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광철아. (다가가 살며시 어깨를 잡는다. 안 그래도 더울테니 금세 손을 떼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살핀다.) 몸이 안 좋습니까? 샤워할까요?
오광철:(어깨 위에 올려진 손을 느끼고 고개를 든다. 여전히 피곤한 표정.) 그냥, 좀 더워서... 씻고는 싶은데 여기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겠어. 도와줘... 해줘~ (칭얼,,, 바닥에 대자로 뻗는다!)
백지혜:(익숙한 칭얼거림에 안도의 한숨에 작게 새어나간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어서, 더위라도 크게 먹은 거면 어쩌나 했는데...) 확실히 엄청 덥긴 하죠. 에어컨이 빨리 고쳐져야 할텐데... (작게 웃곤 허릴 굽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귀 옆으로 넘겨준다.) 안아서 옮겨 드릴까요? (아마 힘들겠지만.) 아니면, 물수건이라도 대어 드리겠습니다.
오광철:(잠깐 침묵. 그리고 옆으로 반 바퀴 굴러 엎드리곤 다리를 까딱이며 말한다.) 수리 기사 언제쯤 온대? 내가 죽는 게 빠를지 그 사람이 오는 게 빠를지 내기해도 될 거 같은데... (머리카락을 넘기는 손에 뺨을 비빈다. 지혜 손은 차갑나...?) 물수건도 옮기는 것도 둘 다 해줘. 이왕 씻는 김에 형도 같이 씻자...
백지혜:여름철이라 그런지 예약이 꽉 차서, 그래도 내일은 보러 와주시겠다 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만 잘 참아보죠. (닿은 뺨의 온도가 미적지근하다. 아무래도 자신 또한 더운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래도 그대로 두고, 오히려 더 문지르듯 괴롭힌 후 허리를 안아 일으킨다.) 흡... 네에, 함께 간단히 씻고, 물수건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오광철:아, 지금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말하는 듯 평온한 목소리, 안긴 채 칼을 잠시 바라보다 천천히 품에서 내려와 떨어진 칼을 줍는다.) 형,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줘. (주운 칼을 손 위에 올려주며 깍지 끼고, 마주 잡지 않은 반대쪽 손은 이끌어 자신의 배 위로 올린다. 안쪽에서부터 두근, 두근. 무언가 박동하는 것이 느껴졌을까...) 내 배 속에 나비가 있는 거 같아. 꺼내줄래?
백지혜:그게 무슨... (별다른 저지 없이 바닥에 내려준다. 칼을 줍는 모습부터 제 손을 이끌어 잡는 것, 그리고 배 위로 칼을 대는 그 일련의 과정을 말없이 바라본다, 가끔 숨을 들이마시기만 했다. 덥고 시끄러운 날씨에 이런 상황이나 대사까지, 어릴 때 앓았던 날의 꿈과 비슷한 감각이야...) 무슨 소립니까. 우리 처리... 꿈꿨나요?
(요즘 뭘 먹지도 않았으니 체했다거나, 소화 문제는 아닐 텐데. 아니면 그게 문제였나?) 배가... (그 위로 손을 깊게 눌러본다. 확실히 박동이 전해져 오는 것도 같은데........)
오광철:꿈이 아니야. 진짜 나비가 안에 들어있어. 언젠가부터 내 안에서 함께... (심장과 다른 속도로 뛰는 것, 나비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것을 제대로 느껴달라는 듯이 포개진 손을 놓지 않고 더 꽉 누른다.) 아, 하지만 꿈에 나비가 나오긴 했어. 자길 꺼내달라고, 문을 열면 된다고. 하지만 혼자선 할 수 없다고. (비슷한 문장을 한참 동안 중얼거린다. 점점 포개진 손에 힘이 빠지더니 다시 한번 칼이 바닥으로 떨어져 발등 옆으로 꽂힌다.) 그래서... 해줄 수 있어? 꺼내줄 수 있어?
