
 
 
그들은 가래가 섞인 침을 탁, 바닥에 내뱉습니다.
 
 
 
마을주민: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걸려. 운 좋은 새끼. 그래도 축복받는 날이라고 목숨도 부지하고 완벽으로 다가서다니, 감사한 줄 알아.
 
 
당신의 반응은 살피지도 않고 킥킥거리며 당신을 우롱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이딴 곳에서 죽을 수도, 죽는 것보다 못 한 모습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도 사양인데. 하물며 사라진 기디언의 머리끝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입니다.
 
 
바로 옆 방에서 며칠이나 갇혔던 건지 잔뜩 갈라져서 사막과 같은 목소리가 벽을 넘어옵니다.
 
 
세이블:(아무렇게나 뒤엉켜 널브러진 몸을 일으키고, 소리가 들려온 벽 쪽으로 다가간다. 주민들이 떠난 문 쪽을 흘긋이다, 그 목소리에 답한다.) ...기디언?
 
 
기디언:(긴 침묵이 이어지고, 벽 너머에서 몸을 끌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쇳소리 같은 숨소리를 내뱉고, 병자처럼 계속해 기침을 반복하다 짧은 문장을 꺼낸다.) ... 형이구나. 오지 말지. 약속 왜 지켰어 바보.
 
 
세이블:...! (깊게 잠긴, 갈라진 목소리에 기디언일 거란 확신은 하지 못했다. 다만, 이 마을에서 안 찾아본 곳은 여기뿐이니까. 그리고 기왕이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주길 바라서, 그 이름을 불렀는데 정말 너일 줄은 몰랐다. 드디어 네가 어디 있는지 확인했는데, 기분은 여전히 참담하다. 누가 들어도 좋지 못 한 상태의 목소리. 이곳에서 얼마나 방치당한걸까... 내가 조금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저주 거신다면서요. 아직 이룰 게 많은 몸이라, 길거리에 나앉을 순 없었습니다... (농담을 해도 활기 없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벽에 손을 짚고 목소리를 높여 묻는다.) 괜찮으신 겁니까?!
 
 
기디언:(제대로 웃을 기력도 없는 듯 툭 내뱉는 웃음을 뱉는다.) 어쩐지 요 몇 시간 밖이 소란스럽더라. 난 여기 도착하자마자 저주 걸기로 한 거 취소했는데. 형이 바보였어, 아무튼... (천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기어 이동하곤 벽에 등을 기댄 채 앉는다. 목소리에 집중하려는 듯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며 대답한다.) 형. 신기한 거 알려줄까? 진짜 배가 고프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 아픈 것도, 힘든 것도 전부. 그냥 졸리기만 해 지금은. (잠깐의 침묵 후 다시 말을 이어간다.) ... 오늘 며칠이야? 결혼까지 얼마나 남았대?
 
 
세이블:왜... 왜 멋대로 취소하셨습니까. 약속했잖아요. 저는, 정말 결혼하기 직전 기디언을 데리고 도망가는 생각도 했었는데... (손끝으로 벽을 두둑, 긁듯 문지른다. 젠장... 두텁기도 더럽게 두텁네. 이 너머에 기디언이 있는데, 닿을 수도 없고 끌어안을 수도 없다. 마른 목을 축여주는 것도, 다친 곳이 없는지 온몸을 어루만져줄 일도. 작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눈썹이 구겨지고 미간이 좁힌다.) ...죄송합니다. (그날, 그냥 보내버려선 안 됐는데.누군가 찾아오기 전에 도망이라도 갔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그랬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여전히 너의 심장엔 죄악이 박혀있다. 이제 정말 되돌릴 길은...) 오늘은 결혼식 당일입니다. 앞으로… 몇 시간 안 남았을 거예요.
 
기디언, 알고 계십니까...? 결혼식에... 관한 일을.
 
