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철:그런데 거울과 눈싸움을 했는데 어떻게 지는 걸까? 거울은 날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일 텐데.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 그 시선엔 평소완 다른 의심과 경계가 실려있다.) ... 내 얼굴 내가 봐서 뭐 하는데? 여기 어디야? 그 목걸이는? 나 형에게 그런 거 선물한 적 없어. (심호흡...) 너 우리 형 맞아?
백지혜:거울 속에 있는것도 광철이니까, 어느쪽이 지든 똑같은 거 아닐까요? 오늘도 엉뚱한 호기심이 많으시네요.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손을 뻗어 머리칼을 매만진다.) 그야 광철을 사랑하니까 그렇죠. 여긴 제 탑입니다. 마법의 탑. 아. (제 목에 걸린 목걸이를 손으로 쥐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궁금하십니까? 비밀이에요! (환한 웃음!)|
저는 백지혜잖아요. 당신은 내 인형이고.
오광철:달라. 거울 속 나는 사람이 아니었어. 팔다리마다 관절이 드러나 있는 인형 비슷한 거였단 말이야. 나 인형에게 눈싸움 졌어. (머리를 만지는 손길에도 시선은 떨어지지 않는다. 의심스러운데...) 마법의 탑이고, 목걸이고 다 됐으니까 집으로 돌아가자. 나 이런 옷 불편해. 숲보다 바다가 좋고, 벚꽃은 집에서도 볼 수 있어. (상대의 웃음이 밝아질수록 이쪽은 뚱해진다. 마음에 안 들어 전부. 미간이 좁아지던 순간 들려온 소리에 반응한다.)
... 인형? 내가? 저 이상한 거울이 아니라?
백지혜:응? 아니에요. 광철은 인형입니다. 이 탑에 혼자 있기 외로워서 제가 만든, 제 사랑하는 인형. 광철이 인형이니 거울에 인형이 비춰지는 게 당연하죠.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을 내려 얼굴을 감싼다. 살살 문지르듯 쓰다듬다가, 그 위로 입맞춤 한다.) 우리의 집이라면 이곳인 걸요...영원히 사랑할 우리의 보금자리!바다는 여름이 되면 같이 보러 가면 되고, 이 숲의 벚꽃이 제일 예쁩니다. 바깥은 위험해요. 위험한 곳엔 가면 안 됩니다.
불쌍하게도. 고장이 나셨군요. 가끔 당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믿더라고요. 걱정 마십쇼. 재료가 다 모이면 고쳐드릴 테니까.
오광철:(의자에서 일어나며 상대를 밀어낸다. 입 맞춰진 곳을 손으로 감싼 뒤 한 걸음 물러나면 잠시 정적과 의자 삐걱이는 소리만 공간에 울려 퍼진다.) 형 왜 이래? 오늘따라 이상해. 난 고장 나지 않았어. 이거 봐, 사람이야. (감싸고 있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겉으로 드러난 관절이라곤 없는 인간의 손인데. 거울 속 인형 모습인 나와는 다른데.) 나 집에 갈래. 이상한 마법사가 아니라날 사랑해 주는 형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거야. 애초에 위험한 곳에서 살아온 사람이니 위험한 곳에 잠시 간다고 해서 문제 될 것도 없어. 비켜. (보닛의 끈을 풀어헤쳐 바닥에 던져놓고 문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백지혜:(밀려난 채로 가만히, 그대로 가만히 눈을 깜빡인다. 자신을 밀치고, 화내고, 손을 확인하라며 내미는 것애도 꿈쩍 않던 것이 나가겠다는 한 마디에 바로 몸을 일으킨다.)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당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은 저 하나 뿐이잖아요. 제가 사랑하는 것도 당신 뿐인데.여긴 줄곧 우리 둘 밖에 없었는데.(그러나 더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손짓 하나로 큰 모포를 꺼내와 사랑하는 이를 감쌀 수 있었고, 다가가지 않아도 그가 제 품에 와 안기게 될 테니.) 숲에는 뱀이 나오고 길이 험난하며, 해가 일찍 저물어 어두워 질 거예요.