백지혜:(배 안에... 뭔가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건 심장에서 들려오는 것도, 단순히 동맥 같은 것도 아니고 제 손에서 울려오는 것도 아니다. 그 얇고 부드러운, 친숙한 가죽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인식하니 상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배 안에 나비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까, 있어도 멀쩡히 박동할 수 없을 테니까. 다른 뭔가가 있다고...) 문을 열라는 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날카롭게 꽂히는 소리가 숨을 멎게 한다. 저 칼, 분명히 집에선 본 적 없는 거야. 사 왔다기엔 상태가 말이 아니고, 주워서 왔나? 다시 시선을 네게 옮긴다.) 꺼내다니, 지금 말입니까? 안 돼요. 해가 뜨는대로 병원으로 가 검사해 보죠. 아니다, 지금 당장 갈까요?
오광철:문을 여는 건 말 그대로 문을 여는 거야. 이 칼을 이용해,배를 갈라서... 운이 좋게도 집 근처에서 상태가 좋은 칼을 찾을 수 있었어. 수술 준비 완벽하지. 칭찬해 줘, 어서~ 이제 집행만 하면 되는데. (병원 소리에 고개를 젓는다. 미간을 잠시 찌푸렸다가 천천히 발을 떼 비틀거리며 다가간다. 귀 뒤로 넘겨줬던 머리카락이 다시 떨어져 눈을 찌르고, 상기된 뺨은 더위 때문인지 묘한 흥분감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즘 도착해 품에 안겨 고개를 부비적댄다.) ... 싫어, 남에게 내 나비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 형이 봐줬으면 좋겠어. 오직 형에게만, 가능한 한 빨리. 지금 당장. 응...?
백지혜:(배를 갈라서. 안에 들어있는 걸 꺼내는 방법은 대개 개복으로 통하는 게 당연하다. 당연히 알고 있으니까 안 된다고 한 거고, 병원에 데려가야겠다. 생각했다. 설령 배 안에 진짜 나비가 있어도 그걸 의료지식 하나 없는, 생선 손질도 어색한 자신이 해선 안 될 테니까! 집 근처에서 주워 온 녹슨 칼 같은 것으로는 더더욱. 칭찬 포인트는 한 군데도 없었다.) 배를 열고 난 다음은 어떡합니까. 나비가... (침묵) 나비가 나온 다음은 어쩌려고요? 애초에 왜 광철의 배 안에 나비가 있습니까? (전혀 알 수 없는 소릴 할 땐 직설적으로 묻는 게 나았다. 적어도 이 대상한텐 그랬다. 우선 씻기고 제정신으로 만들자, 하고 생각했으나 제게 안겨 애원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배 위에 얹은 손을 올려 어깨를 감싸안고 다시 시선을 맞춘다.) 그런 짓 했다간 죽을지도 몰라요.
오광철:(칭찬은? 기대 가득했던 표정에 한순간 실망이 떠오른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았는데... 다시 품에 고개를 비벼댄다. 묻는 말에 대답하는 건 잊지 않고...) 이후에 어떻게 되는 건지는 나도 몰라. 왜 나를 선택한 것인지도. 하지만 나비가 나가고 싶다고 했어. 형을 만나고 싶대. 같은 것을 느끼고 싶대. (시선을 마주하자 나비가 크게 날갯짓하는 것이 느껴진다. 가까운 거리인 만큼 발돋움을 해 입을 맞추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심지어 상대의 손이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다면 더욱. 입술과 입술을 맞댄 채 몇 초간 숨을 참다 떨어진다.) 형이 날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진짜로 죽어도 형의 손이라면... 이 말은 굳이 꺼내지 않고 속으로 삼키기로 했다.) 정말 좋아해, 해줄 거지?