 
기디언:도착하자마자 이상했는걸. 환영식 이후에 눈을 뜨니 여기에 갇혀 있었고, 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상하고. 이런 곳에 형을 부를 순 없잖아. (귓가에서 벽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이 너머에 있는 걸까. 확인하고 싶지만 이젠 눈을 뜨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어차피 벽만 보일 확인 대신 다시 입을 여는 것을 선택한다.) 죄송하긴. 형도 모른 거잖아... (결혼식 당일. 사람들이 지나가며 이 결혼식이 끝나면 전부 해결될 거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고통도 몇 시간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좋아졌나...)
 
몰라. 결혼이 끝나면 무슨 일이 생겨? 노예로 팔리기라도 하나. 싫은데... 나름 곱게 자라서 일 못하는데.
 
 
세이블:저 또한 이런 곳에 기디언을 혼자 둘 순 없어요. 어떤 곳이라 한들 찾아갔을 겁니다. 물론 이곳에선 상단을 차릴 수도, 좋은 사람을 소개받아 결혼할 수도 없을 것 같지만요... (계속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안도감이 든다. 살아있어. 아직은 살아있다. 심장 자리에 뭐가 있던, 내가 아는 기디언은 살아있다. 더 입을 여는 것도 그에겐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겠지. 알고 있지만, 이제 그만 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목소리라도 더 듣지 않으면... 완전히 이성을 놓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갑시다. 여기보단 조금 더 살만한 곳으로. 혼처야, 그 말대로 찾아보면 많지 않겠습니까?
 
(지금껏 보고 알아낸 것들을 전부 말해도 괜찮을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는 한계다. 혼란스러울 뿐이야. 온 세상이 재앙으로 재탄생한다는 걸 알면... ...재밌어 할 것도 같긴 하지만... 아무튼.) 기디언은 결혼식이 끝나기도 전에,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겁니다. 제가 약속할게요. (방법도 확신도 없는 말이지만, 그저 소망했다. 편안한 거짓말이 된다면 그것으로 좋고, 기적 같은 진실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기디언:나랑 형 상황은 다르지... 난 여기가 새 집인 거고, 형은 그냥 날 보러 찾아오는 방문자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찾아와준 것이 기쁘다. 자신을 위해 평생에 걸쳐 일궈온 상단과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행복한 미래를 포기할 수 있다고 단언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저 편하게 살아온 줄만 알았는데 나도 나름 성공한 삶을 살았구나.) 다른 곳, 어디? 난 평생 영지 내에서만 지냈으니 밖은 잘 몰라. 형의 평생을 책임지려면 좋은 곳을 찾아야 할 텐데.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쭉 돌아다닐 거 같으면 아예... (말이 끊기고 침묵이 이어진다. 형 동생 사이에 평생 곁에 있어달라고 하는 건 욕심인가.)
 
(무언가 숨기고 있구나.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하지만 형이 숨기는 거라면 자신에게 나쁜 일은 아닐 테니까. 대신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린다.) ... 형, 기억나? 배우자 앞에서 나 납치해 달라고 했던 거. 원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거 아버지 앞에서도 한 번 더 해주라. (정략혼 상대를 이렇게 대한다는 건 이미 가문끼리도 이야기가 된 상황이란 뜻일 테니까. 멀쩡히 살아 돌아가서 눈앞에서 달아나줘야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죽어도 성불하지 못할 거 같아.)
 
 
세이블:(이런 곳을 새집이라고 부르다니... 같은 집에서 자라왔고, 독립을 한 이후에도 제 집처럼 드나들던 곳이 헤르모드 후작가였다. 그 누구도 아닌 널 보기 위해서. 그런 나를 방문객으로 부르다니. 상황이 이러다 한들, 이런 상황이니 더더욱 열불이 뻗쳤다. 타의라 한들 나를 떠나간 것이 섭섭했고, 네가 남에게 귀속된다는 것이 질투났다. 애초에 너의 결혼식을 축복해 줄 마음 따윈 없었어. 이런 끔찍한 땅 위에서 고통받는 게 아닌, 화창한 하늘 아래 밝게 웃는. 이상적인 결혼식을 보았어도 마음은 불온함으로 뒤덮였을 거다. 그리도 질척한 감정이라, 이 엉망인 전야제에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내 감정은 한 끗 닿을 수도 없이, 더 망칠 것 없는 최악의 결혼식이니 말이다.) 숲이 멀고 상업화가 잘 된 도시는 어떨까요. 온갖 즐거움이 가득할 겁니다. 아니면... 무역이 잘 발달한 항구 도시도 괜찮을 겁니다. 휴양지는 아니라서, 조용할 일 없이 시끄러운 바다겠지만요. (침묵의 자리를 메꾸며 하나하나, 언젠가 꿈꾸던 곳들을 나열한다. 정착하지 않고 쭉 돌아다니는 것. 모범 답안 같은 선택지다 싶었다. 그럼 질릴 일도 없이 평생 함께할 것 아닌가. 어차피 자신에겐 기디언이 아니라면... 모든 게 상관없을 것이다.)
 
