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거...거미....) 아침 거미는 죽이지 말라던데요. (황급히 물티슈를 찾아 닦아준다...) 그나저나, 고민이라니?
오광철:응? 아침 거미는 왜? (손을 다 닦으면 물티슈로 책상 위에 남은 흔적까지 닦아낸다. 끈적이는 것이 남아있지 않은지 반대쪽 손으로 손끝과 테이블 위를 짧게 문지른다.) 그런 게 있어. 별거 아니니까 다 해결되면 말해줄게. 기대해 줘~
백지혜:뭐였더라. 가족 거미들이 다같이 복수하러 찾아오기 때문에? (분명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만,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옷 속에서 거미라니... 옷장에 거미줄을 쳤나? 나중에 확인해 봐야지. 볶음밥을 입에 넣고 스무번 씹은 후 삼켜 넘긴다.) 너무 늦게 오진 마세요. 외롭습니다!
오광철:음... 그래? 앞으로 안 죽일게. (형 음식 엄청 느리게 먹는다. 숟가락 내려놓은 뒤 식사하는 백지혜의 모습 한참 구경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응. 일찍 들어올게. 이따가 봐.
백지혜:광철은 왜 이런 곳에... (광철과 연락이 두절된지 이틀째 되는 날에 실종신고를 넣었다. 혹시 그 고민이라는 게 친가와의 문제인가 싶어 찾아가도 봤지만, 그곳에서도 볼 수 없었고. 혹시 상대 조직에게 유괴 납치를...?! (혹시 몰라 뽑아온 현금다발을 공장 앞에 잠깐 내려두고 스마트 폰을 켠다. '광철, 저 공장의 문 앞입니다.' 전송...)
어디선가 벨소리가 들립니다.
소리의 출처를 찾아보고자 하면... 공장 입구 쪽이네요.
백지혜:(앗. 이 앞인가... 들어가기 전 HAPPY GRIZZLY GUMMY FACTORY를 검색한다.)
백지혜:(종이를 든 손이 멈칫 하고 떨린다. 정말 오광철이 준비한 설문조사지일까? 대체 무슨 필요성에 의해...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 본인이 제일 잘 알텐데. 한참 머뭇거리다 천천히, 느리게 말을 이어간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공장에 찾으러 올 리도 없잖아요...
백지혜:(저게 무슨 소리야.) 광철, 괜찮습니까?! 놀랐잖아요. 이게... 이게 다... (손을 뻗어 붙잡곤 몸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무슨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나가죠. 여긴 위험합니다.
오광철:응? 아니. 나가면 안 돼. 장난 아니야. 여기서 끝까지 있어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어. 나랑 형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면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될 수 있어. 이렇게 날 걱정할 일도 없어져. 좋을 거 같지 않아? (아무리 살펴도 몸엔 자그마한 생체기 하나도 없다. 오히려 기분 좋은 듯 방긋방긋 웃고나 있고...) 싫어?
백지혜:하나가 된다니, 밖에 있는 것들 처럼... 말입니까? 아니죠? 그런걸 바랄 리가 없잖아요. 광철... (이상하다. 오광철은 평소에 그런 걸 신경쓰지 않는데. 오히려 무심하다면 굉장히 무심했지. 이해라던가 걱정이라던가 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분명 미치거나 뭐에 홀린 걸 거야..! ) 혹시, 제 잔소리가 심했었나요? 정말 광철을 걱정해서 한 말들이긴 했지만... 그건, 나중에 가서 따로 얘기합시다. 집으로 돌아가요.
오광철:밖에 있는 거? (문 쪽을 바라보며 미간 찌푸린다. 저기 뭐가 있었더라. 그러다 생각난 듯 고개를 든다.) 아~ 저거 실패작. 우리는 괜찮아. (한 걸음 다가가 백지혜의 손을 잡는다. 엄지로 손등을 살살 문지르다가 백지혜의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싸게 한다.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고 속삭이듯 말한다.) 형이 날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단 거잖아. 이대로 돌아가면 난 다시 귓가에 속삭이는 불안에 휩싸일 거야. 그러고 싶지 않아.
... 아, 맞다. 가족실을 보여줄까? 하나가 되는 방법을 알려줄게. 보고 나면 형도 안심할 거야.
백지혜:실패작이라니. (아무리 실패자이라 해도 저정도라면 성공작도 그닥 아름답진 못할 거 같은데... 손등을 문지르는 것과 뺨으로부터 전해진 온기가 평소와 같으면서도, 그 자체가 너무나 이질적이라 미간을 좁힌다. 그래, 따르는 척 하고 어떻게든 밖으로 데려가는 거야. 그러려면 저 문으로 나가야겠지만... 어쩧게든 할 수 있겠지.) 광철, 원래 사람과 사람은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순 없는 겁니다. 저는 그게 저희 관계에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불안이라니, 제가 평소에 잘못했습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가족실이라면, 대피지도 위에 덧그려진 그건가? 오광철이... 그린건가?) 우선 알겠습니다. 뭐든 좋으니 여기선 나가도록 해요.
오광철:나도 며칠 전까진 사람은 완벽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생각했었으니 형 잘못 아니야. 아마... 거미 한 마리가 귀에 들어간 이후로 갑자기 불안해진 거 같아. 뭔가가 속삭여. (손을 놓은 뒤 피크닉 테이블로 다가간다. 위에 놓인 젤리 하나를 입에 넣는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그것을 삼킨다.)
백지혜:(귀에 거미가 들어갔으면 이비인후과에 가야지 폐공장에 가면 어떡해...!!!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은 건 당연하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것도 맞지만 그런 방식으론 할 수 없다. 오광철이 제정신이 아니니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언제나 함게하고 싶은 건 이곳에서 괴생명체로 지내는 게 아닌 우리의 집에서 평소처럼 지내는 일이니까.) 저는 됐습니다. 아직 하나가 되겠다고 결정한 건 아니에요. 역시 그만두죠. 귀에 있는 거미라면 제가 빼내드릴 테니까...
오광철:아직 결정한 건 아니었구나. (옷 주머니에 젤리를 가득 채워 넣다가 뒤돈다. 아쉬운 듯 입을 달싹이다 고개를 젓고피냐타들이 가득한 복도의 문을 연다.) 이제 와 그만둘 수는 없는데. 일단 가볼래? 형도 보면 분명 생각이 바뀔 거야. 하나가 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