백지혜:(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에 입술이 달싹인다. 평소 같았다면 이렇게 부탁하는 것에, 자신을 의존하는 것에, 좋아한다는 그 한마디를 위해 어르고 달래 원하는 바를 들어줬겠지만... 어디까지나 평상시에 말이다.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는 간지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애인이 이토록 사랑스러운 건 무슨 연유일까.) 그 나비 말고 광철은요. 괜찮습니까? 아플 거예요... 전 뭔지도 모를 나비와 만나려고 광철을 아프게 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안 꺼내게 된다면? 말을 끝마치자 자연스레 떠오른 물음이 꼬리를 물고 연달아 이어지며 머릿속을 꿰찬다. 그대로 광철의 배 안에서 살게 될까? 아니면 죽어버릴까? 꺼내지 않아서 그걸로 더 위험해진다면... 어지러움에 눈 감으려던 차 입술이 맞대어져 온다. 그대로 굳은 듯 바라보다 고갤 숙여 다시 한번 입을 맞대고 호흡을 나눈다. 이럴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무더위에 이미 뇌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 듯 했다.) 제 손으로 찌르고 살리는 건 자신 없지만요... (물론, 당연히 그냥 죽게 둘 생각도 없다. 죽어버린다면 따라 죽는 게 나을 테니까. 그것보단 함께 살아가는 편이 더 나을 테고.)
..........................
(몸을 숙여 바닥에 꽂힌 칼을 주워 든다. 희미한 빛에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 보고 칼의 평면 부분을 문지른다.) ...나비가 이걸 쓰라 덥니까?
오광철:(두 배로 느껴지는 고동은 평소보다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서... 머리카락을 파고드는 손의 감촉에, 자신을 걱정해 주는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에 무심코 웃음소리를 흘리게 만들었다.) 괜찮아. 나비가 꿈에서 알려줬어. 내가 아프면 자기도 곤란하니까, 이 방법을 쓰라고... 나는 알려준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거라 잘 모르겠지만, 형은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말과 함께 작은 종이를 내민다. 막 자다 깨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서 적은 것처럼 삐뚤빼뚤한 글씨. 하지만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입을 맞추는 내내 더위와 부족한 호흡으로 인해 정신은 멍했지만 한 가지, 머릿속에 기쁨이란 감정이 가득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나비를 꺼낼 수 있으리란 것과 그리고 그걸 이루는 것이 지혜, 형이라는 점까지. 덕분에 입맞춤을 끝낸 뒤에도 떨어질 생각 없이 꼭 붙어 안은 채 대화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왜 자신 없어. 형 남편이 칼에 몇 번이나 찔리고 살아남은 사람인지 잊은 거 아니지? 몇 번 잘못 찔러도 안 죽어. 괜찮아.
(음...) 칼은 아무거나 써도 상관없을걸...? 그냥 가장 날카로워 보이고 형도 자주 만져봐서 손에 익을 법한 것을 찾느라. (녹이 손에 묻는 것도 모르고 따라 칼을 만져본다. 멀쩡한 거 같은데 더러운 게 조금 묻었나...?) 다른 좋은 도구 있어?
백지혜:(저렇게 웃는 광철이나, 나비가, 꿈에서 라는 단어들까지. 여전히 현실성 없으며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 뿐 영 내켜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확인해 보는 것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제게 안긴 광철의 등을 토닥여주며 가쁜 숨을 내쉰다. 눈에 힘이 풀려 읽은 글씨들이 몽롱하다. 삐뚤빼뚤하고, 영 수상쩍은 내용... 그러나 눈에 익은 글씨체만은 안도감을 주었다. 이게 우리들의 해답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사랑하는 오광철의 부탁이지 않나. 그가 아니라면 누굴 믿을 수 있지? 병원 의사들을 믿을 수 있나? 내 말은, 그들이 분명 확실한 실력을 갖추곤 있겠으나 제 애인을 안심시켜 주고 만족시킬 순 없을 것이다. 나는 그를 책임지기로 한 사람이니까 해야만 하고.) 그렇다고 흉터가 안 남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 말대로... (다시 배 위에 손을 얹는다. ' 몇 번이나 찔리고 살아남은 ' 대목의 위치를 문지르며 박동을 느낀다. 사실, 이젠 좀 궁금하기도 하다. 이 안에 든 건 뭐길래 그의 몸에서 숨을 쉬는 걸까. 나비가 나가고 난 뒤의 상처는 그가 가진 흉터보다 더 크게 자리 잡게 될까? )
깨끗한 도구를 쓰라고 적혀있으니, 하겠다면 부엌용 식칼이 좋겠습니다. (녹슨 칼을 손에서 빼내 바닥에 내려둔다.) 그리고... 광철이 조금이라도 아파 보인다면 그만둘 테니까...