물론이죠,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 몇 번이고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손을 내린다. 벽 앞에 무릎 꿇어앉곤 그 앞을 바라본다.) 저를 생각해 주세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저와 함께함을 꿈꿔 주십시오. 기디언의 심장이 터져도, 뒤바뀌어도, 그 자리에 뭐가 들어차든 간에…. (호소하듯 울먹거린다. 이 무슨 자주 같은 고백이란 말인가. 그것도 결혼식을 몇 시간 후에 앞둔 신랑에게.)
 
 
기디언:도시도, 항구도 둘 다 좋아. 하지만 굳이 고르자면... 바다를 보고 싶어. 거대한 배를 타고 타국으로 여행도 가보고 싶고. 그 모든 여정에 형이 함께했으면 좋겠어. (이뤄지지 못할 미래를 그리는 것은 얼마나 달콤하던지... 이래서 사람들이 환각에 빠지나 싶다. 계속 즐거운 두 사람의 미래를 생각하고 싶으나 이젠 현실을 볼 시간이다. 심장이 터지고 뒤바뀐다는 말을 형이 아무 이유도 없이 할 리가 없으니 아마도 저게 얼마 뒤 내 미래인 모양이지. 미리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심장이 터져 죽으면 아픔도 느끼지 못하고 죽을 테니까.)
 
 
3시. 저들이 결혼식이라 칭하는 의식이 시작될 시각. 서서히 밖이 소란스러워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앞으로 얼마 남았을까요.
 
 
기디언이 있는 벽 쪽에서 헛웃음이 들렸습니다.
 
 
기디언:이렇게 되기 전에 제대로 도망 쳐볼걸. 결혼하기 싫다고 말이라도 해볼걸.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발악이라도 해볼걸...
 
이딴 결혼식 따위, 망해버리면 좋을 텐데.
 
 
형도 그렇게 생각하지? 목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어쩐지 그리 말한 착각이 듭니다.
 
 
무겁고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리고 그 잠깐 들어온 빛 때문에 눈을 찡그리게 됩니다.
 
 
이 감옥에 갇혀서 어둠에 익숙해진 탓인지. 제대로 눈을 뜨기가 힘이 듭니다.
 
 
 
마을주민: 곧 식이 시작된다. 신랑만 꺼내.
 
 
벽 너머로 반항기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다 갈라진 목소리로, 색색거리는 숨소리로, 마른 기침을 내뱉으며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간절합니다. 빛 번짐이 사라진 그 순간,
 
 
시선이 마주합니다.
 
 
며칠 만에야 마주 본 저 얼굴, 기억보다 조금 더 야윈 저 얼굴, 출발할 때 그가 입었던 하얀 결혼식 복장은 찢기고 바닥을 굴러 더럽혀져 있습니다.
 
 
기디언은 마른 잎 같은 버석한 입술을 달싹이려다, 사람들의 우악스러운 손에 막힙니다.
 
 
다시금 무겁고 소름 끼치는 소릴 내며 철문이 닫힙니다.
 
 
새벽 3시.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저들의 뜻대로, 기디언 품은 커다란 살덩이에선 불온한 피가 뿜어져 나올 것이며, 곳곳에 열려버린 ‘문’이 혈류처럼 피를 운반할 테죠.
 