(정황상 불사의 마법사라는 것은 형을 흉내 내는 그 마법사일 테고, 그가 만들었다는 인형이 나인 거겠지. 그렇다면 공허한 것도 당연하지. 난 가짜 인형이니까! 사람이니까! 일기장 대충 바닥에 던진 뒤 한 층 좋아진 기분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본다. 여전히 창문 밖은 처음 보는 숲일까?)
바닥에 내팽겨친 일기가...
포르르 날아와 당신 품으로 들어옵니다.
오광철:응? (다시 던진당.)
챙겨달라는 거 같지만, 무심하게 내팽겨둬도 되겠습니다.
일기는 던져졌다.
▶ 창문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위치상으로 보면, 아마 어제의 방과 옆 방인게 아닐까요.
오광철:(창틀에 기댄 채 고개를 밖으로 쭉 내민다. 창밖에 진짜로 뱀이 있나?)
흠... 잘 안 보이는데...
숲은 넓고 탑이 높다는 건 알겠습니다.
오광철:(여기는 몇 층인지, 위로 몇 층 정도가 더 있는지 대충 살펴본 뒤 옷장으로 향한다. 불편한 옷 벗어 치워야지!)
:이곳은 얼추 짐작하건데 2층 같습니다. 탑이 몇층까지 있는지는... 글쎄요.
▶ 옷장
옷장 안에는 인형에게나 입힐 법한 예쁘고 거추장스러운 옷들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한벌 한벌 정말 사랑스러운 옷들이지만, 이것을 입고 돌아다니기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 입고있는 옷이 그나마 제일 편하다고 느껴질 정도네요.
얌전히 장식장에 전시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면 딱히 갈아입을 필요는 느끼지 못할 만한 옷들이에요.
오광철:(옷들을 넘겨볼수록 표정이 굳어간다. 이런 걸 입고 어떻게 움직일 수 있지? 다 이런 옷이라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옷으로 로프를 만들어 탑에서 뛰어내리겠단 목표도 애매해지는데... 원래 목표했던 것은 잠시 미뤄두고 테이블 위를 살핀다. 에그타르트 맛있어 보였는데 나간다고 하기 전에 한 입 먹고 나갈걸...)
:▶ 테이블
테이블 위에는 편지가 놓여있습니다.
오광철:(편지 들고 다시 침대 이불 속으로... 누워서 편지 까본당.)
(집에 없다? 그 말은... 도망가라는 거구나!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 속 옷들을 둘둘 말아 이불 속에 넣어둔다. 이불이 적당히 부풀었으면 마지막으로 침대에 두고 가는 게 없는지 확인!)
계획적인 오광철...
여기서 더 챙길 건 없어 보입니다.
방 밖으로 나가면 위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그리고 발코니가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방 하나도!
오광철:(어릴 때 가출 계획을 참 많이 세웠지... 한 번도 실행한 적은 없었지만. 방문을 열고 나간 뒤 다른 방으로! 열쇠는 보통 집주인 방에 있을 테니까!)
방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침대가 하나 더 있고, 책상이 있고, 책장이 있는 정도입니다.
여긴 그 마법사의 방인 걸까요?
하지만 평소 잘 쓰이지 않는 것인지 그다지 생활감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오광철:(마법사의 방이 맞나? 주인 확인 겸 침대로 가서 냄새 맡아본다. 아는 냄새인가...?)
백지혜:전부 알아버리셨군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없었어야 하는데. 저 때문에 광철이 힘들어 졌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랑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백지혜는 목걸이를 벗어 당신의 손에 쥐여줍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쥐여진 이것이 무엇인지, 당신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백지혜에게 넘겨주었던 당신의 힘입니다.
백지혜:이걸 부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어요. 다시 당신의 마법을 전부 되찾는 겁니다.
하지만… 만약 다시 한 번 모든 기억을 지우고 싶다면, 또다시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 목걸이를 저에게 돌려주십시오..이번에야말로 당신을 위한 최고의 마법사가 되어보이겠습니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당신의 인형은 그것을 따르게 될 겁니다.