깨끗한 칼을 부엌에서 꺼내와 순서대로 피를 떨어트리면 칼은 달빛을 반사해 희미하게 빛나다 다시 흐려집니다.
오늘의 수술 장소는 피를 빼기에 좋은 욕조 안쪽, 잠옷 셔츠를 풀어헤친 광철은 펜으로 가슴 아래부터 배꼽 위까지 긴 줄을 긋습니다. 대략 13cm 정도 됩니다. 오늘의 절취선이네요.
─배가 길게 갈라지며 절개가 끝납니다. 살이 조금 너덜너덜한가? 여름이라 그런지 유독 피 냄새가 고약한 것도 같습니다.
참고로 광철은 잘 살아있습니다. 갈라진 배를 내려다보며 그 틈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정말 나비가 있을까요? 틈의 너비가 좁기 때문에 안을 들여다보려면 갈라진 살을 잡고 벌려야 합니다.
백지혜:나비는, 아직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길게 갈라진 자신의 배를 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프지 않으니 신기하기만 할까? 나비가 보고 싶은 건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틈 사이에 손을 올린다.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그만큼 쉽게 뭉개져 버릴 것 같아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칼을 잡지 않은 손은 제 소명을 다했다는 듯 벌벌 떨려온다. 표정과 갈라진 선의 틈을 번갈아 보며 천천히 밀어낸다.)
오광철:느끼기론 피부 바로 아래에 있는 거 같았는데. (자세히 보려는 듯 고개를 들어도 안쪽까진 잘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듯 끙, 하는 소리를 내다 욕조에 몸을 푹 기댄다.) 형이 보고 어떤지 설명해 줘.
벌리면 어둡게 가려졌던 뱃속이 보입니다. 그 안에는…
나비는 없고 내장 같은 게 있습니다. 굳이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붉고 거대한 덩어리입니다. 색색의 다양한 장기가 제자리에 차곡차곡 놓여있지 않습니다.
백지혜:나,나비가... 나비가, 아니잖아요. 이건, 나비가 아닙니다. (다급하게 손을 붙잡는다. 뭔가 잘못됐다는걸... 이제서야 눈치챘다. 왜지? 왜 그러겠다고 했지? 배 속에 나비 같은 게 있을 리 없는데! 그럼 이건 뭐지? 광철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해야 하지...?)
오광철:나비가 아니라니? 그럴 리 없어. 내 안에 있는 건 분명히 나비였는데... (피를 찰박거리던 탓에 붙잡은 손 사이로 붉은 액체가 떨어진다. 나비가 아니라면 무엇이 안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손 사이에서 떨어지는 액체를 바라보며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직접 보고 판단하자'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그럼 꺼내줘. 제대로 확인하면 정체를 알 수 있겠지.
백지혜:제, 제대로 보신 겁니까? 꿈속에서 보셨다면서요. 나비를! 아니, 아닙니다. 어차피 꿈은... (뇌가 만들어 보여줄 뿐인 시각 영상이다.. 사실을 기반한 정보일 리가 없는데. 내가 잘못됐다는 걸 알려줬어야 했는데...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뇨, 안 됩니다. 광철은 지금 상황으로도 충분히 위험해요. 더 피를 흘리면 죽어버릴 겁니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죠.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사색이 된 얼굴로 갈라진 틈을 막듯 가린다.)
오광철:제대로 봤어. 꿈에서 엄청 크고 화려한 붉은색 나비가 몇 번이나 나왔는데... 그냥 내가 직접 꺼내서 볼래... (붙잡은 손을 쳐낸 뒤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다... 피를 많이 흘렸나. 머리가 핑 도는 느낌에 잠시 욕조 틀을 붙잡고 정신을 붙잡는다. 새삼스레 피가 빠져나가며 며칠을 잠들지 못하게 하던 더위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나비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되겠다는 점이 중요할 뿐.) 말했잖아... 나비는 형에게만 보여주고 싶다고. 형은 날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거야? 나 괜찮아. 안 죽어. 비켜줘. (애원하는 듯 몸에 짧은 입맞춤을 남기며 틈을 가리는 몸 사이에 억지로 손을 밀어 넣는다. 직접 꺼내지 못하겠다면 내가 하겠다는데 왜 방해하지...)