 
기디언이 전하고자 한 마지막 말은 정말 저것이 맞을까요? 혹시나 당신이 듣고 싶었던 대로 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의 유언을 멋대로 해석한 것이 아닐까요?
 
 
시간이 다가올수록, 둥둥거리는 묘한 악기 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예식장과 창고의 거리가 멀지 않아 더욱 크게 들립니다.
 
 
세이블. 이 어둡고, 춥고, 딱딱하고, 더러운 감옥엔 당신뿐입니다.
 
 
이대로 곧 내려질 축복과 세례에 새로이 태어남을 감사하며 갇혀있을 생각인가요?
 
 
아니, 곱게 앉아 그들이 강제로 쥐여주는 ‘결혼 답례품’을 받을 생각 따위 없습니다. 그딴 것을 받으러 온 게 아닙니다.
 

 

 

 
당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를 다시금 상기하세요.
 
 
세이블: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58
판정결과: 실패
 
 
─기디언을 다시금 만나기 위해 왔잖아요.
 
 
결심합니다. 이 빌어먹을 곳에서 탈출해야만 한다고!
 
 
 
 
밖에서 의식을 위해서 대량으로 불길을 피우는지 불빛이 번쩍 타오릅니다. 촘촘히 엮은 감옥 틈새로 불빛이 새어 들어옵니다.
 
 
곧이어 결혼 행진곡을 음산하게 비튼 음악이 들려옵니다. 그들의 모독적인 언사가 한없이 모이며 합창합니다.
 
 
그 순간. 감옥 틈새로 비친 불빛이 당신의 눈에 희번덕이며 빛나는 무언가를 보여줍니다.
 
 
도끼.
 
 
날렵한 몸과 두툼한 날을 지닌 저것은, 빛이 내려앉은 지금에서야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크고 굵직한 칼날. 당신이 양손으로 들어야 할 만큼 길고 단단한 몸체.
 
 
저 도끼가 있다면. 손에만 들어온다면. 어쩌면.
 
 
 
: 지금부터 자유롭게 철창을 빠져나가 도끼를 손에 넣을 방법을 궁리해 주시면 됩니다! 화이팅!
 
 
세이블:(제 아무리 촘촘히 엮은 감옥의 벽이라 한들... 낡고 오래된 만큼 얇고, 약한 곳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몇번이고 짓누른다면, 작은 틈 하나 안 생기겠는가?)
 
(관찰 판정 후 근력 판정으로 탈출 시도하겠습니다..)
 
 
 
: 관찰력 판정은 일반 성공, 근력 판정은 어려움 이상 성공이면 가능합니다.
 
 
 
세이블: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구석, 유독 흔들거리는 철창이 보입니다.
 
 
세이블:
근력
기준치: 40/20/8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깡...깡...깡...)
 
 
철창 문을 열러고 시도하나 쇠창살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 재시도,,, 해보겠나요? 대신 성공하면 체력 -1이 됩니다...
 
 
세이블:(재시도... 합니다!)
 
근력
기준치: 40/20/8
굴림: 2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철창을 억지로 벌립니다. 손의 힘줄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팔 하나를 밖으로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철창이 벌어졌습니다. 체력 -1
 
 
세이블:(마찰에 타는듯한 손바닥, 진동하듯 울리는 팔 전체를 잠깐 감싸다, 청창 틈으로 도끼를 잡으려고 손을 뻗어 본다.)
 
(철...창.)
 
 
묵직한 자루가 한 손에 담기며 무게감을 자랑합니다.
 
 
손에 닿자 느껴지는 고양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요. 어쩌면 착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숨을 헐떡거림에도 멈추지 않고 가볍게 몸을 일으키며 원하는 바를 실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성 2를 바치고 9라운드 동안 아드레날린 상태에 돌입한다.
 
 
지금 상태의 인간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무엇도 없습니다.
 

 

 

 
 
 
쿵!
 
 
쿵!
 
 
쿵!
 
 
빛을 받아 번쩍이는 도끼의 날을 쳐들고, 내려칩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나무와 벽돌을 소용없게 만들기 위해서 조금이나마 벌어진 틈새를 헤집습니다.
 