당신만을 사랑하는 당신의 인형이니까요.
오광철:마법으로 다시 세상을 복구시키는 건 안 돼?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탑 주변의 모습을 원래 우리가 살던 곳처럼 바꾸는 건? 그 안에 움직이는 사람들도 몇 세워놓고.
백지혜: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도 될 겁니다. 하지만 금새 질리고, 더 큰 슬픔에 빠지시는 게 아닐지... 전 당신이 걱정돼요.
만들어낸 인형도 가짜였는데.
그 속에서 움직이는 인간이라고 완벽하진 않을 겁니다.
오광철:(내 마법 보잘것없어~! 평소에 주변인 관찰 좀 하고 살걸. 형이라면 좀 더 완벽하게 인형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죽는 건 안 된다고 했으니까, 그럼 긴 잠에 드는 건? 다시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길게. 어쩌다 한 번 깨어나도 한 번 인사만 나누고 다시 잠드는 건 어떨 거 같아? 가능할까?
백지혜:(밤시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얕게 웃음짓는다.) 저로서는 방법을 모르겠지만, 광철이라면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 주문을 알고, 마법을 다뤘으니까.
잠에 든 당신을 언제나 바라보고 있을게요. 잠에서 깨면 아침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외롭지 않도록,영원히.
오광철:방법을 찾아낼 수 있겠다는 건 당장은 할 수 없을 거란 뜻이잖아.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긴 방을 나와 반파된 방으로. 길게 이어진 숲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형은... 너는, 영원히 잠자는 나를 기다리는 것과 내가 아는 형을 완벽하게 따라 하는 것 중 무엇이 쉬울 거 같아?
백지혜:(말 없이 그 뒤를 따르며, 그가 눈에 담은 것들을 흘겨본다. 인형의 눈에는 그의 긴 시간도, 고독도, 불사의 저주도 흐릿하며 와닿지 않는다. 다시 고개를 들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시선에 온전히 담겨지며 마음에 완전히 닿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불사의 마법사 뿐.) 저는 당신을 위해 무엇이라도... (처음 이 제안을 건넸을 때도 이 방에 있었던 것 같아. 그의 절망, 괴로움과 고통 역시 알 수 없는 것이었지. 허나 그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었다. 사랑하기 위한 인형이기 때문일까. 함께 있고 싶은 욕망 뒤에 다시 절망하는 그를 볼 수 없다는 마음이 따라붙었다.)
...저는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완전히 따라할 수 없습니다. (진실을 고한 뒤 인형은 침묵했다.)
오광철:됐어, 그럼. (손에 쥔 목걸이를 밖으로 던진다. 어디로 떨어지는지 확인도 안 하고 몸을 돌려 눈앞에 있는 자를 마주한다.) 부순 뒤 새로 만드는 것도, 역할을 바꾸는 것도 실패했다면 이번엔 새 이름을 지을까. 너를 계속 백지혜라 부르면 또 생각나고 슬퍼질 테니까. 다시 미쳐버릴 테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목걸이는 사라졌으니 잘못되어도 우린 되돌릴 수 없어. 이제부터 마법사와 인형이 아닌 두 명의 사람으로서 같이 사는 거야. (침묵하는 인형의 품에 머리를 기댄다. 다행이지. 나는 사람에게 금방 정을 붙이는 타입이고, 우리에게 시간은 영원하니까. 형을 잊고 너를 사랑하고자 노력하면 언젠가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넘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분명, 그럴 거야. 그래야만 해.)