백지혜:잠...! 잠깐만요.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막은 틈 사이 파고드는 손을 잡아 붙든다. 흠뻑 묻어난 피에 몇 번이고 잡은 곳이 아래로 미끄러졌지만 놓지 않는다.) 일어나는 것도 힘드시잖습니까. 지금 더 움직이면 정말로...! (대체 나비가 뭐길래 이리도 집착한단 말인가. 나비를 좋아했던가? 처음엔 더위에 잠깐 정신이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광철은 정말, 정말로 이상하다. 뭔가에 씐 것 같아. 이대로 두면 죽을 거야. 그는 직접 보기 전 까진 만족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이걸 꺼낸다면? 그는... 살아있을 수 있나? 애초에 장기가 없는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부터 이상한 일이다. 아니, 인간의 장기 대신 어떤 기관인지도 모를 것들이 들어찬 몸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곤 잡은 손을 위로 올린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갤 돌린 지 10초. 결심할 것도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없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네 말을 듣고 배를 갈랐으니, 확인해 보겠다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안 죽는다는 거........ (틈 사이에 손을 집어넣는다. 들어찬 것들에 손가락을 걸고 위로 올린다.) 지키셔야 합니다.
이게 광철이 말한 ‘나비’일까요?
절개 부위를 넓혀 억지로 꺼냅니다.
살 찢어지는 소리가 나지만 뒷일을 생각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덩어리는 눈으로 봤듯이 뱃속에 딱 들어갈 만한 크기입니다. 지혜의 두 손에 묵직하게 들릴 정도네요.
백지혜:(입안이 확 들어차며 짓눌리는 감각에 숨이 막힌다. 이런 게 광철의 배 안에서 박동하고 있었다고? 대체 어쩌다가, 뭐가 문제였지? 그러나 지금 와서 그런 것들을 되짚고 반성하기엔 늦었다. 배를 가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의 손목을 붙들고 고개를 뒤로 물린다. 짧게 들어온 공기를 한껏 탐한 후 간신히 내뱉는다.) 시, 싫어요...! (그대로 어깨를 잡아 짓누른다. 다시 네 위에 올라타 얼굴을 마주한다. 어떻게 그리 기뻐하는 걸까. 네 배에서 나온 건 나비가 아닌데. 입안에 남은 피 맛이 역겹고, 비릿한 내장의 감촉이 끔찍했다. 그랬지만, 그래도 그게 네 사랑이라고 한다면.) 이런 방식은, 싫습니다. (이유조차 모르면서 입 끝을 비틀어 올린다. 볼품 없이 떨리는 목소리, 매끄럽지 않은 웃음을 띠고 입을 그 바닥에 맞춘다. 더듬어 흩뿌려진 내장을 베어 물고, 혀에 올리고, 목 안쪽으로 밀어 넣어 마침내 삼킨다. 구역질이 올라와도 내뱉을 순 없다. 이게 네 사랑이라면, 이 나비가 네 사랑이라면, 나는 그걸 어떤 형태로든 탐하고 싶으니까.)
오광철:(기뻐하는 이유는 그야 내 속에서 움직이던 것의 정체를, 그것이 가진 의미를 깨달았으니까. 그리고 그걸 공유할 방법 또한 알게 되었으니까. 짓눌린 어깨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지금 몸 상태로 쳐낼 수 있을까 재보던 중 들려온 떨림 가득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다. 아. 내 나비를 먹어주는구나. 우리가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겠구나! 어지러운 시야 속 오로지 나비를 입에 담는 입만이 눈에 들어온다. 여태껏 보아온 수많은 모습 중 볼품없이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삼켜 받아들이고 탐하는 지금의 모습이 가장 사랑스럽다고 확신할 수 있다.) 미안해. 형이 싫은 방식으로 사랑을 전해서. (팔을 뻗어 목을 감싸 끌어안는다. 더 이상 무더운 여름의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건 등 뒤로 느껴지는 욕실 바닥의 타일이 시원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빠져나가는 피는 체온을 떨어트리고 있다. 그러니, 내가 완전히 차가워지기 전에.) 사랑해. 꽉 안아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