 
후두둑, 앞을 가로막던 벽이 초라하게 부서집니다.
 
 
이제 벽 따윈 없습니다. 당신의 앞에 주어진 건, 타오르는 불로 이루어져 예식장까지 이어진 빛나는 길뿐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수록. 당신이 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융단과 피, 짐승의 시체, 그리고 사람의 시신. 도낏자루에 지문이 새겨질 만큼 꽉 주먹에 힘이 들어갑니다.
 
 
‘예식장’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게, 주민은커녕, 건물의 불들이 전부 꺼져버려서 너무나 잘 보였으니.
 
 
아침이란 착각이 들 만큼, 수많은 촛불과 횃불은 어느새 통로가 되어 길을 밝히고 있습니다.
 
 
낮부터 주민들이 열심히 바느질하던 붉은 천이 이리저리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일직선으로만 뻗지 않고, 이리저리, 이곳저곳, 도처마다.
 
 
 
: 천을 자세히 살펴보길 원한다면 관찰력 판정이 가능합니다.
 
 
세이블: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96
판정결과: 실패
 
 
… 뭐, 지금 그런 게 중요한 사실인가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은 모두 하객이 되어 자리를 빛내고 있습니다. 기다란 의자마다 비워진 곳 없이, 빼곡하게.
 
 
물론 말이 ‘하객’이지, 그들이 정말 손님의 입장으로 온 건 아닙니다.
 
 
자리를 빛내고 축하를 뱉어야 할 그들의 입은, 끊임없이 모독적이고 삿된 기운이 가득한 주문을 영창합니다.
 
 
몇은 정신을 잃고, 몇은 죽어버렸는지 눈을 까뒤집고, 그렇게 남고, 남은 인간들만이 자리를 굳건히 지킵니다.
 
 
흔들림 없는 저들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성스럽습니다.
 
 
고개를 올리면, 온갖 시신의 뼈와 내장, 살점, 수많은 피가 흩뿌려져 있습니다. 개중엔 당신이 ‘벽난로 뒤’에서 보았던 작품도 몇 보입니다.
 
 
부정한 것을 잔뜩 올려 장식한 저곳은, 이제 계단이 아니라 하나의 언덕처럼 보입니다. ‘시체 언덕’이라 불러도 될 만큼 흉한 모습이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체의 언덕 위. 가장 꼭대기에 올려진 단상… 아니, 제단에는 기디언이 사지를 결박당한 채 눕혀져 있습니다.
 
 
하객들의 입에서 흐른 저주가 담긴 주문의 도착점은 그를 향하는지. 기디언의 위로 ‘괴악한 힘’이 응축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팔과 다리의 털이 곤두서며 소름이 돋습니다. 세상에 저것만큼 기괴하고 더러우며 극흉한 것은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 괴악한 힘이 이들이 말하는 ‘거대 관문’일까요?
 
 
사람의 눈알 정도 되는 크기에서, 얼굴만큼, 곧 흉통만큼 커집니다. 해야 할 것이 하도 많아 순서를 헷갈릴 뻔했는데 저렇게 목표를 보여주니 차라리 잘된 일이지요.
 
 
 
 
세이블.
 
 
자, 관문을 파괴합시다.
 
 
저 관문을 잇고 있는 것들. 관문을 이루고 있는 것들, 관문에 힘을 실어주는 것들을 당신의 도끼로 내리찍을 시간입니다.
 
 
무엇이 관문을 이루고 있는지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같은 문양이 그려진 물건, 그것을 소중하게 쥐고 있는 인간들, 문양이 새겨진 비석, 옷에 새겨진 문양…
 
 
개중엔 이미 피가 묻어 물감이 지워졌거나, 떨어져서 산산조각으로 깨진 것도 보입니다.
 
 
온전한 문양이 그려진 물건은, 16개 남았습니다.
 
 
 
: 전투는 약식 룰을 이용합니다.
 
적은 반격하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판정은 캐릭터 무기 칸에 추가된 도끼를 사용하며, 나온 대미지의 수만큼 문양이 파괴됩니다.
 