백지혜:(포물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목걸이를 바라본다. 반짝, 한순간 눈부시게 발산하는 녹색 빛에 눈매가 일그러진다. 이 숲만은 마법사의 불사를 나눠가졌으니, 언제라도 저것의 반짝임을 되찾을 수 있겠지. 하지만 묻어두고자 한다면 그것 또한 언제까지나... 한 발 늦게 그와 시선을 마주한다. 동시에 몸을 가까이 대어 품에 안았다. 그리고 손을,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입 맞춘다. 그 행위엔 경건한 맹세도 굳건한 의지도 없었다. 그저 당신을 영원토록 사랑하겠다는, 태초부터 지녀왔던 마음만을 발산했다.) 제게 새 이름을 주세요. 새로운 모습도 좋습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문장의 끝마다 그의 손마디에 입 맞추며 웃음 짓는다. 영원한 것은 그의 목숨 뿐이지, 정신만은 닳아 없어지지 않던가. 기억도 마음도 긴 시간에 따라 천천히 갉아먹힐 것이다. 휘발될 것이다. 그 위에 새로움을 덧그려 달라고, 간청 받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할 거야. 그 사실이 갉아먹힐 틈도, 휘발될 새도 없이 사랑을 속삭일테다. 그의 몸이 내게 닿아온 순간 우리의 저주가 맞닿아 꼭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 처럼 느껴졌다.) 사랑해요. 내 사랑. 언제까지나.
오광철:(품에 안겨 손에 입 맞추는 모습을 바라본다. 인형의 몸은 인간보다 차갑고, 단단한 거 같다는 감상을 새삼스레 남겼다.) 당장 생각나는 이름이 없는데, 내 이름을 줄까? 정확하게 말하면 내 이름이 될 뻔했던 이름인데...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에게 들었던 두 음절을 중얼거린 뒤 이 얼굴에 은성이란 이름은 참 안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희미하게 웃는다. 동시에 오랜만에 웃었는데 웃는 방법을 잊어버리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었고. 그러나 동시에 훅 찾아온 불안이 몸을 감싼다.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동등한 인간이 아닌 인형으로 보면 어떡하지. 서서히 호흡이 빨라진다. 네게 잡히지 않은 손이 옷자락을 쥐어 깊은 주름을 남긴다.) 우린 이제부터 여태까지와 전혀 다른 일을 해야만 해. 앞으로의 일은 걱정과 두려움뿐인데 어째서 너는 이리도 당당하게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거야? 나에게도 확신을 줬으면 좋겠어. (목걸이를 던질 때까지의 당당한 모습은 없고, 방에 남아있는 것은 영원한 상처를 두려워하며 망설이는 사람 한 명이 전부이다.)
백지혜:당신이 주는 거라면 저는 뭐든 좋아요. 게다가 광철이 한 때 가졌던 것이라고 하니 더 가까운 기분이 들어서... 다시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난 당신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으니까. (품에 안은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부드럽고, 따뜻하며 가엾은 사람. 내가 사랑하는...) 오광철. (이름을 부르며 기분 좋은 웃음 소리를 낸다. 인형으로서 살 때 말곤 본 적 없었던 그의 표정에 더욱 더 환한 미소로 돌려준다. 그대로 한참을 응시하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다시 손을 내민다.) 광철의 몸이 떨리고 있습니다. 숲의 해는 일찍 저무니까, 우리 안에 들어가서 마저 얘기할까요? 따뜻한 차랑... 에그타르트를 내어오겠습니다. (지금 역시 그가 말하는 불안, 걱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아예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하는걸까. 방금 있던 일로 마법 없이 생활해야 하긴 하겠지만, 그게 아주 큰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매일 아침 당신을 위해 글을 쓰고, 필요한 것을 구하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일. 과거에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을 말하는 일 뿐인데. 그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실은, 그 역시 아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는... ) 당신이 불멸하게 됨으로서 내 사랑이 시작됐으니까. (아직 잡지 않은 손을 붙잡아 이끈다. 한 걸음, 탑 안 쪽으로. 반파된 방을 지나 계단에 닿을 때 까지 계속 해서 뒷걸음 쳤다.)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주입니다. (단 둘만있을 탑에서 아주 작게 속삭여온다.)
오광철:은성. 내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님이 지어주셨던 이름이야. 내 이름이 다른 이름이 된 건 오늘 네게 이 이름을 주기 위한 것이었나 봐. (안겨있던 온기가 멀어지자 아쉬운 듯 시선이 떨어진다. 그리고...)