하우스 룰 - 아드레날린 상태가 적용되는 동안은 보너스 주사위 1개가 적용되며, 판정에 실패해도 체력 1 차감 후 성공으로 판정합니다.
 
 
 
 
퍽!
 
 
도끼를 휘두르고, 맞는 이들의 가슴께에서 터져 나오는 피가 마치 폭죽처럼 느껴집니다.
 
 
축사를 건네던 이들은 ‘불청객’인 당신을 끌어내기 위해 달려듭니다.
 
 
욕지거리와 함께 당신을 향해 모여드는 흉기들을 마주합니다.
 
 
세이블:
도끼
기준치: 30/15/6
굴림: 47
판정결과: 실패
피해: 10
 
 
 
 
손이 미끄러졌지만 괜찮습니다.
 
 
흉기에 찔리고 베이게 된다면, 당신 또한 똑같이 돌려주면 될 뿐입니다!
 
 
누군가의 날을 망친다는 사실이 이렇게 흥분될 줄이야! 체력 -1
 
 
 
 
축가 대신 하객들이 읊조리는 주문이 울려 퍼지는 식장을 나아갑니다.
 
 
이번엔 감미로운 축가를 끊어낼 타이밍입니다.
 
 
타이밍 좋게도 자신들의 말을 끊어달라는 듯, 주문을 외우던 이들이 천천히 다가옵니다.
 
 
세이블:
도끼
기준치: 30/15/6
굴림: 1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4
 
 
 
 
번쩍, 도끼날이 하늘을 가름과 동시에 축가를 부르던 이들의 머리는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구릅니다.
 
 
폐에 차있던 공기가 빠져나오며 피로 거품을 만들며 문양의 위를 덮습니다.
 
 
드디어 좀 조용하네요. 하지만 여기서 끝낼 수 없습니다. 파괴해야 할 물건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수없이 영창하던 목소리는 하나둘 끊기고, 불온한 기운이 약해졌음을 느낍니다.
 
 
머잖아 웨딩 케이크를 자르겠죠? 곧 부케를 던질 순서가 올 거예요.
 
 
아, 저기! 쥐새끼처럼 급하게 문양이 새겨진 돌을 숨기는 하객이 보입니다.
 
 
도끼날을 피해서, 그들은 저주가 담긴 헌사를 읊다 말고 슬금슬금 멀어지려고 합니다. 아직 축하 케이크를 자르지도 않았는데 감히 식장을 벗어나려 하다니!
 
 
세이블:
도끼
기준치: 30/15/6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피해: 8
 
 
 
 
우지끈거리는 큰 소리와 함께 머리가 갈라집니다.
 
 
터져 나오는 뇌수와 피가 섞인 액체, 두개골 조각이 한 데 섞여 마치 부케처럼 하늘을 날다 당신의 손 위에 떨어집니다.
 
 
깨진 뼛조각이 얼굴을 스쳐 자그마한 생채기가 남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습니다.
 
 
이 부케의 주인은 당신이에요! 다음 결혼식은 우리의 결혼이 될 겁니다. 체력 -1
 
 
 
 
얼마나 무기를 휘둘렀을까요? 얼마나 이 망할 의식에 휘둘렸나요?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돌과 함께 사제들의 갈빗대가 부서져 나갑니다.
 
 
바닥에 널린 흰 조각이 돌인지 뼈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어집니다. 그마저도 곧 붉은 액체에 뒤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요.
 
 
쇠와 맞부딪힌 돌덩어리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서서히 쩌적입니다. 날 끝이 방금 튕겨 나갔나요? 뭐,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없이 내리친 끝에야 더는 물러날 곳이 없던 비석은 땅에 깊숙이 박힌 채로. 쩍,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집니다. 깔끔하게.
 
 
수없이 많은 피가 튀고, 기적이란 이름의 가면을 쓴 불온한 물건은 파편이 되어 조각납니다.
 
 
힘이 들어갔던 팔과 어깨가 얼얼합니다. 질질 끌리는 다리는 발목을 접질리기라도 했나… 기억은 안 납니다.
 
 
어느 한 부위만 집중하기엔, 흥분이 가라앉자 온몸을 바늘 대여섯 개로 쿡쿡 찔러대는 듯 서서히 이곳저곳에서 통증이 올라옵니다.
 
 
온갖 부정한 힘을 그러모아 열린 ‘관문’은 점차 사람만 한 크기에서 흉통, 머리, 그리고 눈알 크기가 되어갑니다.
 
 
서서히, 서서히, 작아지더니 곧 먼지처럼 흩어집니다.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나부끼며. 흔적도 없이.
 
 
해냈습니다. 세이블 당신이 해냈어요!
 
 
이제 이 세상에 멍청한 기적이든, 축복이든, 탄생이든, 영영 흩뿌려질 일 없겠죠.
 
 
 
 
잠시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노라면,
 

 

 
 
제단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의 신음이 들려옵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음성은 날카롭게 귀를 파고듭니다.
 
 
제단으로 다가가면 기디언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버둥거리고 있습니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제 손으로 제단 위를 마구 긁어내다 결국 손톱이 빠지고 맙니다.
 
 
동시에 죽음을 통해 해방되고 싶은 생물처럼 그깟 고통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두근.
 
 
순간, 제단에 묶인 기디언의 가슴께가 일반적일 수 없는 높이로 튀어 올랐습니다.
 
 
묶여있지 않았다면, 아마 공중으로 떠올랐을 정도로 거세게 박동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보석, 저것을 꺼내지 않는다면 읽었던 일지에 나온 인간들처럼 죽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의 심장만 꺼내는 일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가슴을 가르는 순간, 그의 몸 안에서 살아있는 보석이라 불리는 죄악의 덩어리가 이어진 혈관을 끊어버린 뒤,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데?
 
 
세이블:(저렇게나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은 본 적 없다. 지금껏 봐온 건 부패한 시쳇더미, 기다란 유골들, 동물의 사체와 끔찍한 작품들. 그리고 제가 휘두른 도끼에 속절없이 쓰러져 가던 인간들. 그래, 그럼 그를 고통에서 구원해 주는 방법은 이뿐일 것이다. 도끼를 높게 치켜든다. 심장을 터트리면, 다신 이런 불경한 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 (내려치기도 전에, 과부하 된 몸에 힘이 빠지며 도끼가 나뒹굴어진다. 그 자리에 엎어져 쓰러질 뻔했으나, 끝없이 들려오는 비명에 정신을 다잡는다. 분명 이 의식에 관한 온갖 모독적인 문서를 읽었다. 분명 기관을 뒤바꾸는 문서에 관해서도 읽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주문이, 정말 시행될 수 있다면...)
 
(빠르게 몸을 돌려 유리관을 찾는다. 기디언 헤르모드! 그의 이름이 붙여진 심장! 시체건 작품이건 모든 걸 꺼내왔다면, 그의 심장도 이곳에 있어야 하지 않은가!)
 
 
 
 
시체 언덕을 살피자 눈에 들어온 빨간색.
 
 
시선을 사로잡는 유난히 더 붉은 저 빛깔, 유리관에 담긴 심장.
 
 
시체 언덕 주변엔 기디언의 심장을 포함하여, 이곳저곳 보존액에 절인 신체 기관이 유리관에 담긴 채 장식되어 있습니다.
 
 
유리관 속 심장은 시간이 멈춘 듯 건물 안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작은 심장. 당신의 주먹 크기도 되지 않는 어리고 나약한 심장.
 
 
지금 순간에도 뒤에선 날카로운 비명이 귓가를 찢고 들어옵니다.
 
 
세이블:(무엇이든 밟고 올라가 그 붉은 심장을 끌어안는다. 소중하고, 섬세하게. 제 손안에서 고동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러나 감상 같은 걸 남길 여유는 없다. 지금 들려오는 비명은 누군가의 신랑도, 바보 같은 의식의 희생양도 아닌 그 누구보다 애정하는 기디언의 목소리니까. 끝내야만 한다. 이 결혼식을, 너의 고통을.)
 
(제단 바로 앞에 유리관을 두고, 읽었던 문서의 주문을 기억해 내 읊는다. 기관 부분 교체 주문을 시행합니다.)
 