(계단까지 가는 내내, 시선은 잡은 손과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윽고 계단에 다다르면 혹시라도 계단 아래로 네가 떨어지기라도 할까 잡은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것을 보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부서진 후에 다시 고치면 될 것을 왜 굳이 붙잡았지.) ... 아.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고백하는 말은 확신이 된다. 이제 고개를 든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다 부서진 방이나 붙잡힌 손이 아닌 눈앞의 사람이다.) 이번에 있었던 역할 바꾸기로, 방금 나눈 대화들로, 내가 네게 새 이름을 지어주며... 너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었나 봐. (아직 형이 그리워서 괴롭고 슬프지만 앞으로 둘이 쌓아갈 기억들로 언젠가 전부 덮어씌울 수 있을 거 같단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형보다 너를 더 생각하게 되었을 때 네가 가장 바라는 문장을 들려줄 수 있게 되겠지.) 내가 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그리고... 항상 고마워.
(그대로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간다.) 4층 청소는 천천히 하자. 일단 오늘은 네가 말한 것처럼 따뜻한 것을 마시며 여태까지 우리가 놓쳤던 것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어제 먹지 못했던 에그타르트도 먹고 싶어. (식사는 하지 않는 거 같았는데, 미각은 살아있나?) 일단, 2개 준비해 줄래?
백지혜:은성. 몇 번을 더 말한 후에야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입안에 공기를 머금고 꿀꺽 삼킨다. 실체가 없는 글자라도 그렇게 소유하고 싶었다.) ...다행이에요. 다행입니다. 저는 광철의 이름이 좋았거든요. 발음하면 입으로 둥근 것을 굴리는 느낌이잖아요. 이렇게. (오-광-철. 한 음 한 음 발음하며 입 모양을 가르킨다.) 지금 이름이 광철이 된 이유도 알려주시겠습니까? 그 전에, 잠시만 기다리세요!
(강하게 붙잡아준 손은 계단을 다 내려가고 나서도 놓지 않았다. 느껴지는 압박감이 기분 좋았다. 이대로 산산이 부서져 손을 잃는대도 괜찮을 정도로. 식당 문을 열고 의자를 빼어 다시 그를 돌아본다.) 앉아 계시면 차와 에그타르트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어제오늘 혼란스러움에 식사도 잘 못 하셨죠. 많이 걱정했습니다. (오광철이 겨우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 일에 죽지 않는 건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지 못한다.. 절망했을 땐 한 달가량을 먹지도 않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 불멸인 그는, 그럴 때만큼은 이 세상에서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밥을 먹는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 생의 증명인 셈이다. 끔찍이 지루해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가 살아있음이 좋았다. 사랑스러운 눈, 숨결, 목소리... 식당과 주방을 잇는 작은 커튼을 들추며 발걸음을 빨리한다.. 들뜬 손짓으로 불을 올리고 오븐에 남은 에그타르트를 데웠다. 마법이 남지 않은 주방은 이전보다 조용하고, 번거로우며 그 과정이 매우 길었지만 어느 식사 준비를 할 때보다 즐거웠다. 그가 기다려 달라고 했어. 내 사랑이 확신이 되어 닿았어. 우리만이 영원히 이곳에서 사랑할 것을 약속했어! 행복감에 터져 나오는 웃음은 소리는 감출 생각도 없는지 탑 곳곳에 맴돌았다.. 마침내 따뜻한 차 한 잔, 에그타르트 두 개를 준비해 다시 그 앞에 앉을 수 있었다.)식기 전에 드세요! 서두르지 않아도 우리의 시간은 아주 느리고...
영원하답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백지혜:그리고, 광철아. 오늘 보니 탑 동쪽에 단풍이 들었더군요. 보셨습니까?
기분 좋게 눈을 뜨면 차분히 들려오는 당신을 향한 목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입니다.
백지혜:내일은 단풍놀이를 하러 가죠. 예쁜 단풍을 잔뜩 주워서 책 사이에 끼워 말리면 좋을 겁니다.