 
순간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온 건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저 어마하게 불길하고 죄스러우며 추한 감상만이 찌꺼기처럼 남습니다.
 
 
 
: 마력 10과 이성 3을 지불합니다. 지불할 마력이 부족할 경우 체력을 차감합니다.
 
 
마력이 크게 빠져나간 탓인지 시야가 일순 흔들렸습니다. 정신이 쪼개지듯 머리가 아프기까지 합니다.
 
 
깜빡, 눈을 크게 감았다 뜨고 다시금 제단 위를 바라보면 비명을 지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떨림은 멈춰있습니다. 색색거리는 나약한 숨결이 주변을 에워쌀 뿐입니다.
 
 
그리고, 자연히 유리관으로 눈을 돌립니다.
 
 
‘살아있는 보석’은 보존액과 굴절 때문인지 꽉 들어차 있습니다.
 
 
꺼내어진 이것을 본 순간 잠시 감탄합니다. 알알이 탐스러운 과실을 가득 품은 ‘석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기디언의 몸에서 자란 저것이… 정말로 석류가 맞나요?
 
 
 
: 현실 인지 판정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원할 경우 이성 판정 0/1
 
 
세이블:
SAN Roll
기준치: 36/18/7
굴림: 49
판정결과: 실패
 
 
죄악의 덩어리란, 참으로 아름다운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몸에서 붉은 피를 양분 삼고, 숨을 함께 쓰고, 온기로 키워진 과실. 생물 수천 마리의 생명을 담은 흉측한 보석.
 
 
하지만 모양이 무슨 상관인가요.
 
 
이 ‘석류’는 기디언의 피를 뽑아내고, 살점을 뜯고, 숨을 차지 해가며 키워진 기생충에 불과합니다.
 
 
결혼식의 마지막을 장식합시다. 이 빌어먹을 식의 종료를 알릴 때입니다.
 
 
도끼를 내리칠 때마다 피가 뿜어지며 보존액과 함께 유리관 안에서 뒤섞입니다.
 
 
보석을 만들 때 사용했다는 주문을 다시 들려주지 않아서일까요. 피가 몇 방울 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튀어 오르는 액체에 담긴 ‘기적’ 따윈 없습니다. 그저 끈끈하고 되직하게 흐르는 액체, 액체, 액체…
 
 
탐스러운 열매를 짓이기고 엉망이 된 자리엔 이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살덩이가 놓여 있습니다.
 
 
찍, 찌익, 푸쉭, 온갖 기괴한 소리를 내며 사라져가는 모독적인 덩어리 말이에요.
 
 
그것이 다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노라면, 뒤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기디언, 자신의 심장을 되찾은 자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말합니다.
 
 
세이블:(유리 파편과 모독적인 덩어리, 흥건하고 질척한 액체 위로 도끼를 내던진다. 그와 동시에 몸을 돌린다. 되돌아온 길. 사랑하는 나의 기디언. 얼굴에 튄 피를 손등으로 훔쳐내고, 그 아래에 다시 무릎 꿇는다. 이제 되돌아가야 할 길 같은 건 없다. 비로소, 우리가 같이 나아갈 수 있게 됐을 뿐이다.) 어디든지...
 
평생 함께하게 해주세요.
 
 
기디언:남은 제단에 묶여있는데 평생 함께해 달라는 말이 나와? (투정하듯 말을 내뱉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곁에 있을게. 이번 생에도, 다음 생에도, 다른 세계에서도. 계속.
 
 
동이 트고 있습니다.
 
 
새벽의 지옥 같던 부정을 몰아내고, 한차례 새로 태어날 뻔했던 ‘기적’도, ‘저주’도 몰아냈습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양은 여전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떠오릅니다.
 
 
잠들었던 새들이 일어나며 고요를 깨고 비상합니다. 안개 따위로 가려지지 않은 새파란 아침으로 말이죠.
 
 
결혼식을 끝내주게 망친 후 맞이하는 아침이라 그런가? 쾌청한 푸르름이 완벽하게 아름답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당! ><
 
 
세이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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